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rimlee

[SF Review] 기이하고도 으스스한 SF 미학 / 20.2 크로스로드

복도훈 / 평론가


『서던리치 3부작 세트』 (2017, 제프 벤더미어/정대단, 황금가지)  최근 나는 SF가 다른 문학 장르와 다르게 가질 수 있는 미학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경이감(sense of wonder)? 인지적 낯설게하기(cognitive estrangement)의 효과? 좋다. 그럼 어떤 경이감이며, 낯설게하기일까? 나는 근래에 접한 소설과 영화, 평론에 힘입어 SF 미학의 한 가능성을 얘기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제프 벤더미어의 ‘서던 리치 3부작’인『소멸의 땅』『경계 기관』『빛의 세계』(황금가지, 2017)를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알렉스 가렌드의 영화 <서던 리치>(2018)도 보았다. 소설과 영화에서 ‘X구역’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와 원작인 아르카디·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SF『노변의 피크닉』에 등장하는 ‘구역’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명히 인간은 아닌 무엇인가가 남긴 오래된 사물의 조각들, 늪지의 폐허, 돌연변이의 동식물들, 그곳에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육체적 증상을 호소하거나 기억의 착란을 일으키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다 서서히 미쳐가는 사람들의 ‘구역’. 물론 X구역과 같은 위상학적 시공간이 생겨난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소설과 영화가 각각 다른 원인을 제시한다. 소설에서는 환경재난,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소설과 영화 모두 호명된 원인조차도 그리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설정한다. X구역은 그곳을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던 리치 연구소에서 보면, 하늘과 땅, 숲과 해변의 배경을 둘러싼 삼차원의 시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탐사대들이 X구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은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변한다. 방금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라고 했지만, 시공간을 구부러지게 만든 무엇인가(X)가 거기에 있다고 썼어야했다. 보통 리얼리즘 소설에서 삼차원의 시공간, 배경(background)은 주인공의 트라우마, 성격, 비전 등과 징후적으로 연관될 때 문제적인 전경(foreground)로 변한다. 하지만 그 연관이 느슨해지면 전경은 배경으로 되돌아간다. 제아무리 들썩이고 난장을 벌여도 3차원의 시공간은 좀처럼 끄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벤더미어의 SF 소설과 영화에서 배경은 전경이 되었다가 배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배경과 전경의 구분 자체가 폐지된다. 리얼리즘 소설이든 아니든 배경과 전경 사이에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문지방이나 토끼굴과 같은. 경계는 배경이 전경으로 바뀌는 비가시적인 문턱이든, 배경이 또다른 배경(전경)으로 바뀌는 앨리스의 토끼굴이든, 그 기능이 얼마간 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경계 그 자체가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경계가 경계를 넘어서 기존의 시공간을 잠식하면 어떻게 될까? 보통 경계는 공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기능적 공간으로 간주되지만, 어떠한 SF적 상상은 경계의 의미를 바꾼다. 경계는 제3의 공간이나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이한 사물 X, 객체(object)다. ‘서던 리치 3부작’과 <서던 리치>는, 소설의 해설에서도 언급했듯이, 멀리는 H. P. 러브크래프트에서 가까이는 차이나 미에빌의 위어드 픽션(weird fiction)의 장르사적 맥락에 위치한 작품이다. 그런데 weird라는 말이 흥미롭다. 옥스퍼드 사전에서 weird는 ‘자연적이거나 정상적인 것과는 다른 낯선 (것)’으로, 시간과 인과성을 뒤트는 의미를 내포한다. 최근에 위어드(weird)는 오랫동안 환상문학의 미학을 설명해왔던 요긴한 개념인 프로이트의 운하임리히(unheimlich, 섬뜩한)를 대체할 차비를 갖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서도 현상과 물자체에 대한 칸트적 구분, 즉 인간 주체의 인지적 그물망이라는 대전제로 인식 가능한 대상과 인식 불가능한 대상을 구분했던 이른바 상관주의적 사유를 넘어설 때도 동원된다. 객체는 인식 주관에 비춰진 한낱 현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은 그 자신의 속성이나 다른 객체와의 관계로도 환원되지도 않는다. 객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비밀스러운 그림자,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독립적이고도 기이한 대상이다. 최근의 객체지향존재론이나 사변적 실재론 등과 같은 철학적 신예는 그것이 비인간적 실재든, 인간 이전 또는 이후의 세계든 요컨대 인간과 독립되고도 무관한 실재(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이들이 러브크래프트 등을 비롯한 무수한 SF에서 영감을 빌려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겠다. 그렇다면 ‘위어드’에 비해 ‘운하임리히’가 지닌 약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운하임리히는 낯선 외부를 내부의 교착, 틈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다. 그것은 낯선 외부, 객체 그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을 인간 내면의 징후(symptom)로 환원하려고 한다. 아마도 SF에서 창조한 것들 가운데 가히 최고의 객체라고 불릴 만한 스타니스와프 렘의 행성‘솔라리스’를 두고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이 ‘내부로부터 온 괴물’이라고 명명한 것이 운하임리히에 입각한 탁월한 비평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리라. 지젝에게는 솔라리스라는 물자체와 대면하는 주인공 남성의 무기력한 심리에 더욱 초점을 맞추겠지만, 객체에 주목하는 철학자들이라면 아무래도 정체 모를 솔라리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지젝과 객체지향존재론자들 간의 객체에 대한 용호상박의 논쟁도 한창중이니 아직은 좀 더 두고 볼 필요는 있겠다. 이쯤에서 짐작한 이들도 있겠지만, 객체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설명과 요약은 마크 피셔의 탁월한 장르 비평서『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 2019)에 얼마간 기댄 것이다. 물론『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문학과 영화에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SF만을 분석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 책에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르는 SF 장르를 중요하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대프니 듀 모리에의『새』와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같은 미스터리 장르를 취급하기도 한다. 마크 피셔가 자신의 책에서 운하임리히에 맞서 강력하게 세공한 ‘기이한 것’(the weird)과 ‘으스스한 것’(the eerie)은 아마도 한 뿌리에서 나온 듯하다. 셰익스피어의『맥베스』에서 맥베스의 파멸을 예언하는 마녀들은 ‘기이한 자매들’(weird sisters)로 불리는데, 이때 weird는 운명과 동의어였다고 한다. 물론 그때의 운명은 누가(무엇이)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힘)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는 데서 또한 ‘으스스하다’(eerie). 이 둘의  공통점이 운하임리히와 다르게 “낯선 무엇에 대한 집착”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둘의 차이점을 가르는 경계선은 그보다 모호하다. 당연히 한 뿌리에서 나온 자매 개념이니까. 그럼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낯선 객체와 맞닥뜨렸을 때의 반응과 질문방식의 차이에서 이 두 개념의 핵심은 가장 잘 포착될 수 있다. 기이한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외부 세계의 무엇이 이 세계에 침입했는지”가 요점이다. 기이한 것과 맞닥뜨렸을 때의 주체의 반응은 이것이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어. 이럴 리가 없어.’ 나는 충격을 받으며, 지금까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차용한 개념적 범주들이 무효화됨을 체감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시공간이 이접하는 문턱과 경계가 중요해지며, 상이한 시공간이나 객체가 충돌하는데서 오는 낯선 몽타주, 큐비즘적인 혼란이 기이한 것의 미적 핵심을 이룬다. 해도연의「텅 빈 거품」의 놀라운 장면을 읽어보자. “서쪽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하나는 진짜였고 하나는 태양보다 두 배는 더 큰 구체 거울에 반사된 일그러진 허상이었다.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상미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지구를 몇 개나 집어삼키고 남을 목성의 폭풍들을 봤을 때 느꼈던 경이감. 그런 목성을 단숨에 태워버릴 불길을 내뿜는 태양을 봤을 때 느꼈던 두려움. 그 모든 감각을 뛰어넘는 존재가 태양에 다가오고 있었다.”(『텅 빈 거품』, 요다, 2019) SF의 메가 텍스트 소재로 등장하는 호버만 스피어가 어떠한 중력 이변도 일으키지 않고 우주적인 진공붕괴를 일으키면서 태양계를 서서히 집어삼키려는 경이로운 장면의 한 대목이다. 인간의 이해와 지식을 초과하는 이러한 객체의 발명이 주는 미적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바깥의 체험이라고 할 만하다. 핵폭탄 앞의 개미처럼 작아지는 인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체험. 이에 비해 으스스한 것은 존재의 오류, 부재의 오류와 관련이 있다. 으스스한 것에 맞닥뜨린 나는 충격을 받기보다는 긴장 어린 상태에서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때에 여기 어째서 무언가 있는가? 무언가 있어야 하는 때에 어째서 여기 아무것도 없는가?”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존 덴버의 노래〈Take Me Home, Country Roads〉에 이끌려 우주인들은 애초의 목적지를 변경해 지구와 대기, 중력, 물 등 모든 조건에서 고향 지구를 닮은 4번 행성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이 지구와 너무 흡사하게도 닮았지만 무엇인가가 결정적으로 빠져있다는 느낌을 이내 받는다. 가까운 곳에 거대한 숲이 있지만 거기에서는 새나 짐승의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 으스스한 느낌은 추가적인 질문을 불러온다. 여기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소음의 부재를 낳게 한 힘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모두 인간의 경험 지평 자체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수수께끼 같은 객체의 현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미적 효과는 상이해 보인다. 앞서 기이한 것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지평, 배경과 전경을 뒤섞어버리는 바깥의 체험을 가져다준다면, 으스스한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지배하는 비인격적인 힘, 행위자에 대한 숙고를 이끌어낸다. 물론『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공평하게 다룬다. 그러나 내 생각에, 저자는 으스스한 것에 더욱 초점을 두는 것 같다. “자본과 같은 힘은 실체는 없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든 야기할 수 있다.”으스스한 것은 애초에 기이한 것에서 나왔지만, 으스스한 것은 ‘서던 리치 3부작’에서 X구역, 무수한 돌연변이 객체를 낳게 한 힘의 근원을 추론하도록 하지 않는가. 영화는 외계인으로 추정하지만, 소설에서는 X구역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너무 많이 바꿔 놓은”환경적 재앙(제프 벤더미어,『빛의 세계』)과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어떻게 여기서 그러한 재앙을 낳게 한 자본의 저 비인격적인 힘을 그저 지나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서던 리치 3부작’과『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지질학적 행위자로서의 인류가 들어선 인류세의 문턱에서 중요한 SF적 공구로 유용하게 참조할 만하다. 책의 해설에서도 언급된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는 기이하고도 으스스한 감각 모두를 발산하는 객체에 대한 다른 명명이겠다. 하이퍼오브젝트는“인간이 직접 만들었든 아니든 간에 다른 실체와 비교할 때 그것을 초과하는”객체들(Timothy Morton, Hyperobjects, 2013)로, 보통은 플라스틱, 미세먼지, 방사선, 플루토늄, 지구 온난화, 금융자본 등을 일컫는다. 그것은 가장 미세한 질료적 차원에서 존재하면서도 시공간에는 대규모로 분포되어 있기에 역설적이게도 가장 미세하면서도 가장 거대한 객체다. ‘서던 리치’ 3부작과 영화에서 모턴이 하이퍼오브젝트의 다섯 가지 특징으로 불렀던‘점착성’(인간에게 들러붙는 변종 식물),‘비장소성’(지역이면서 지역을 초과하는 X구역),‘시간적 파동성’(탐사대가 겪는 시공간의 소용돌이 환각),‘단계성’(X구역의 위상학적 공간),‘상호객관성’(팔뚝의 생채기에서 자라나는 식물로 경험되는 하이퍼오브젝트) 등이 묘사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벤더미어와 동년배인 모턴은 이와 관련해 긴 대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모턴은 하이퍼오브젝트 시대의 미적 체험을 인식의 무한한 힘과 사물의 무한한 존재 사이, 즉 앎과 존재 사이의 ‘비대칭 감각’으로 정의했다. 비대칭 감각은 하나의 객체에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곧 빗방울에서 방사선을, 구름에서 플루토늄을 감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태양의 그림자로부터 우주의 파국을 인지하고(「텅 빈 거품」), 변종 악어의 입에서 희생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것(<서던 리치>)이다. 이러한 SF의 미학은 미래적이면서도 현재적이라고 할 만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익숙한 낯섦, 낯선 익숙함과 동거할 수밖에 없는 하이퍼오브젝트 시대에 요구되는 다른 삶에 대한 감각적 명령이기도 하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26&s_para1=173&Board=n9998&admin=yes

조회수 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APCTP 선정, 올해의 과학도서 온라인 저자 강연** APCTP 에서는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선정하고 있는데요. 해당 도서들의 저자 강연도 진행합니다. 올해는 온라인 저자 강연으로 진행하게 되어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첫번째 시간으로 해도연 작가의 '외계행성:EXOPLANET'을 만나보겠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APCTP 선정, 올해의 과학도서 온라인 저자 강연** APCTP 에서는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선정하고 있는데요. 해당 도서들의 저자 강연도 진행합니다. 올해는 온라인 저자 강연으로 진행하게 되어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첫번째 시간으로 해도연 작가의 '외계행성:EXOPLANET'을 만나보겠습니다. 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