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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예술과 중력가속도 / 20.5 크로스로드

이강영/경상대학교


『예술과 중력가속도』 (2016, 배명훈 지음, 북하우스) 장르문학에서 장르를 정의하고 구분하는 일은 진부하고 지겨운 일이지만, 장르문학 작품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그런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곧 내가 장르문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나는 SF의 범위를 매우 느슨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에 과학이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으면, 소재든, 주제든, 배경이든 모두 SF라고 여기고 싶다. 단순히 모티브에 과학을 차용하거나 배경에 적당한 과학적 치장만 했더라도 SF라고 생각하고 읽는다. 사실 현실에서 SF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은 내 기준보다도 훨씬 더 범위가 넓은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SF 작품”이란, 소설의 재미를 느끼는 데에 과학이 중요한, 적어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훌륭한 소설이지만 꼭 좋은 SF는 아닌 작품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좋은 SF 작품이지만 한 편의 소설로서는 평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SF 작가라고 분류되는 작가라도, 반드시 SF를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을 쓰기 위해 SF적인 장치를 이용만 하는 경우가 있다. 과학이 우리의 일상과 점점 더 접점을 넓혀가는 현대에는 이런 경향이 훨씬 더 널리 퍼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소설 자체를 SF적인 발상에서 구상하고 집필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약하는 작가 중에 이렇게 SF를 자신의 뿌리로 두는 작가로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배명훈이다.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안녕, 인공존재!>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는 배명훈 작가의 작품집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스마트 D>가 포함되어 있어서 초기 단편집인가 했는데,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발표된 작품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예언자의 겨울>, <예술과 중력가속도>, <예비군 로봇>이 작품집의 뼈대를 이룬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거나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몇몇 작품에 같은 이름의 인물이 나오기도 하는데, 반드시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캐릭터는 상당 부분 비슷하기는 하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몇몇 작품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느슨한 관련성이 이 작품집을 묶는 동력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전체로서의 작품집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작품 위주로 눈에 띄는 점들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가장 즐겁게 읽은 작품은 <티켓팅 타겟팅>과 <예비군 로봇>이다. 살짝 이율배반 같은 느낌이 드는데, <티켓팅 타겟팅>은 가장 SF와 거리가 먼 작품이고, <예비군 로봇>은 가장 SF다운, 혹은 전적으로 SF 그 자체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티켓팅 타겟팅>의 주 내용은 온라인 티켓팅의 박진감인데, 이 내용은 SF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기다. 즉 이 작품의 재미는 SF적인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SF는 이 작품에서 풍부한 배경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 앞에서 말했듯 배명훈은 기본적으로 SF의 발상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라서, 이 작품은 좀 예외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도 “좀 이상한 작품”, “아니 내가 왜 이런 이상한 글을 쓰고 있는 거지?”라고 한 게 아닐까 싶다. 반면 <예비군 로봇>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SF 그 자체인 작품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자면, 매우 익숙한 철학적 주제를 유머 가득한 SF에 담은 작품이다. 화성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라는 SF의 내용에, 실연하고 (SF적인) 중장비 면허를 가진 젊은 여자가 우연히 장비와 함께 예비군이 된다는 유머러스한 설정, 그리고 눈으로 보는 세상과 태그를 통해 보는 세상의 불일치라는 인식론적인 주제(이자 동시에 유머의 핵심적인 메카니즘)가 고루 배합된 매우 즐거운 SF다. 거기에 “<안녕, 인공존재!> 같은 고전 명작들” 등등의 소소한 표현들까지. 작품집의 앞부분을 읽을 때 눈에 띄는 점은 형식적인 다양성이었다. <스마트 D>는 SF 투고 자체가 소재다 보니 처음에는 극중 극 형식인줄 알았을 정도로 워낙 눈에 띄는 작품이고, <조개를 읽어요>는 화자의 이야기로만 작품을 이끌고 간다. <유물위성>도 그런 식이라서 작가가 이런 형식을 특별히 선호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험적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작품마다 화자나 서술하는 톤이 매우 달라서 다채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만 그러한 다채로움이 반드시 플러스인가 하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이 작품집은 겉으로 드러나는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다채로움이 과잉이라는 느낌까지 들기 때문이다. <초원의 시간>과 <양떼자리>는 초원이라는 공통의 배경 때문에 함께 기억되는 작품들이다. 물론 같은 초원이라는 암시는 전혀 없고, 오히려 전혀 다른 시공간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텐데도 그렇다. 부분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들 사이의 느슨한 연관성으로는 <유물 위성>과 <조개를 읽어요>에서 느껴지는 고고학적 방법에 대한 관심, 혹은 취향도 있다. 이러한 취향이 <고고심령학자>라는 개념의 창조로 연결된 것일까? 작가가 이 영역을 더 발전시킬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상상해볼 따름이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면이 있는데, 몇몇 작품의 결말이 지나치게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 때문에 여러 연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집 전체가 연작이나, 하나의 세계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제각각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예언자의 겨울>은 지구의 멸망을 암시하면서 끝이 난다. 따라서 잠수함이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티켓팅 타겟팅>과 연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작가가 그럴 생각이 없었기도 하겠지만.) <유물 위성>과 같이 작품의 결말이 중요한 요소라면 어쩔 수 없겠다. 하지만 <예언자 로봇>에서 뒷이야기가 굳이 설명될 필요가 있을까? <예언자의 겨울>과 <예언자 로봇>, 이 두 작품은 자체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마무리 탓에 ‘축약된 장편’이라는 느낌이 드는 면이 있다. 작품의 스케일로 봐서도 그렇다. 배명훈 작가는 단편과 장편을 모두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SF 바깥에서도 성과를 일정 정도 인정받고 있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 SF를 대표할만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여러 면에서 다채로운 이 작품집을 배명훈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작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53&s_para4=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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