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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토끼의 아리아 / 19.10 크로스로드

이강영 / 경상대학교


『토끼의 아리아』(2017, 곽재식 지음, 아작)

 곽재식 작가를 소개하는 여러 가지 사항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엄청난 다작의 작가라는 점과,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엄청나게 빨리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점이다. 한국의 SF 작가들 사이에는 ‘곽재식 속도’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6개월에 단편 네 편을 쓰는 속도인데, 실제로 곽재식 작가는 그 두 배의 속도로 일한다고 한다. 이런 생산성도 놀랍지만, 여기에 빼놓으면 안 될 점은, 곽재식 작가는 사실 직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일이 세컨드 잡이라는 사실이다. 본인의 마음가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시간과 수입이라는 면에서는 세컨드가 맞겠지?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전업으로 창작만 하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대단한 정열과 놀라운 창작력이라고 하겠다.   곽재식 작가에 대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면은 작가가 화학을 전공한 현역 과학자라는 점이다. SF란 소재건 주제건 단순한 배경이건 간에 과학을 가지고 쓰는 소설인데, 과학자가 과학을 대하는 방식은 그렇지 않은 작가들과는 어딘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작품에 그 특징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이 점도 곽재식 소설의 중요한 정체성을 이룰 것이다.    곽재식 작가가 쓴 책은 소설과 에세이, 글 쓰는 법에 대한 책 등을 합쳐서 현재까지 14권에 이르며, 그 밖에도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쓴 여러 단편집에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곽재식 작가의 다른 책은 거의 읽어본 일이 없어서 작가론을 이야기하는 일은 훗날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작품집 <토끼의 아리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이 책은 2017년에 나왔지만 여기 포함된 작품들이 쓰여진 시간은, 작가가 상업적으로 처음 팔아본 작품이라는 표제작 “토끼의 아리아”의 2006년에서 “박흥보 특급”, “빤히 보이는 생각”을 쓴 2016년까지 흩어져 있다. 작품들을 일관하는 특별한 주제나 공통점은 찾기 어렵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저자가 쓴 “백몇십 편 정도의 단편소설” 중에서 출판사가 골라서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작가의 여러 면을 고루 드러내 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고 나면 작가의 특징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우선 첫 번째로는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소재다. 다작의 작가라면 당연하겠지만, 곽재식 작가의 작품은 특히 좌충우돌에 가까울 만큼 거침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아시모프나 브래드버리 같은 작가 역시 다작이라면 빠지지 않을 텐데, 이들의 작품집을 보면, 다채롭기는 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법이라든가, 작품의 배경 같은 것에 어느 정도 일정한 경향성이 보인다. 그런데 곽재식 작가의 작품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찾아보자면, 역시 작가 자신이 투영된 탓인지 주인공의 직업이 이공계 연구원인 경우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작가가 직업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물론 그런 작품도 있지만) 그런 면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단편집을 읽을 때 첫 번째 작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단편집을 읽을 때 기억나는 작품은 많아야 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작품, 표 제작, 그리고 (혹시 있을) 걸작. 많은 경우 이 중에 둘, 혹은 셋 다는 겹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나 출판사도 책의 맨 앞에 중요한, 혹은 자신 있는 작품을 배치하고 싶지 않을까?    이 작품집에서도 첫 작품인 “숲 속의 컴퓨터”는 눈에 띄는 작품이다. 독특하고 눈에 띄는 제목, 자연스럽고도 신선한 스토리,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이 모두 준수하고, 폴란드 시골의 외딴 들판이라는 배경도 참신하다. 2012년 작품이니 알파고 이전에 쓴 작품인데도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해 나가는 인공지능’이라는 테마를 잘 구현해서 독자를 붙들어 놓을만한 작품이다.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을 찾자면, 작품의 중심에 있는 것이 1984년의 컴퓨터라는 점이다. 프로그램이 발전을 거듭하다가 특이점을 만나서 극적으로 높은 지능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1984년의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과연 그걸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드디스크가 기껏해야 수십 MB 하던 시절인데? 물론 지금은 네트워크에서 분산 처리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었을까? 이 내용이 사실 소설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무래도 어색함을 떨치기 힘든데, 이런 불편함은 그나마 마지막 부분의 “내내 저를 붙잡고 있던, 구형 컴퓨터의 CPU와 메모리를 벗어나서 마음대로 온 세상을 흘러다닐 것입니다.”라는 대사로 씻겨나가긴 한다.  표 제작 “토끼의 아리아”는 사실 SF라고 하기 어렵다. 딱히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템을 도입하지도 않았고, 다만 주인공이 엔지니어일 뿐이다. SF라기보다는, 연구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은 해주지 않으면서 이용만 하다가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연구개발 분야의 생리를 풍자하는 사회성 강한 작품이다. 대신 반전과 전복이 난무하는 좌충우돌 격인 스토리라인이 매우 강해서, 과연 드라마화하기에는 적합할 수도 있겠다. 필요하다면 적절히 주제를 바꾸기도 어렵지 않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앞뒤의 액자식 구성에 나오는 ‘그녀’를 강조하면 멜로물이 될 수도 있고, 내용 중에서 간을 뺏기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는 부분을 강조해서 액션물로 바꿀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이 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 나오는, 맥주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고, 유네스코의 의뢰로 조사활동을 하는 주인공이 이후 하나의 시리즈를 이끌어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맥주 탐정 시리즈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작가가 붙인 게 아니라 독자들이 부르는 이름인 모양이다. 작가의 후기에 보면 이후 7편에서 활약을 한다고 한다. 책에는 이 시리즈 중에서 “흡혈귀의 여러 측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역시 연구개발 분야의 비리를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반전이 적절한 가작이다.      그러고 보면 역시 작가의 직업적인 면이 많이 반영된 탓인지 연구 개발직의 애환이랄까, 풍자와 같은 작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짧고 낭만적인 작품인 “빤히 보이는 생각” 역시 연구원의 이직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SF 적인 작풍이 강한 작품으로는 “박승휴 망해라”, “조용하게 퇴장하기” 등이 있다. 주된 스토리만 보자면 앞의 작품은 지성이 우주 스케일로 성장해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다는 아시모프 풍의 작품이고, 뒤의 작품은 지구 종말이 확정되고 나서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리는 브래드버리 풍의 작품이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는 전혀 달라서, 철저히 곽재식 스타일이지만 말이다.  곽재식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서사가 두드러진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살리기보다는 아이디어를 모티브 삼아 서사를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구성이 능수능란하기보다는 기상천외하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이러한 풍부한 스토리가 좀 더 다듬어져서 나오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작가의 스타일일 것이다.   곽재식 작가는 여기 담긴 소설 외에도 역사 속의 다양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재미있는 역사 속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태반이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도 많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수집한 괴물과 요괴 이야기에 자기의 상상을 더 한 <한국 괴물 백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다채로운 세계를 좀 더 찾아가 보고 싶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79&s_para1=169&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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