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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유령해마』 / 20.1 크로스로드

김창규 / 작가 『유령해마』 (2019, 문목하, 아작)

 <유령해마>는 <돌이킬 수 있는>을 선보였던 문목하 작가의 두 번째 장편 SF이다. 문목하 작가는 성장 속도가 빠른 작가이기에, <유령해마>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전작을 간단히 살펴보고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킬 수 있는>은 정확한 원인을 알기 힘든 재난으로 평범한 사회와 분리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와해하기 위해 비밀 임무를 맡은 윤서리와, 윤서리를 이용해 제 이익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이 충돌은, 비록 모략과 암투도 등장하긴 하나, ‘염동력’이라고 하는 상식 밖의 초능력을 통해 발생하고 해결된다.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을 이용한 세력 대결이란 전혀 새로운 설정이 아니다. 대중적인 서브 장르가 탄탄한 시장을 형성한 나라라면 비슷한 설정에 기초한 수작이 여럿 있다. 무협물이 그렇고,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과 라이트노벨이 그렇다. DC와 마블이라는 양대 코믹스 레이블의 영웅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돌이킬 수 있는>도 같은 영역에 자리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기시감을 주는 것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힘은 그 기시감이 독자의 힘을 빼놓을 즈음부터 제대로 발현된다. 작가는 무협과 히어로물에 도시 느와르를 살짝 얹고는 독보적인 힘을 가진 인물의 고뇌로 이끄는 순서를 선택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익숙하지만, 따로 존재하던 여러 서브 장르를 하나로 이어붙인, 카리스마 넘치는 한 벌의 옷이 되었다. 끝내 재봉을 완성하고만 강력한 의지와 힘이야말로 곧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빈틈을 남기지 않으려고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긴 탓에 약간 아쉬운 점도 남기고 말았다. 정묘하게 들어맞으면서 작품의 매력에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 간 대사에서도 이런 양면성이 느껴진다. <돌이킬 수 있는>의 세계와 대사는 허점이 없는 설계도에 맞춰 쉬지 않고 굴러가는데, 그 설계도에는 독자가 잠시 앉아서 작품 속 세계와 인물을 충분히 맛볼 공간이 많지 않다. 글을 빚는 작가의 강한 악력에 무작정 모든 걸 내맡기기로 작정한 독자라면 이보다 훌륭한 작품이 없겠지만, 사유와 감상을 동시에 누리고픈 독자에게는 다소 벅찬 여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서평의 대상이자 문목하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인 <유령해마>를 읽으며 가장 먼저 관심을 두었던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작가의 서술 방식은 과연 바뀌었을까? 작가는 독자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는, 반 박자 빠른 치밀함의 부작용을 알아채고 해소했을까? 해답은 작가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령해마>는 전작보다 상대적으로 결이 부드럽고 친절하다. 여전히 숨가쁘고 인물 단 한 명의 생각이 우박처럼 쏟아지긴 하지만. 독자인 우리는 이제, 작품을 더 음미하라고 마련해 놓은 쉼터를 찾을 수 있다. 그 쉼터의 도움을 받아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SF인지 찬찬히 즐길 수 있다.  작품 속 ‘해마’가 무엇인지 단어 몇 개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리고 그 역할은 온전히 작가의 것이겠지만) SF에 익숙한 독자라면 짐작이 어렵지는 않다. 해마라는 명칭이 바로 열쇠다. 작품 밖 현실에서 해마란 우리 두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의 이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고 학습을 담당하는 부위다. 작품 속에서 해마는 인공적인 생산품이고 ‘인간처럼 학습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해마는 특정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인공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해마들은 의인화를 거친 우화 속 캐릭터이고, 주인공 해마인 비파는 영웅 모험담의 주체다. 비파의 행적은, 수많은 신화와 그 후손인 픽사 애니메이션의 주연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운명의 등고선을 따라 오르내린다. 비파는 우연한 만남 이후 완벽에 가까웠던 정상 상태 (혹은 무지)에서 떨어져 내리고,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고독한 공간에서 각성하고, 진짜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끝에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유령해마>의 골격은 ‘학습 기계’이던 비파가 학습도 하는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여러 SF의 예를 보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의식의 모험담은 대개 주인공이 인간과 한층 더 비슷해진 모습을 보이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원형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작가라면 이야기 마디마다 들어차기 쉬운 클리셰를 뒤흔들 필요가 있다. 문목하 작가는 단순히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공지능의 지향점 위치에 놓이곤 했던 인간의 모습을 흔들어 두었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이미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게 전형성을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신 다소 아쉬운 부작용도 생겼다. 결말 부분에 중심이 되는 인물 넷 가운데 큰 축을 담당하는 이미정 캐릭터가 너무 파편화되어 통일성이 제대로 성립되지 못하는 점은 아깝다.)  작가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당하며 공을 들인 부분은 비파의 내면 변화와 그 과정이다. 고전적인 영웅의 경우 목표가 비교적 뚜렷하고 세계 인식이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비파는 그럴 수 없다. 비파는 조커를 막고 고담시를 지켜야 하는 배트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파는 인공의식이기 때문에 인간을 알아가야 하고, 논리와 씨름해야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이 작품의 큰 축임을 명백히 인식했고, 주특기인 앞글 부정식 독백을 쉴 틈 없이 활용했다. 전작에 매료된 독자라면 두 손 들어 반길 장면들이다.  그리고 2부에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다소 바뀐다. 모험담이라면 무릇 절정이 소란스러워야 하는 법. 1부에 선을 뵀던 해마와 인간이 총 출동해서 추적극과 소동을 벌인다. 그와 동시에 <유령해마>는 신기한 이야기의 매력을 마무리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런 변화는 도박일 수도 있고, 피치 못한 계산일 수도 있고, 작가가 처음부터 그려두었던 큰 그림일 수도 있다. 달라진 것 중 특히 눈에 띄는 곳은 두 군데다. 먼저 비파가 주성화의 집에 도착한 과정과 이유.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을 잘 놓아버리지 않는 작가가 이 지점에서는 양자역학에 잠깐 기대고, 곧장 전체 작품의 주제를 끌어놓는다. 또 하나는 늘어난 대사의 분량과 어조다. 이 두 가지야말로 2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대의 조명은 소동극과 우화용으로 바뀌었다. 짧고 반복되는 이별은 결국 해소될 것이다. 오해는 모두 녹아버리고, 악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주인공 비파가 내적인 갈등을 정리하고 내면의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갈 거란 사실이다.   그 목표는 유대의 확립이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유대는 결실을 얻는다.  우리는 비슷한 진행을 본 적이 있다. <돌이킬 수 있는> 에서다. 작가가 이야기의 마지막에 독자의 가슴에 남기려고 마음먹은 것의 가치는 평론이 논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책의 뒷장에 적힌 광고 문구가 말하듯, 문목하 작가는 두 작품 내내 비현실적인 SF 장치를 이용해 기이하면서도 그 이상 강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막바지의 진행과 주제가 비슷하다고 해서 두 작품이 비슷한 높이에 있다고 볼 순 없다. 전작 주인공들의 연결이 완전히 일방적인 역학 관계로 비로소 성립되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적어도 모든 사정과 입장을 양자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한 줄기 노선을 단계별로 밟아나가고 있다는 건 분명 잘못된 상상이겠지만, 다음 작품의 주제는 또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이킬 수 있는>이 단숨에 독자를 꿴 다음 끌고 가려고 많은 것을 잘라낸 화살이었다면 <유령해마>는 온갖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조금 느긋하게 굴러가는 만물마차와 비슷하다. 마차 주인은 정성을 다해 상품을 정리하고 진열하지만, 가끔 바퀴가 돌을 밟으면 서로 부딪혀 소리도 내고, 자리가 뒤바뀌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람은 소설 중반에 등장할 이 세계의 결함을 처음부터 알아챌 수도 있고, 주변 인물이 성격보다는 역할을 더 많이 갖고 있음에 못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SF 기믹을 모으고, 두루뭉술한 개념인 ‘인공지능’을 재구성해서 능숙하게 활용하고, 클리셰를 이만큼 잘 오려내면서 미래 영웅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가 몇 사람이나 될지 당장 꼽아보기는 쉽지 않다.  <유령해마>는 그런 작가의 작품이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13&s_para1=172&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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