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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듀나의 「낡은 꿈의 잔해들」을 읽고 / 20.3 크로스로드

곽재식 / 평론가

『면세구역』 (2013(초판 출간 2000), 듀나 지음, 북스토리)

 걸작의 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특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 벼르고 별렀던 소설에 대한 글을 쓴다면 더욱 즐겁다. 나에게는 듀나의 단편집 『면세구역』에 실려 있는 「낡은 꿈의 잔해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 이상한 일의 진상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특히 이 소설은 뜸들이는 것 없이 첫 번째 문단의 두 번째 문장에서부터 바로 수수께끼를 던진다.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궁금한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도대체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독자는 호기심이 생기고 도대체 답이 무엇일지 궁금해 하며 서둘러 책장을 넘기게 된다.  도입부에서 이 소설이 독자에게 내는 수수께끼는 도플갱어 전설이다.  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길거리마다 부딪히는 20세기 후반 무렵의 한국 대도시라면 과연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는 어쩌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도플갱어 전설은 이렇게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전설 속에서는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다.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되는 사람을 마주친 것이므로, 이런 전설은 종종 죽음이 찾아와 소멸하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소재이므로, 도플갱어 전설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이야깃거리로 변형되기에도 좋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 속 등장인물들이 똑같이 생긴 경우는 자주 보인다. 용량을 절약하기 위해서 비슷한 인물이라면 아예 똑같은 겉모습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실제 세계의 군대라면 아무리 비슷비슷한 체격만 뽑아 놓은 부대의 같은 계급 병사들이라고 하더라도 저마다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 속에서는 도시를 지키는 경비병들은 다들 점 하나, 머리카락 하나 다를 바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면 이 경비병들은 서로서로에게 도플갱어인 셈이다.  가상현실을 소재로 하는 소설 속 SF의 세계를 꾸미고 있다면 이런 형태의 도플갱어 이야기를 그대로 번역하듯 SF 단편으로 옮길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체가 사실은 어떤 외계인이 운영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보자. 우리는 사실 모두 그 가상현실 게임 속의 인공지능 등장인물이다. 외계인은 이 가상현실을 운영하면서 용량을 절약하기 위해서 얼굴이 똑같은 등장인물을 여러 명 배치하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보던 게임 속의 경비병들처럼. 우연히 세상을 살다가 누가 이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이 용량을 줄이기 위해 똑같이 생긴 등장인물을 배치한 가상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지도 모른다. 외계인은 스스로가 가상현실 속 등장인물임을 깨닫게 된 인물은 가상현실의 유지를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외계인은 그 등장인물을 삭제한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설과 맞아 떨어지는 결말이다.  「낡은 꿈의 잔해들」이 이런 정도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 소설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고, 적당히 괜찮은 듀나의 SF 단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수수께끼가 펼쳐지고, 주인공이 그 수수께끼를 조사하고, 나름대로 그럴듯한 해답을 추리하는데, 실제 밝혀지는 진실은 주인공의 추리를 뛰어넘어 모든 복선이 더더욱 이치에 맞게 맞아 떨어지는 훨씬 놀라운 음모다. 전형적인 4단계 구성의 튼실한 SF 느낌으로 어울린다. 심지어 나 자신도 이런 식으로 SF 단편을 몇 편 썼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소설은 SF라고 분류할 수도 없다. 듀나는 다수가 인정하는 한국 SF의 거장이며, 「낡은 꿈의 잔해들」은 그의 기이한 걸작으로 꼽을 만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배경으로 한다거나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을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과는 거의 상관도 없다. 결말에서 모든 복선이 연결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치에 맞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면세구역』에서 이 작품 앞 뒤에 실린, SF 색이 진한 소설들 사이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의 방향은 다르게 치솟는다.  그 때문인지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도리어 실망했다. 그럭저럭 반전을 집어 넣었다고는 생각했지만, 나는 그냥 반전으로 충격을 좀 주어야 결말에 어울린다고 보고 적당히 우겨 넣은 반전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이상한 수수께끼를 깨끗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멋지고 깔끔한 답변을 기대하며 글을 읽으며 마침내 결말에 도착했는데, 답변은 깔끔하다기 보다는 펑펑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기대와 달랐다. 어찌 보면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던져 놓고 답이 없으니 말이 되지 않는 결론을 우긴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탓에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읽고, 몇 년 동안은 듀나 소설 중에서는 덜 재미있는 작품으로 분류했다. 지금은 나 스스로 듀나 소설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는 이 작품을 처음에는 다른 소설보다 확연히 모자란 소설로 여겼다. 나는 지금도 심심할 때 가끔 씩 듀나 단편집을 뽑아 예전에 읽었던 소설을 한 편 두 편 골라 읽는데, 한동안은 그럴 때에도 이 소설은 재미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이 단편을 읽은 것은 2000년대 중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괴상하게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감상이 전혀 달랐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이었나, 나 자신을 의심할 정도였다.  줄거리는 그때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진상이 무엇인지, 수수께끼의 답이 무엇인지, 이 이야기가 도플갱어 전설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 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이야기에 더 깊이 빠져 들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다양한 풍경과 세상의 모습을 더 와 닿게끔 느끼게 되었다. 결말 즈음에 도달할 때가 되어서는 이야기를 틀 밖으로 끌고 나가는 과감한 도전과 그런 과감함을 얼마나 잘 잡히게 포장해서 담아냈는지를 보고 감동하게 되었다. 짧은 분량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선명한 줄거리 속에서 온갖 감상과 소재를 버무려서 소설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엄청 잘 쓴 소설이었다.  도대체 왜 두 번째 읽을 때 이렇게 훨씬 더 훌륭해 보였을까? 책을 읽고 있는 세상 자체가 어떤 환상의 일부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튼튼한 글 솜씨에 아무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자유로운 발상이 한데 엮여 있어야만 이런 소설은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할수록 대단한 소설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한번 돌이켜 보았다. ‘1990년대 말 즈음 나온 소설 중 이 정도로 대단한 한국 단편 소설이 무엇이 또 있었나? 별로 없지 않았나? 이런 수준의 소설이 또 있는가?’  이 소설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지를 따져보자면, 마술적 사실주의 계통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쉬운 소개라고 생각한다. 보르헤스의 소설 중에 이 비슷하게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소설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소설과 「낡은 꿈의 잔해들」 사이에서는 닮은 점을 제법 찾아낼 수도 있다. 인도 신화 중에는 이 세상 모든 일이 사실은 어떤 이상한 신령 같은 것이 잠을 자면서 꾸고 있는 꿈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신화와 이 소설의 소재는 겹치는 점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생동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이야기 속의 갈등은 대단히 생생하며 이 소설이 그 갈등을 풀어가는 배경으로 보여 주는 도시의 모습은 일상적이며 평범해서 그냥 옷의 감촉이나 바람의 온도처럼 쉽게 와 닿는다. 먼 나라의 아스라한 환상이라든가 고대의 거창한 관념과 상징 속에서 펼쳐 보이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동네 커피 가게의 식은 커피와 가전 제품 광고 속 성우 목소리 같은 가까운 소재가 갖고 있는 현실감 속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그 핵심을 제대로 잡아 낸다. 이 소설의 다양한 재미를 즐기다 보면, 가끔 실존주의 소설의 분위기가 감도는 느낌까지 든다.  그 때문에 지금 와서 보면, 1990년대 말의 도시 생활이 군데군데 드러난 대목이 더 멋져 보이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소비 성장 시대의 풍요와 IMF 직후를 상징하는 가난의 대비가 중요한 소재로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가 하면, 가부장제가 본격적으로 뒤집히던 시대의 변화가 전업주부와 일하는 여성의 대비에서 보이기도 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여대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등장인물이라든가, 인물의 외양 묘사 면면에서는 1990년대 전환기에서 성 역할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잡아내어 분석해 낼 수 있는 독자도 충분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모든 것들이 아주 매끄럽게 연결된 채로 핵심 소재인 도플갱어 수수께끼의 해답을 휘감아 소용돌이치면서, 소설은 결말로 나아간다. 중간에 물리 교사의 수업을 끌어다 붙이는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것들이 연결된 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섞여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낀 까닭은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너무 잘 섞여있어서, 다양한 재미가 섞여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워낙 수수께끼의 해답을 구하는 데만 골몰해 빠져 있다 보니,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식으로 이 이야기를 다른 세상으로 끌어 올려줄 그 많은 문장들이 같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간 것 아닐까?  그런 만큼,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표현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도 감탄할 곳이 많은 소설이기도 하다.  듀나의 소설은 줄거리가 선명하고 발상이 강렬하다 보니,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글의 꾸밈은 밋밋하여 부족하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런 평을 찾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잡다한 장식으로 요란을 떠는 부분이 없을 뿐이지, 꼭 필요한 대목에서 훌륭한 단어를 골라 심금을 울리는 듀나 소설의 묘사는 어떤 작가도 쉽게 흉내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나는 카페에 남아 턱을 양 손 안에 묻고, 내가 죽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버티며 살아가야 할 길고 지루한 여름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여름, 지루한 상황에 대비되는 충격적인 해답, 기후변화로 유독 더워진 여름의 이상함을 주인공이 처한 이상한 수수께끼와 결합하는 발상 등이 한 문장 속에서 다같이 결합한다.  그렇게 해서 긴 여운을 강하게 남긴다. 동시에 바로 이런 글 솜씨 덕택에 줄거리만 보면 도저히 결말을 짓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딱 떨어지는 결말을 만들어 내는 데에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출처: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30&s_para1=174&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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