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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정체성을 실천하기: 이종산 [커스터머] / 19.12 크로스로드

『커스터머』 (2017, 이종산 지음, 문학동네)





1. Ekphrasis와 욕망


 Ekphrasis란 문학작품 안에서 예술품(주로 미술품)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줄거리 진행을 잠시 중단하고 묘사에만 치중하는 기법이며 실제 미술작품이든 허구의 미술작품이든 가능한 한 상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한다. 서양 문학에서 이 기법의 기원은 호머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방패 묘사라고 알려져 있다. Ekphrasis 기법을 사용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문학 작품에서 인간의 신체, 특히 여성의 신체가 초상화나 조각상 등의 형태로 묘사되는 경우 대부분 이러한 묘사는 여성을 감상할 수 있는 예쁜 물건 혹은 예쁘고 성적인 물건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남성의 욕망을 반영한다. 이건 내가 꼴페미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분석한 미국 학자 에이미 맨델커(Amy Mandelker)의 연구서 [액자 속의 안나 카레니나](Framing Anna Karenina, 1993)에 나오는 얘기다.


 미학적 특징을 갖는 도구, 설치물, 장치 일체를 예술품으로 간주한다면 이종산의 [커스터머]는 Ekphrasis 기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환경적으로 황폐하고 무미건조한 지역에서 “자연을 독점”했다는 비판까지 받는 풍부한 환경을 소유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자신의 고향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 더 맑은 공기, 더 푸른 하늘, 더 강렬한 햇살, 그리고 더 발전한 기술과 과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옥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높은 공중에 차가 다니는 터널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유리로 된 터널들이 빛나고 있었다. 유리 돔 천장 쪽에 있는 인공 태양이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태양빛을 받은 사물들이 빛났다. 모든 것이 빛났다. 빛의 축제였다. 도시의 네온 사인들이 일제히 켜져서 빛났다. 길가의 나무들도 크리스털처럼 빛나고 있었다. 유전자 변이 식물들이었다. (470)



 인용문에 언급된 “변이”와 “아름다움”은 [커스터머]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개의 핵심어이다. 이종산은 현재의 인간이 경험하거나 창조할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을 [커스터머]에서 묘사하고자 애쓴다. 그 새로운 아름다움을 허구의 세계 안에서 창조할 때에 중요한 것은 과학적 발전이다. [커스터머]의 세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유사하지만, 우리가 아는 세계의 여러 요소들을 참신하고도 비일상적인 방법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더욱 찬란하게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변이를 겪고 가장 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중심적인 요소는 인간의 신체이다. [커스터머]에서 인간의 신체는 기능적이거나 의학적이기 이전에 미학적인 목적에 복무한다. [커스터머]의 주인공 수니와 수니의 주변 인물들은 자신의 신체를 미학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 때문에 [커스터머]는 인상적인 시각적 묘사로 가득한 대단히 화려한 소설이다.



 마네킹의 등뒤에서 지느러미가 나풀거렸다. 붉은 실로 레이스를 짠 듯 섬세한 지느러미였다. 붉은 바탕의 지느러미에 노란 점이 번지듯이 찍혀 있었다.


 쇼윈도를 바닷속처럼 꾸며놓아서 지느러미가 물속에서 너울대는 불꽃처럼 보였다. 홀로그램의 피부는 반짝이는 비늘로 덮여 있었다. 가슴은 빨강에 가까운 오렌지색이었다. 가슴 아래부터 허벅지까지는 오렌지색과 분홍색이었고 무릎은 묘한 라일락색, 그 아래는 하얀색이었다. 멋지게 그러데이션된 비늘이었다. (189)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영웅의 방패 묘사 혹은 [안나 카레니나]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안나의 초상화 묘사와는 달리 [커스터머]에서 신체 변형의 묘사 혹은 변형 가능한 미학적 신체 묘사는 주인공 자신의 욕망을 대변한다. 주인공은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는데,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미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



 갈색 피부를 하얀 레이스 무늬로 덮고 머리는 길게 길러서 느슨하게 땋아야지. 그리고 등에 저 예쁜 지느러미를 다는 거야.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졌다. (189)



 [커스터머]에서 주인공은 이러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학교 수업 이외의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주인공이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주인공처럼 신체를 미학적으로 변형하는 ‘커스터머’들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엮여 [커스터머]의 줄거리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커스터머]라는 작품의 줄거리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주인공의 욕망이다. [커스터머]는 주인공의 이러한 욕망으로 시작해서 아름다워진 주인공의 변화로 끝맺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커스터머]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주인공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하나의 완성된 지점에 도달하여 그러한 아름다움에 머무르며 그것을 유지하는 상태가 아니다. 반대로 주인공은 끊임없이 변한다. 주인공의 선택에 의해서 스스로 변하기도 하고, 선택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지느러미를 원했으나 빨간색과 금색으로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하얀 레이스를 원했지만 역시 금색으로 바꾸고 만족한다. 또한 주인공은 변화로 인해서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마에 뿔이 돋아나는 변화를 겪으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돌연변이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체의 변화는 정체성의 변화이며, [커스터머]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인물들의 정체성은 언제나 변화하고 발전한다.



2. 실천하는 정체성: 유동성과 변화


 그리고 [커스터머]의 세계에서 과학과 기술은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 능동적인 정체성의 선택을 돕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검은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일행 중 한 명도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피부에 호피 무늬가 있는 덩치가 큰 남자였다. 중절모를 쓰고 보석으로 치장했는데 옷도 꽤 잘 차려입고 있었다. 특히 가죽 구두가 아주 멋졌다.


 “몰랐나봐? 험은 매일 다른 사람이 돼. 얼굴이 매일 바뀐다고. 진짜 얼굴은 아무도 몰라.” (242)



 험은 인용문에 설명되듯이 “매일 다른 사람이 되는” 인물이지만 주인공은 결국 계속적인 변화 속에서도 험이라는 인물 자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험은 주인공이 물리적인 변화를 겪기 이전에 주인공의 변화를 예견한다.



 나는 내 이마를 문질렀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험은 어떻게 안 거지? 험의 친구들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 받았다.


 “아직 자기가 누군지 잘 모르는군. 잘 해 봐요. 나도 그 안에 있는 뿔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네.” (244)



 16세라는 주인공의 연령과 “아직 자기가 누군지 잘 모르는군”이라는 대사는 변화와 정체성의 탐구라는 주제와 이어진다. 그러나 [커스터머]에서 변화는 청소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커스터머]의 세계에서 변화는 선택의 문제이다. 이 작품에서 성년이란 어떤 완성된 정체성에 도달하여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변화의 방향을 발견한 상태, 그리고 그러한 방향의 변화를 안정되게 추구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상태에 더 가깝다.


 정체성의 선택과 변화라는 [커스터머]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화학선생님인 말린의 살인사건이다. 말린은 자신의 복제 쌍둥이인 말리에게 살해당하는데, 말리는 살인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나는 누구지? 그런 질문이 떠올랐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흘렀고 저는 오래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죠.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말린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린에게서 벗어나서 하루라도 그냥 나 자신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말린을 죽인 건 질투 때문이 아니었어요.” (178)



 말리는 말린의 복제인간으로 제작되어 태어난 순간부터 말린과 함께 살며 말린의 취향과 말린의 관점에 따라 세상을 배운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면서 말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지만, 말린의 복제로서 살아가야 하는 말리에게는 정체성의 선택도 변화도 허락되지 않는다. 말리는 이 때문에 자신의 원본을 살해한다. 그리고 말리는 유죄판결이 원본과 자신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사회적 결정이라 이해하고 안도한다. 정체성의 선택,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는 변화의 가능성은 [커스터머]에서 살인의 이유가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 다양성과 분산적 글쓰기


 물론 유동적이거나 비일상적인 정체성이 [커스터머]의 세계 안에서도 마냥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태생적인 신체적 특징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특징을 변화시키는 사람들 간에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돌연변이로 태어나서 돌연변이를 없애지 않고 사는 것과 돌연변이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자기 몸을 바꿔서 돌연변이로 살아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 때문에 돌연변이 커뮤니티와 커스터머 커뮤니티 간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278)



 이로 인해 돌연변이 여성이 혐오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자신도 돌연변이라는 정체성을 얼마 전에 알게 된 주인공은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룸메이트 ‘안’은 남녀 양성의 특징을 가진 중성인이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편견에 시달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이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지역차별을 강하게 의식한다.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커스터머]의 세계조차 편견과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과 혐오, 다양한 인간군상과의 마찰, 심지어 주인공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살인사건조차도 주인공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지 못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확고하게 믿으며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성취한다.



 날개가 시원하게 쫙 펴졌다. 그 순간의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 날개는 검푸른 빛으로 번쩍거렸다. 비늘은 스톤 같았다. 천 개의 스톤을 박은 것 같은 그 멋진 날개가 내 어깨와 등에 달려 있었다. 그 날개는 내 몸의 일부였다. 뿔이 나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날개도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내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다. (558)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도 [커스터머]를 읽었다면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커스터머]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각적 묘사는 작품의 중심을 이루며, 시각적 자극과의 조우는 그 자체로 사건이다. 이러한 시각 묘사의 중요성에 비해, 강렬한 여러 등장인물들과 함께 살인사건과 첫사랑을 포함하는 다양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은 그저 주인공을 스쳐 지나간다. 주인공은 ‘안’을 사랑하고 신체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이 두 가지 사실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인물을 만나고 어떠한 사건을 겪어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커스터머]를 읽을 때에는 주인공이 외부의 사건에 연루되며 작가가 의도한 변화를 향해 특정한 결말을 최종 목적지로 두고 일방향적으로 움직이는 단선적 줄거리 전개의 고정관념을 벗어야 한다. 그보다 [커스터머]는 아름다움의 추구, 변화의 선택, 사랑이라는 큰 줄기에 화려한 가지와 잎사귀가 풍성하게 달린 형태의 작품으로 이해하는 쪽이 낫다. 실제 인간의 삶 또한 다양하고 다각적이고 가변적이며, 우리는 어떤 의도된 발단에서 출발하여 결정된 결말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가변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러므로 [커스터머]가 말하고자 하는 다양성이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중요한 특징이며 인간의 삶의 가장 커다란 진실인 것이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02&s_para1=171&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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