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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2무너진 일상과 존재들의 아토포스 / 19.11 크로스로드

이지용 / 건국대학교 천선란의 『무너진 다리』에서 나타난 의미들

 아포칼립스가 말하고 있는 것들  아포칼립스(Apocalypse)를 생각하면 우리는 보통 종말을 떠올린다. 이는 대부분의 아포칼립스 서사들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과정이나 결과들을 예언적으로 묵시(默示)해왔기 때문인데, 사실 아포칼립스는 어원인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신의 뜻, 혹은 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때문에 아포칼립스는 형식적으로 세상의 종말이라는 코드만이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에서의 일정한 형식 또한 가지고 있는 서사적 장치이자 장르이다. 다만, 신의 뜻이나 비밀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의 다양한 의미들, 감추어져 있던 비밀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서 어원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포칼립스가 들춰내는 의미들은 보통 그 시대가 내포하고 있었던 내적인 불안감들인 경우가 많다. 이는 보통 아포칼립스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데,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던 냉전 시기에는 보통 핵전쟁과 세계 3차 대전이라는 반복되는 코드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맥락들이 198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해서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두드러졌던 것도 냉전 분위기의 변화와 환경운동의 확대라는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핵전쟁의 공포에서 환경오염으로 변화한 것은 전쟁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어도 인간이 무분별한 개발과 욕망의 팽창을 계속하다가 보면 지구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자성적인 목소리의 표현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세기말이라고 불리던 1990년대 말의 아포칼립스 서사들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자취를 감추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사회적 불안감들이 2010년도 이후에도 지면의 아래서 계속 팽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이러한 불안감은 거대 담론의 시대와는 다르게 그 실체의 뿌리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웠으므로 지난 세기 내내 등장했었던 다양한 아포칼립스의 형상들을 변용해 구현한다. 특히 20세기 후반부에 핵전쟁 서사들이 다소 자취를 감추고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로 주제적 전회를 일으켰던 것에서 핵과 관련된 서사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핵에너지로 인해 멸망해 버린 지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천선란의 『무너진 다리』(2019)는 현대 한국 사회의 내재 되어있는 사회적 불안감의 단면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질문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10년대 이후의 한국 SF에서 핵과 관련된 아포칼립스 서사들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이들이 영향을 받은 것은 거대 담론 시기의 작가들과는 달리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사회적 경험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세기의 핵에 관련된 아포칼립스 서사들이 정치적 다툼에 의한 전쟁이라는 형식을 보였다면, 2010년대 이후에는 에너지로서의 활용을 무 비판적으로 팽창시켜 온 대가로 아포칼립스에 닿게 되는 형태로의 변화가 나타난다. 『무너진 다리』에서 나타나는 아포칼립스의 형상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  『무너진 다리』에서의 기술의 발달은 지구에서의 자원고갈을 초래했다. 결국,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계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한 시도들이 결국 대재앙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느 누군가의 특정한 실수나 의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대 담론의 시기에는 전쟁과 같은 강력한 작용으로 인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현대에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다양한 욕망과 일상적인 행위들이 누적되어서 결국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멸망을 통해 우리가 잃게 되는 것 역시 거대한 의미들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이다.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잃게 되는 것,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당연하게 되지 않는 것들은 현재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열거되고, 에필로그에서 멸망 이후에 살아남은 이들의 일상들이 열거되는 것은 결국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멸망이라는 결과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이야기의 흐름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이나, 개인이나 조직의 결함과 같은 것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관계들이나 존재들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상실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실질적인 불안감과 두려움들이다. 거대한 의미들의 시대가 끝나버린 시대에서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생존의 당위성을 제공하고,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기반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너진 다리』에서 등장하는 인간을 닮은 휴론(안드로이드)들의 존재에 대한 사고실험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기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반복적으로 소환한다. 버려진 아메리카 대륙에서 휴론인 카인이 “끊임없이 자신이 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지”(226쪽)를 질문하는 것은 철학적인 고뇌와 같은 것 이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떠한 일상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들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생존이나 실존의 문제에 대한 안정감이 당연히 되는 세상에서 일상은 존재를 증명하고 '나(self)를' 확보하는 기반이다. 어떠한 가치나 이데올로기, 혹은 역할을 통해서 이러한 증명이 이루어지는 시기들이 종식되었기에 일상은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카인은 인간처럼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새로운 ‘개체’가 되고 싶어 했다. 개체가 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떠한 역할이 아니라, 당연하게 주어진다고 여겼던 일상인 것이다. 인정의 시대에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구조에서의 역할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여겨지는 개별적인 가치들에 대한 안정성의 확보다.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가 되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존재의 의미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현재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들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휴론에 대해서 정의하거나 메커트로닉스(mechatronics)를 통해 안드로이드의 몸을 얻게 된 이들에게 인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쨌든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잖아요.”(292쪽)  『무너진 다리』에서 이렇게 일상의 위기, 멸망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도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지금 이러한 부분들이 가장 큰 위기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의미나 인간의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가치의 문제는 어쩌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내 몸이 안드로이드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일상이 의미가 있지 변해버린 존재에 대한 의미들은 대부분 사람에게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이었을 때도 자신을 단 한 번도 정의 내린 적 없었으니 지금에서야 고민한들 자신만의 명쾌한 답을 내릴 수도 없었다.”(411쪽)라고 자문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의 아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의미의 변화와 새로운 형식의 탄생  그러기 때문에 『무너진 다리』에서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사고실험들을 보여준다. 혹자들은 이러한 식의 사고실험들이 층위가 엷거나 사유의 깊이를 견지하지 못하고 현상적이고 표피적인 것들에 대한 천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과 삶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중요성과 그것들을 인정하고 공유하면서 가치의 영역으로 포용하기 위한 시도들은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정의한 인정의 시대에서도 중요한 가치 영역이다. 존재에 대한 정형화된 기준들을 정의하고 그에 수렴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서, 다양한 존재의 양태들을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그러기 때문에 포스트휴먼 담론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고 전 지구적인 사고의 전회를 통해 인류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담론인 인류세(Anthropocene)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너진 다리』는 멸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소설에서 멸망이라는 상황이 우리에게 초래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촉구가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가치나 가족의 소중함과 같은 지난 세기까지의 클리셰들에도 그리 무게가 실려있지 않다.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일상과 당연하게 생각했던 존재의 영위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들로 부각 된다. 그러한 문제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변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자신을 맞춰 변화하는 존재들이 지구상에서 생존한 존재들의 대안으로 남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주변의 환경과 생활세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의미들과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이루어내는 공진화(co-evolution)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상에 대한 의미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담아내는데 『무너진 다리』가 조금 더 직접적이었다는 것은 발표 형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출판되기 이전에 ‘브릿G’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재가 되었었다. 웹소설 연재는 시대적인 상황과 이슈들을 직접 흡수해서 이를 작품에서 구현하는 특성이 있다. 연재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나, 사회적인 이슈들이 미치는 영향력들이 서사의 형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웹소설이 단순히 흥미 위주의 장르적 코드나 취향의 관습들을 구현하는 콘텐츠에서 그치지 않음은 이러한 특성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무너진 다리』도 역시 이러한 형식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건의 의미화와 발생지점에 대한 언급, 그리고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맥락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반영하고 있다.  소설이 일정 분량의 호흡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파편화 또는 액자화되고 있다는 느낌도 이러한 형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이전에 종이책을 기반으로 단편을 창작할 때나,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서사를 구축하던 방식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웹소설에서 장기간 연재한 방식으로서의 서사는 훨씬 더 사회적이고 시대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오랜 집필 기간과 편집을 거쳐서 출판까지 시간이 걸리는 기존의 소설의 서사에서 즉각적이고 동시적인 상징들은 그 의미의 효용이 적지만, 생산과 소비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웹소설의 연재 방식에서는 그러한 의미들이 소비자들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변화는 서사의 생산과 소비방식의 차이가 생겨나면서 발생하게 된 새로운 의미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무너진 다리』는 여러모로 기존의 장편 소설의 형식과 주제의식에서 벗어난 어쩌면 낯설게 여겨질 수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들과 주제의식에 대한 사고실험 역시 다양하게 개진될 가능성을 가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는 이미 변화하고 있고, 가치라고 여겨지던 영역들은 이미 큰 폭의 전회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의 변화들은 우리의 가치들은 해체하고 재정의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천선란의 『무너진 다리』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에서 나타난 한국 SF의 새로운 말하기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모와 정치적인 사건들이 심각하게 부각되지 않는 종말의 세계와 일상의 소중함이라니, 이전까지와는 다른, 하지만 명확하게 의미를 규정하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 SF의 아토포스들이 나타나고 있다.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88&s_para1=170&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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