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rimlee

[SCI-FI] 혼자인 사람들 / 19.10 크로스로드

(일러스트레이션: 유지원 교수) K의 제보 #1 돌이켜보면 섬에 방문하기 전부터 수상한 낌새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출장지가 먼 경우 원격으로 문제를 확인하고 직접 방문하는 절차를 거칩니다만 온유 섬은 좀 달랐죠. 회사 상사는 극비에 해결할 일이 있다며 저를 회의실로 불렀어요. 평소와 달리 서면으로 파악된 정보도 없어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섬으로 직접 가보라는 말밖에는요. 하지만 종종 극비 시설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었고, 저도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 섬으로 가는 페리는 온유 시의 특정 선착장에서만 출발했습니다. 선착장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경비가 삼엄했죠. 페리를 타기 직전 엄격한 보안 검사를 받았습니다. 관리자는 저와 파트너에게 몇 가지 동일한 자세를 취하도록 지시했는데 일종의 불일치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테스트는 어렵지 않게 통과했지만, 선착장의 간이 사무실에는 어딘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페리에 탄 사람은 저와 파트너, 그리고 섬과 육지를 오가며 물자 반입을 담당하고 있다는 쌍둥이 관리인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이 능숙하게 배를 운전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 명은 우리에게 배의 한구석에 앉아 있으라고 안내해주었습니다. 온유 섬은 오래전 흉악범들을 수감하는 교도소였다고 합니다. 교도소가 폐쇄된 이후에는 이색적인 분위기의 관광지로 재개장해서 한동안 인기를 끌었고요. 지금은 분리증 환자들의 재활 치료 시설로 운영되고 있는데, 제가 할 일은 시설의 감시카메라를 정비하는 일이었지요. 이상하게 자주 고장이 나는 카메라가 있다면서요. 섬에 엮인 여러 이야기 때문에 조금 섬뜩했지만 그 이상의 추측은 하지 않았어요. 수상한 장소라면 이미 여러 군데 가본 적이 있었고, 고립된 섬이라고 해도 지금은 재활 시설일 뿐, 역시 진짜 교도소의 살벌함에 비할 바는 못 될 테니까요. 섬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섬의 수상함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는 아름답다고 말하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정말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었어요. 소금 냄새가 섞인 바람이 뺨을 스쳐 가는 동안 점점 정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섬 가운데 높게 솟은 등대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등대 주위로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오르막을 따라 자리 잡았고,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단정한 건물의 색감이 바다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시설만 아니었다면 당장 관광지로 운영해도 문제없을 만큼 그럴싸한 모습이었죠. 배가 선착장에 닿자 관리인은 배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다른 직원들이 오면 함께 움직이겠다고요. 선착장에 덩치 큰 남성이 네 명이니 그렇게 조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는데도, 여럿이서 움직여야 할 만큼 위험한 곳일까 생각했지요.뒤를 돌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아름다운 온유 시가 맞은편에 있었어요. 도시는 종이 필름을 덧대어 놓은 듯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바다에 닿는 햇살이 부서져 반짝였죠. 선착장 주위 바위에 펠리컨들이 앉아 먹이를 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음산한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지만 정작 선착장에서 둘러보는 풍경은 마냥 아름다웠어요. 섬을 둘러싼 흉흉한 이야기는 다 뭐였을까요? 십 분쯤 기다리자 느린 가이드차가 언덕을 내려왔고 직원 두 명이 선착장으로 걸어왔습니다.조금 이상한 일은 그다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와 같이 파트너와 페리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험상궂은 인상의 직원 두 명이 저를 막아섰죠.“이곳의 환자들은 극심한 분리증을 앓고 있어 다른 쌍둥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격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외부인은 반드시 혼자 움직여야 합니다.” 파트너는 불안한 얼굴로 저를 보았고, 저도 그와 정확히 같은 표정으로 파트너를 보았죠. 직원의 태도는 매우 완고했고 우리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파트너와 제가 시차를 두고 이동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직원은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직원이 두 명이 같이 이동한다고 해도 함께 수리하러 붙어 다니는 것은 위험하고, 동선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에 저는 파트너를 페리에 남겨 두고 선착장에서 내렸습니다. 감시카메라의 고장 원인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고 수리도 간단했기에 삼십 분 이상이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직원들이 저를 가이드 차로 안내했습니다. 길에서 이탈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오르막에서는 반드시 차를 타야 한다고 했지요. 이유를 더 묻지 않고 그들의 말을 순순히 따랐습니다. 차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저는 조심스레 직원들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때 이상한 점을 눈치챘어요. 그들이 페리를 함께 타고 온 쌍둥이 직원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쌍둥이 직원들 한 명은 차에 탔고, 다른 한 명은 배에 남은 것이었어요.혹시 이것도 이 섬에서 지켜진다는 엄격한 분리 정책의 일환일까요? 저는 묻고 싶었지만 직원들은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오르막을 올라가는 동안 점점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 같았죠. 저는 그냥 입을 다물었습니다.멀리서 보았을 때 아름답게 느껴졌던 시설은 가까이서 보니 생각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 재정비했다고 들었지만, 건물 자체를 다시 지은 것은 아닌지, 낡고 부스러진 흔적들이 보였지요. 탁 트인 유리창 대신 창살로 감싸놓은 창문은 한때 이곳이 교도소였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문 아래 쪽에는 ‘섬에 온 것을 환영해요’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죠. 그것은 환영보다 일종의 경고 메시지처럼 보였습니다. 오싹한 생각이 드는 순간 직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로비에는 적막이 감돌았습니다.주위를 돌아보니 재활 시설보다 수용소에 가깝다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비의 거대한 철문을 통과해야 했죠. 저는 누군가 로비로 내려오지 않을지, 이렇게 삼엄한 환경에서 보호를 받는 환자들이란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환자들일지 생각하며 둘러보았습니다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때 어디선가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음에는 희미한 합창 소리가 이어졌고요. 직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습니다. “저 입들 좀 다물게 해.” 다른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 저를 사무실로 안내했습니다. “복도의 감시카메라 세 대가 고장 나고 있어요. 계속해서요. 관리 사무실 직원들도 간단한 수리는 할 줄 알지만, 고장이 반복되니 상태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되도록 오늘 안에 해결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건 살펴보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직원은 사무적인 어조와 달리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습니다. 한편 그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은 덩치가 큰 여자였는데, 그다지 불안한 기색이 없었지요. 저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수리 장비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상사는 중요한 부품 하나를 교체하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수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섬의 관리직원들에게는 교체용 부품이 없어서 곤란했을 것입니다만. 그때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원 한 명이 저를 복도로 안내했습니다. 환자를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걸어가던 복도 한쪽에서 환자들 다섯 명 정도가 우르르 걸어 나왔습니다. 그들이 나온 방은 집단치료실이었어요. 그들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새로 온 직원이신가요?” “파트너는 어디 있으시죠?” 분리증을 앓고 있다던 환자들치고는 지나치게 활기차 보여서, 저는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경고를 미리 받았지만 얼떨결에 건넨 인사였어요. 직원은 굳은 표정으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입주자들이 우리 둘을 둘러싸더니, 흥미진진한 얼굴로 제 장비를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그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손을 뻗어 제 가방을 건드리려고 했지요. “물러나.” 직원이 살벌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꺼내 들었습니다. 단단한 막대기였는데 배터리가 연결된 것으로 보아 전기 충격을 가하는 무기 같았어요. 직원의 위협에 환자들은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인솔자를 따라 복도를 떠났죠.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 직원이 말했습니다.“없어진 것이 있는지 잘 살펴요.”치료 시설이라고 들었는데, 직원들의 태도로만 볼 때는 교도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분위기였습니다.“속으면 안 돼요.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그냥 이런 곳에 가둬놓으면 치료가 될 거라고 믿다니. 대체 다들 무슨 생각인지….” 직원은 그다음에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냥 죽여 버려야 하는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가 갖는 적대감이 의아했지만, 오늘 그들을 고작 처음 마주쳤을 뿐인 제 느낌과 실제로 섬에 거주하며 환자들을 대하는 그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은 무언가 다를 테니 말을 보태지는 않았습니다.감시카메라 수리는 금방 끝났습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지요. 카메라에 직접 누가 손을 대서 부품을 빼낸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부품은 작동에 중요하기는 했지만, 빼돌린다고 해서 고가에 팔아치울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저는 단지 관리실 직원이 혼자 수리해보려다 실수를 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복도의 감시카메라 세 대가 모두 그렇게 되어 있는 걸 알았을 때는 의아했지요. 직원들에게 카메라의 상태를 설명해주며 수리를 잘 못 하겠으면 자가 수리를 하지 말고 바로 본사에 연락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니, 다들 자신은 손댄 적이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저를 다시 섬 아래쪽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직원이 푸념을 늘어놓았죠. “감시 카메라가 이렇게 자주 고장이 납니다. 우리 모두 환자들을 의심하고 있는데, 증거가 전혀 없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여기 온 그들은 대개 기술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멍청이들이에요. 얼마 전에도 오셨는데 여러 번 오가게 하셔서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섬이 처음이에요. 오는 길이 조금 멀긴 했습니다만 좋은 풍경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저는 직원이 의례적인 인사로 화답할 줄 알았습니다만, 그의 표정이 조금 굳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이라고요? 그렇군요…….”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저는 파트너를 빨리 다시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고작 한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제가 겪은 불안과 섬뜩함, 섬에 대한 생각을 파트너와 나누고 싶었고,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라는 위안을 받고 싶었죠. 그런데 파트너를 마주했을 때, 순간 무언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파트너는 늘 애정 어린 눈빛으로 저를 기다렸고 제 작업을 도왔는데, 그날 그 순간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띠었던 것이죠. “빨리 왔네. 수고 많았어.”파트너는 상냥한 말투로 말했지만, 그 상냥한 말투는 마치 섬에 있던 사람들의 말투처럼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가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을 질타하기라도 하는 듯한 어조였어요. 다정함을 흉내 내는 듯한 느낌이었죠.정말로 이상한 일은 그날 밤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온유 섬 지수의 방은 중앙동 맨 꼭대기 층의 구석진 곳에 있는 방이었다. 복도 창가에서 온유 섬의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직원은 문에 걸린 전임자의 명패를 한 손으로 떼어내고는, 다른 손으로 낡은 열쇠를 문고리에 끼워 넣었다. 문이 열리자 먼지 냄새가 확 풍겨왔다. “여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2인실이지만 혼자 쓰시면 될 것 같네요. 새로 누가 들어올 일은 없을 겁니다. 보통은 파트너와 함께 들어 오시니까요.” 직원은 무신경하게 말했다가 지수의 표정을 보고 덧붙였다.“아, 죄송합니다.”섬 입구에서 직원은 지수를 분리증 환자로 착각했다가, 신분증을 내민 이후에야 그제야 신규 상담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했다. 어쨌든 지수는 사소한 결례에는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왔다. 지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일부터 바로 근무하면 될까요?” “네. 상담 스케줄은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그리고….”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당분간 혼자서는 돌아다니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위험한 환자들이 있어서요.” 직원이 나간 뒤 지수는 작은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 두 개가 놓인 야트막한 방은 최근에 벽을 다시 칠한 듯했지만, 오래된 철제 가구의 바랜 흔적과 전반적으로 허름한 분위기는 숨길 수 없었다. 환자들도 비슷한 방을 쓸까. 이런 좁은 곳에서만 지내다간 없던 병도 생기기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커튼을 걷으니 온유 섬의 풍경이 시야로 들어왔다. 직원 방의 창문에는 창살이 없었다. 지수는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삐걱대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낡고 불편한 침대, 좁은 공간. 그래도 지수는 드디어 온유 섬에 왔고, 그 사실에 고무되었다.온유 섬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지수가 쌍둥이를 잃고 분리증을 앓고 있을 때, 의사가 지나가듯 언급한 곳이 온유 섬의 환자 격리 시설이었다.-아예 분리증 환자들을 격리하여 집단 치료 하는 시설도 있습니다. 다만 상태가 매우 심한 파트너들만이 입소 가능한 곳이고, 그래서 지수 씨에게는 입소 자격이 없지요. 지수 씨는 지금 증상이 심각해 보이지만 금방 회복될 겁니다. 대부분은 그래요.의사의 말은 틀렸다. 지수의 증상은 회복되지 못했다. 온유 섬으로 와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섬에서 치료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분리증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지수 자신과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의사들은 지수가 사별과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부모님을 죽음으로 잃고, 파트너와도 헤어지게 되니까, 모두가 겪는 고통을 왜 그렇게 혼자서만 유별나게 생각하냐는 듯한…. 물론 아무도 그런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지수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의사들은 지수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분리증을 겪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격리 치료될 만큼 고통받는 분리증 환자들이라면 지수와 공유하는 감정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을 돌보고 상담하면서 지수 자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수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 물론 순전한 이타심만이 계기는 아니었다. 온유 섬에 관해 찾아보면서 지수는 이상한 제보를 접했는데, 그러면서 어떤 섬뜩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특정한 종류의 고통이 복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중증의 분리증 환자들이 겪는 고통. 그것은 사실상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고통이었다. 정확히 지수가 겪은 고통이기도 했다. 쌍둥이를 잃은 이후 지수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불안과 강박증, 숨이 막히는 듯한 감각을 자주 느꼈으며,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기분에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의사는 고용량의 신경안정제를 처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파트너와 함께 재직하던 회사에서는 지수에게 쉴 것을 권유했다. 파트너와 둘이서 하던 일을 전보다 잘 처리하게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지수 자신의 퍼포먼스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분리증은 전염성이 강한 감정적 상태이기도 했다. 지수의 팀원들이 불안을 호소하기 시작했을 때, 지수는 휴직을 결정했다. 휴직 이후 지수는 온유 섬에 들어올 방법을 찾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온유 섬은 늘 직원을 상시 모집 중인 상황이었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지수는 기술 관리직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상담사로 지원했다. 상담사 자격증을 위조한 브로커는 “고작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요?” 하며 혀를 찼다. 지수가 지불한 금액이 금액이니만큼 그 이상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면접은 원격으로 진행되었다. 온유 섬의 관리 직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지수가 혼자라는 사실에 조금 당황했는데, 온유 섬에서 일하는 상담사 중 지수처럼 파트너를 잃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수와 대화를 나눈 끝에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분리를 겪은 상담사라면 환자들을 잘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첫날 저녁 지수는 직원 기숙사 뒷문으로 이어지는 섬의 산책로를 돌아보았다. 시설 전체 규모는 지수가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컸는데, 과거보다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계속 확대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섬의 한쪽은 커다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고 주위에 건축자재들이 놓여 있었다. 공사 현장을 제외한다면 이곳은 아름다운 바위섬이었다. 사람들이 말한 대로였다. 새들이 날아오고, 파도가 부서지고, 탁 트인 바다 위로 저무는 노을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곳. 이렇게 적막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지수는 이제 그들을 만날 것이다. 환자 H 시설의 일과는 매우 규칙적이었다. 환자들은 아침 7시에 기상하고, 7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한다. 상담 일정이 잡힌 환자들은 상담을 받고, 그밖에는 가벼운 운동을 한다. 11시 반에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는 치료 프로그램과 재활 훈련이 이어지며, 섬을 산책하는 것이 두 시간 정도 허용된다. 저녁 식사는 오후 6시이고, 취침 시까지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주말에도 비슷한 일과이지만 산책 대신 면회가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온유 섬 밖에서 오는 방문객들에게 면회가 허용되는데, 최근에는 거의 면회를 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지수가 처음으로 대면한 내담자는 한나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상담실로 들어와서는, 지수의 앞에 앉았다. 한나의 태도는 매우 방어적이었다. 상담에 별로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가 지금까지 쌍둥이가 죽은 이유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아세요? 거기 적힌 게 다예요. 차를 타고 여행 가다가 트럭에 치여서, 그 사람은 죽고 저는 살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가서 죽으려고 하다가 섬에 붙잡혀 왔고요.” 한나의 차트에는 그의 쌍둥이가 실족사로 죽었다고 적혀 있는데, 누가 틀린 진술을 하는 걸까? 지수는 더 묻지 않았다. “증상은 좀 어떤가요? 특별히 더 불편하신 데가 있으셨나요?” “아주 괜찮아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한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굴리더니 물었다.“그런데 선생님은, 혼자서 일하시나 봐요? 예전 상담사 선생님들은 늘 파트너와 같이 일하셨는데.”“네. 저도 파트너를 잃었어요.”지수는 상담 기록을 읽다가 무심코 대답했다가 잠시 뒤 상담실에 정적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한나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제가 실례했네요.” “괜찮습니다.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상담이 끝나자 한나는 묘하게 즐거운 듯한 태도로 방을 나갔다. 지수는 한나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날 내내 너무 바빠서 한나의 태도를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오후에 지수는 세 명의 환자를 더 상담하고, 다른 상담사들의 집단 상담을 참관했다. 매우 중증의 분리 증후군 환자들이라고 해서 지수는 훨씬 힘든 업무를 생각했는데, 환자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뿐 지수에게 날카롭게 굴지는 않았다. 지수가 처음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차분했고 침착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표면적으로 전혀 심각한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분리증 환자들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사고로 쌍둥이를 잃은 사람들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며 질병으로 인한 사망 자체가 상당히 줄어들었고, 쌍둥이 중 한 명이 질병에 걸리는 특수한 상황인 경우에는 대비할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죽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는데, 쌍둥이를 잃게 된 분리증 환자들은 사실상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감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지수는 파트너를 잃은 사람 중에서도 분리증을 심각하게 앓은 경우였다. 그만큼 파트너와의 유대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한나는 두 번째 상담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제 쌍둥이의 죽음을 초래한 그 여행은… 제가 제안한 것이었어요. 그때 쌍둥이와 저 사이에는 일종의 균열이 있었죠.” 지수는 한나의 말을 들으며 기록을 남겼다. ‘균열’이라는 단어에는 따로 표시했다.“우리는 미술 학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일곱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는데. 쌍둥이와 저는 그림도 거의 비슷하게 그렸고, 작업 습관도 매우 유사했어요. 하지만 학원에서 맡는 학생이 달랐죠. 저는 A반, 쌍둥이는 B반을 가르쳤어요. 문제는 제가 맡은 반에서 터졌고요.”한나는 이야기를 하며 테이블 위의 종이에 A, B, 그림, 같은 단어들을 낙서처럼 끄적이기 시작했다.“한 아이가 제게 항의를 한 거예요.” 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어떤 항의요?” “제가 아니라 제 쌍둥이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고요. B반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였죠.”“왜 그런 요구를 하죠?” “그 애는 제 실력이 못 미덥다고 했어요.” “한나 씨와 쌍둥이의 그림은 거의 같았을 텐데요. 그럼 B반으로 옮겨도 똑같잖아요.” “당연하죠.” 한나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특별한 감정은 얼굴에 드러나 있지 않았다. 지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그 애는 제 쌍둥이가 원본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지수는 당황스러웠고, 잠시 생각한 다음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없잖아요.” 한나가 지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지수가 그 시선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 한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요. 다만 애들은 다 그렇게 멍청하니까요. 아직 쌍둥이를 만날 나이도 아니고요.”그 사건이 두 분의 견해 차이를 만든 건가요?” “해당 학생의 반을 옮길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그와 저 사이에 아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어요. 그날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동기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쌍둥이는 저를 끈질기게 설득했죠.” “결과는 어땠나요?” “쌍둥이의 말대로 항의를 한 학생을 B반으로 옮기는 걸로 결정이 났어요. 대신 저는 오래전부터 제가 간절히 원했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죠. 쌍둥이는 다소 내키지 않아 했지만 수락했어요.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제가 그걸 의도하기도 했고요. 자기 뜻대로 학생 문제를 해결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때는 제 뜻대로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죠.” “그럼 혹시 그 여행에서….” “네, 맞아요. 하필이면 온유 시를 여행하던 날이었죠. 이제는 모든 게 다 농담 같은 우연의 일치로 느껴지네요.”한나가 미소지었다. “제 쌍둥이는 산산조각이 났어요. 어떤 외과 수술도 불가능할 만큼요. 마지막 순간에 저를 살리기 위해 강제로 차 방향을 틀었다고 하더군요. 덕분인지 저는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그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어요.” 한나는 팔을 들어 긴 흉터 자국을 가리켰다. 웬만한 흉터는 수술로 제거할 수 있는 시대에 보란 듯이 남은 흉터는 조금 섬뜩한 기분을 들게 했다.비극을 이야기하는 한나의 태도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는 비극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고, 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회상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한때 지수 역시 충격적인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때가 있었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인 것처럼 대하려고 했던 적도 있다.지수는 한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나를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긴 침묵 끝에 지수가 말했다.“그건 한나 씨 잘못이 아니었어요.”한나는 키득 웃었다. “저도 알아요.” K의 제보 #2 온유 섬에 다녀온 그 날 밤, 동기화에 문제가 생겼습니다.새벽에 깨어났을 때 저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어요. 다급히 파트너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그는 아무 걱정 없는 얼굴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파트너를 불러 깨울까 하다가, 다시 동기화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잘되지 않았어요.그 전날까지 동기화는 마치 편안한 꿈을 꾸듯 부드러운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온유 섬에 다녀온 그 날은 극심한 편두통이 느껴졌죠. 이전에도 편두통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상한 섬 방문의 경험과 편두통을 아예 연결 짓지 않기는 어려웠습니다.다음 날 아침 파트너에게 묻자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시설에서 먼지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심지어 그는 제 고통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죠. “샌드위치 먹을래?” 동기화 상태의 두통은 일주일도 넘게 이어졌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저는 파트너에게 클리닉을 제안했어요. 파트너는 반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반응이 저에게 더 큰 혼란을 가져왔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저는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파트너와 제가 떨어져 있었던 짧은 시간에요. 회사는 저에게 온유 섬 출장을 또다시 지시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전까지 섬을 담당하던 직원이 퇴사해버려서 제가 섬의 전속 담당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섬에 갈 수 없었습니다. 모든 균열이 섬 출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그 시기 저는 파트너와 잦은 말싸움을 벌였어요. 그전까지는 전혀 없던 일이었죠.저는 출장을 거절했고, 만약 온유 섬에 계속 가야 한다면 더는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없겠다고 말했습니다.상사는 온유 섬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감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저를 회유해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저의 의심을 키웠을 뿐입니다. 왜 담당 직원은 퇴사한 걸까요? 정말 이런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더욱 충격적인 것은 파트너의 반응이었습니다. 파트너는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섬이 문제라면 내가 정비를 할게. 너는 배에 남고. 그러면 되잖아? 네가 하는 일을 나도 모두 할 줄 알잖아. 우린 함께 일하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저는 파트너가 우리 사이의 균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심지어 회사에 계속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아주 중대한 논의에서 충돌할 줄은 몰랐죠. 우리는 여태까지 그런 종류의 논의에서 크게 다른 의견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동일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동기화가 매일 우리를 묶어주었으니까요.저는 이직하겠다고 밀어붙였고, 거듭된 동기화 끝에 파트너는 제 요구를 수락했습니다.이직 후에는 더는 온유 섬과 같은 수상한 곳으로 출장을 가지 않습니다. 동기화에서도 고통을 겪지 않으며, 파트너와의 관계도 안정적인 날들이 이어졌죠. 그러나 그것이 어떤 씨앗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그 이후로 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섬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직원들은 왜 안타까운 분리증 환자를 그런 식으로 대하던 것일까요? 파트너는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왜 저는 동기화 부작용을 겪었으며, 우리의 의견에 균열이 생긴 것일까요? 그보다 더 강한 공포가 저를 사로잡았어요. 혹시 파트너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 것이 가능할까요? 하지만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단지 파트너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습니다. 원인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언제나 애정을 가득 담아 바라보던 사람의 눈빛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건 정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환자 A “저는 두 번째 파트너였어요.” 아멜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쌍둥이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첫 번째 파트너를 잃었죠. 제가 그를 만난 건 아마 열 다섯 살쯤… 그러니까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죠.”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있었나요?” “아뇨. 우리는 서로를 아주 사랑했어요. 가끔은 제가 첫 번째 파트너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때가 있었죠… 그가 같은 눈빛으로 첫 번째 파트너를 바라보았으리라고 생각하면, 마치 그와 제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아멜리는 그 말을 하면서 조금 웃었다. “하지만 제가 틀렸죠. 쌍둥이와 저는 같은 영혼이었고, 이제 저는 영혼이 쪼개진 듯한 고통에 처해있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살아있는 동안 더 잘해주었을 텐데.” 아멜리는 그 말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가득 고인 눈물이 무슨 말이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아서, 지수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한나와 달리 아멜리는 정말로 심각한 분리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멜리는 자신의 영혼 절반을 누군가 도려내간 듯한 아픔을 매일 느낀다고 말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눈을 떴을 때, 손을 내밀었을 때 늘 그곳에 있던 자신의 쌍둥이가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래 두 사람이었던 하나의 영혼이 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아멜리와 이야기를 나눌 때 지수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아멜리에게 건네는 조언에는 진심을 담기게 되었다. 일상조차 제대로 이어갈 수 없던 지수가 어떻게 상실을 딛고 일어섰는지, 여전히 파트너를 그리워하지만 그런데도 파트너가 없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수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 역시 상실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왜 새로운 파트너를 찾지 않으세요?” 아멜리가 그렇게 물었던 날, 지수는 한참을 망설였다. 지수가 새 파트너 연결을 신청하지 않은 것은 그의 첫 파트너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너무나 충격적인 나머지 지수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지수는 다시는 다른 파트너를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자주 느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은 아멜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멜리는 자신이 두 번째 파트너였다는 사실에 일종의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 대한 질투는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아멜리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지수는 신중하게 말했다. “저는… 파트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그가 떠났을 때 제 인생의 전부가 사라진 기분이었죠. 그런데 아멜리, 당신의 쌍둥이도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첫 번째 파트너는 잊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록, 동기화의 횟수만큼 쌍둥이들은 더 강하게 결합되니까요.” 아멜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울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한 아주 강력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고, 지수는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며칠 뒤 검진실에서 보내온 아멜리의 진단 결과는 다소 의아했다. 검진을 맡은 의사는 아멜리가 당장 퇴원해도 될 만큼 호전된 증상을 보였다고 기록했으며, 사실상 분리증을 겪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진단 결과에 대한 의문은 며칠 뒤 다른 직원과의 대화를 나누며 더욱 증폭되었다.직원들은 환자들과는 분리된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따로 했다. 지수는 지난 두 달간 점심 투약 지도를 담당하느라 아직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직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날은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되면서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지수는 온유 섬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냐는 직원들의 말에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다가, 옆방에 얌전히 줄을 서 있는 환자들을 보고 말했다. “저는 섬에 오기 전까지는 분리증 환자들이 이렇게 침착하고 차분할 줄 몰랐어요. 보통 격리치료를 받는 분리증 환자라고 하면… 굉장히 난폭하고, 공격적이고, 일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 다들 지시를 잘 듣네요.”지수는 그렇게 말한 다음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놀랐는데,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잠시 뒤 한 직원이 말했다.“그렇죠? 굉장히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그렇게 말한 직원은 자신의 이름이 승아라고 했다. 그는 온유 섬에서 5년째 쌍둥이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여기서 가장 오래 근무한 편이라고 했다. 승아가 들려준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당혹스러운 것이었다.그들 쌍둥이가 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온유 섬의 직원들은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섬을 떠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글쎄요. 일단 환자들의 증상이 완화되어서 직원들의 업무 강도가 줄었어요. 예전에는 교도소 같은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평범한 재활 시설이 되었죠. 다들 원인을 궁금해하는데 진짜 이유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요. 오래전부터 있었던 직원들이 지금은 거의 다 나가기도 했고요. 원장은 섬에 거의 머무르지 않는 편이고…. 그런데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에요.” 승아가 말소리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속삭임에 가까워졌다. 승아의 쌍둥이가 말을 이어받았다. “섬의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시설 확충 공사에, 이미 있는 방마다 침대를 빽빽하게 채워 넣어도 감당이 안 될 만큼요. 환자들 각각을 다루는 부담은 줄었지만 계속 직원이 부족한 이유예요. 최근에 도시 외곽에 신규 시설 인가가 나서 그나마 다행이죠. 그곳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사실에 반대가 워낙 많았지만 이대로라면 섬이 미어터지고 말걸요. 그 시설로는 경증 환자들을 이동해서 수용할 예정이에요.” “섬에 새로 입주하는 분리증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가요?” “그렇죠. 게다가 분리증 환자의 사망률이 급감하기도 했어요. 원래 분리증은 굉장히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었잖아요. 자살하는 파트너들도 워낙 많고요.” 승아의 쌍둥이가 말했다. “온유 섬은 재활 치료 시설이지만 재활에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장소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죠. 분리증 환자들은 이제 죽지 않아요.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3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가 드물 정도였는데, 지금은 사망하는 환자가 거의 없어요. 직원들이 모르는 사이에 약이 바뀌었거나 새 치료법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라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수는 섬에 오기 전 들은 K의 제보를 생각했다. 그 제보는 정확히 5년 전의 것이었는데, 그때도 K는 환자들이 생각과 달리 건강하고 활기차 보인다고 제보했다. 온유 섬의 변화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다른 직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는지 묵묵히 식사했지만, 세 사람의 대화에 호기심을 가지고 끼어드는 직원도 있었다. 그도 최근에 지수와 비슷한 시기에 섬에 온 직원이었다. “그럼 이제 재활에 성공한 환자들도 많겠네요. 그렇게 되면 다행인 일 아닌가요? 혼자 남겨진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살아남아서 잘 지내면 좋은 거잖아요.” 환자 식당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지수는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지 보았지만, 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그게 참…. 이상한 게, 그것도 아니에요.”승아의 말소리가 더욱더 작아졌다. “정말 이상한 건, 섬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급격히 늘어났는데 나가는 환자들이 없어요. 완치로 판정되거나 증상이 완화되면 섬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많이 나아진 것 같아서 시설 퇴소 테스트를 해보면 통과하는 환자가 거의 없는 거예요. 사망하는 환자조차 없으니 섬은 이미 포화 상태예요. 전보다 환자 한 명당 손이 덜 가니 겨우 유지되고 있지만, 직원을 이렇게 계속 채용한다고 해서 시설 수용 한도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때 식당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고, 직원들은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약 지도를 돕던 직원 한 명이 손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약을 받던 환자 한 명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식사는 중단되었고, 직원들은 환자에게 안정제를 투여하고 식당을 정리하느라 부산스러웠다. 지수는 승아가 새 의자를 가져오느라 옆을 스쳐 가며 속닥거린 말을 들었다. “제가 이상하다고 한 일이 바로 이런 식이에요. 저 환자, 지난 2년간은 아무 문제도 없었거든요.”이유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일들이 그 이후에도 일어났다. 하루는 단체 미술치료를 보조하기 위해 수업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열 명의 환자들이 한 반이 되어 수업을 들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보라는 말에 환자들은 모두 자신의 쌍둥이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수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환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리증 증상이 발현되어 잠시 수업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강사는 다른 그림을 그려보도록 권유했지만, 환자들은 막무가내였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강사는 환자들의 분리증이 여전히 완화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지수는 수업이 종료되고, 마지막에 남아 책상과 미술도구를 정리하던 중에 환자들이 서로 대화하는 말소리를 들었다. “제법 닮았지?” “잘 그렸네. 화가라도 되는 줄 알겠어.” 그는 수업 시간에 보이던 태도와는 달리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그림이 자랑스러운 듯 의기양양해 보였다. 지수가 그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환자들은 흘끔 지수를 보고는 짐을 챙겨 얼른 나가버렸다. 그 대화를 곱씹으며 지수는 한 가지 이상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죽은 쌍둥이를 그린 게 맞을까. 어쩌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에 불과하지는 않을까.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K의 제보 #3 저는 열 살에 제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대면실로 그가 걸어 들어오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해요. 저와 완전히 같은 얼굴, 완전히 같은 체격을 한 소년이 문을 통과해 들어오고 있었어요.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와 저는 완전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죠. 우리 둘 다 아주 충격받은, 경악에 가까운 얼굴이었습니다.그때 쌍둥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색한 첫인사를 했지만 아마 그 외에는 특별히 나눌 이야기도 없었을 거예요. 그는 갓 복제된, 어제까지의 제 기억을 모두 가진, 사실상 저와 동일한 존재였으니까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라고는 그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유동식을 먹었고, 저는 아버지가 차려 준 아침을 먹었다는 차이밖에 없었죠.쌍둥이가 평생의 동반자라고 했던가요? 센터를 나오면서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나는 절대로 저 존재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의 복제판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상담사는 그것이 첫 만남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했지만, 수백 번의 만남 뒤에도 무언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죠.그리고 그날 밤의 동기화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잠든 사이에 쌍둥이와 저 사이의 첫 동기화가 진행되었어요. 뉴런 동기화에 대해서는 여러 번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요. 하지만 그 감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떤 외로움도 고독도 그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감각, 앞으로는 절대로 다시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저는 파트너를 만난 다음 날에 그것을 비로소 이해했어요. 열 살의 나이였죠.쌍둥이 시스템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말로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가족 제도의 해체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쌍둥이들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유년기 정체성 혼란을 겪지는 않는지… 저도 논쟁적인 이슈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지 묻는 이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지 않았나요? 이 사랑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지요. 동일한 존재와의 동기화는 절대적인 사랑을 제공합니다. 궁극적인 영혼의 교환입니다.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다른 기억을 가진 존재들과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유대감입니다.쌍둥이 시스템의 등장 이후로 인간은 더는 고독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어요. 타인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쌍둥이라면 가능합니다. 독립적 자아가 유지되는 시간은 오직 48시간이니까요.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잠들었죠. 우리는 서로의 완벽한 복제판이기에 서로가 언제 혼자 있고 싶어 하는지도 이해해요. 우리는 사실상 하나이므로, 갈등할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그 명제를 절대적 진리로 여겼습니다. 매일 같은 영혼이 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충돌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의 하루를 똑같이 경험했죠. 쌍둥이는 사랑의 완전한 형태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불안에 떨 필요도 없었습니다.동기화 시스템은 매일 밤 저의 뉴런을 지배했습니다. K, 네 쌍둥이를 사랑해. 너와 같은 영혼을 가진,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너의 복제판인, 너를 사랑하는, 네게 속박된 존재를.그 절대적인 사랑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저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근원적 공포였습니다. 온유 섬에 대해 조사를 이어가던 저는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을 알려도 될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숨기기만 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자 S 어느 날 지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정말 이들은 분리증 환자가 맞을까? 쌍둥이를 잃는 일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한다. 열 살부터 평생을 함께해온 파트너, 매일 밤 동기화를 통해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던 존재가 떠나버렸을 때의 심적 혼란은 다른 무엇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수가 그 상실을 경험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분리증의 증상은 파트너들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한때 지수는 환자들의 고통만은 진심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기에 온유 섬으로 오겠다고 결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들은 분리증 환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 지수의 앞에서는 죽은 쌍둥이 이야기를 하며 오열하다가도, 상담 시간이 끝나면 곧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눈물을 닦고 일어나는 식이었다.환자들 사이에는 직원들이 알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유대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쌍둥이를 잃고 남겨진 파트너들이었고, 그 비극적인 사실이 그들에게 특정한 형태의 연결망을 제공한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지수는 이 섬이 점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라를 만나면서 지수는 그 모든 의심을 지워버렸다.지수가 온 지 세 달째, 사라가 섬에 들어왔다. 아침 식사 시간에 누군가가 사라가 왔다는 소식을 알리자 식당은 눈에 띄게 시끌벅적해졌다. 사라는 5년 전 시설에 거주하던 환자로 드물게 완치 판정을 받아 육지로 나가면서 재연결을 받았는데, 새로 연결된 사람에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분리증이 재발해 섬으로 돌아온 경우였다. 지수가 섬에 온 이후에 새로 입주한 환자들은 꽤 많았지만, 사라처럼 나갔다가 돌아오는 환자는 드물었다.시끄러운 식당에서 지수는 다른 환자들을 달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들이 동요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재활에 실패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니까. 하지만 들여다보니 시설의 분위기는 실망과는 달랐다. 사라가 도착한 날 저녁 식당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는데, 환자들은 오랜 친구가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 그게 정말로 환영할 만한 일일까?지수는 사라의 상담을 맡게 되었다. 며칠 뒤 사라가 직접 지수에게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지목해왔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여기 오기 전까지 동기화 엔지니어로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사라는 수줍은 듯이 말했다. 다른 환자들에게 지나가듯 했던 이야기를 꼼꼼히 챙겨 들은 모양이었다. 지수를 바라보는 시선에 동경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상담 첫날 지수는 사라가 지금까지 맡아왔던 환자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담실로 들어 온 사라는 길게 기른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려 처음에는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인사를 건네며 눈을 마주치는 순간 지수는 흠칫하고 놀랐다. 사라는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한때 지수가 하고 있었던 그 눈빛을.사라는 감정이 무척 풍부했고, 다른 환자들처럼 방어적이거나 경계하는 태도가 없었다. 지수가 환자들의 거짓 없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한참을 공들여야 했던 반면, 사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7년 전이었어요. 치안이 좋지 않은 한 도시로 출장을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죠. 골목에서 시비를 걸어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 쌍둥이는 머리를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범인들은 도망쳤어요. 당국의 협조가 없어서 결국 그놈들을 잡지도 못했죠.” “안타까운 일이군요.” “아뇨. 그게 제가 쌍둥이를 잃은 이유는 아니에요.” 사라는 차분하고 슬픔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었어요. 제 쌍둥이가 뇌 손상을 입은 이후로 저는 쌍둥이와 동기화를 하지 못했어요. 단 한 번도요. 혹시 선생님은 그런 사례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라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 지수는 동기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들었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보통은 두통을 겪거나 동기화가 완전하게 되지 않는 정도였다. “감응 반응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죠. 완전히 분리된 영혼이 된 것 같았어요. 결국… 제가 살아 있는데도 쌍둥이는 분리증을 경험했어요. 절벽으로 몸을 던졌죠. 저도 따라 죽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되지 않았어요.” 사라는 자신의 이름이 개명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 쌍둥이와 함께 쓰던 이름을 쓸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괜찮을 거라고 믿었어요. 이름을 바꾸고,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동기화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비록 제 원본이었던 쌍둥이만큼 완벽한 동기화는 아니겠지만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엉망이었어요.” 사라는 결국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도저히, 털끝만큼도 사랑할 수 없었어요. 그들도 그들대로 화를 냈고요.” 사라는 지수가 섬에 도착해서 만난 환자 중 진심을 가장 솔직하게 말해온 환자였다. 사라는 지수를 경계하지 않았고, 감정의 반응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으며, 한 시간의 짧은 상담 중에도 잘 웃고 또 잘 울었다. 지수는 사라에게 마음이 가는 자신을 자각했다. 환자에게 감정을 너무 이입하는 것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라는 지수가 겪었던 감정적 고통을 거의 똑같이 겪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사라가 겪은 ‘불일치’조차 지수가 경험한 것과 유사했다.지수는 때로 사라를 보며 죽은 자신의 쌍둥이를 떠올렸다. 그건 이상한 생각이었는데, 지수의 쌍둥이는 곧 지수 자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라가 지수를 닮았다는 뜻일까? 하지만 사라는 확실히 지수보다는 지수의 파트너였던 존재를 닮았다. 정확히는 불일치가 시작된 시점부터의 파트너를. “혹시 선생님의 파트너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서 사라가 그렇게 물어왔을 때 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마치 생각을 읽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선을 넘었죠.” “아니에요. 아직 저도 마음의 정리가 완전히 된 건 아니어서요.” 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처음으로 파트너와의 불일치가 발생했던 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동기화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동기화 시스템이 아주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고, 또 하나의 영혼이라고 해서 그 안에 여러 충돌하는 측면이 깃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동일한 사람이 어제와 오늘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은 너무 흔하지 않은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동기화 시스템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지수는 자신과 파트너 사이에서 기능을 가장 먼저 시험해보곤 했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권유되는 횟수보다도 두 사람은 훨씬 자주 동기화를 시도했다. 파트너는 동기화가 너무 잦아서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며 불평할 때도 있었지만, 논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수에게는 ‘버튼’이 있었으니까. 지수는 한 번도 버튼을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버튼의 존재만으로 결정의 우위를 가졌다. 지수는 파트너와 자신이 일치되는 기분이 좋았다. 하나의 자아를 갖게 되는 순간, 어떤 종류의 고독도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불일치가 지수와 지수의 파트너를 혼란스럽게 할수록, 두 자아는 더 자주 겹쳐져야만 했다.파트너가 가끔 버튼 시스템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쌍둥이가 정말로 평등한 형태의 사랑이라면, 한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버튼은 불공평하지 않아? 버튼은 동기화 시스템 개발 초기에 도입된 것으로, 치명적인 불일치 현상이 발생할 경우 결국은 한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툴이었다. 실제로 버튼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수는 그것이 단지 상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쌍둥이의 유대감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한 사람의 결단이 있다면 둘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상징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지수는 파트너의 말에 대해 뒤늦게 생각해보곤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했을까. 불일치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았는가. 지수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었다고 생각했다.과거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고통스러웠지만, 사라와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지수는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는 정말로 위로받는 것 같아요. 다른 상담사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감정을 못 느꼈어요. 어쩌면 제가 이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요.” 사라와의 상담이 점점 진지해지면서, 지수는 분리증 환자들에 대한 의심도 거두었다. 지수가 사라와 친해지기 시작하자 다른 환자들의 지수에 대한 태도도 친절해졌다. 사라는 환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른 환자들은 사라만큼 충분히 마음을 열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지수는 사실 전문적인 상담 교육을 받지도 않은 가짜 상담사에 불과하니까. 지수가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도 지수를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그날 오후 지수가 사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한 것은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지수와 사라가 둘 다 경험했던 쌍둥이와의 ‘불일치’.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라가 겪은 일이 그만의 고통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시설을 빙 둘러싸는 산책로는 어느새 녹음으로 물들어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철제 난간 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보였다. 강한 해류가 흐르고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였다. 이곳이 교도소였을 때 어느 흉악범도 이곳을 자력으로 탈출한 적은 없다고 들었다. 환자들은 자발적으로 나갈 기회조차 붙잡지 않았다.먼바다를 보던 사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멋진 풍경이에요. 이제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요.” “저도 파트너와 이렇게 해안을 따라 자주 산책했는데. 그러고 보니 정확히 이 바다였네요.” 사라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지수의 말을 들었다. 지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무하던 회사가 섬 건너편 온유 시에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기막힌 우연의 일치네요. 동기화 시스템을 다루는 본사 건너편에 분리증 환자들의 섬이 있다니.”“이전부터 섬을 봐오셨나요?” 사라가 온유 시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오늘따라 바다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고 도시는 그림자처럼 보일 뿐이었다. “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섬뜩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죠. 이렇게 아름답고도 이해할 수 없는 곳인지는 몰랐어요.” 오후 산책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지수는 사라와 함께 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파트너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이상한 종류의 불일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아주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은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어떤 불신이었죠?” 이번에는 마치 사라가 지수를 상담해주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지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야기했다. “사소한 불신이었죠. 처음에는 정말 사소한 일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설거지할 때 그릇을 쌓아놓는 방식이라거나, 식탁에 식탁보를 깔지 않는 문제라거나, 근무 시간을 30분 앞당기는 문제에서 의견 충돌이 생겼어요.” 지수는 아직도 그 불일치의 이유를 모른다. 온유 섬에 와 환자들의 데이터를 보면서 문제의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래요. 저와 파트너도 가벼운 여행을 떠났었네요.” 지수는 이야기를 하며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사고 직전까지 파트너는 부두에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원래도 부두는 두 사람이 함께 자주 방문하는 장소였지만, 그때 파트너에게는 단순한 데이트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파트너가 온유 섬을 보고 있었던가?그때의 대화를 생각하면 지수는 통증을 느꼈다. 그날 지수와 파트너는 부둣가에 서서 오랜 시간 동안 논쟁했다. 그러니까 클리닉을 받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지수와, 단지 흔히 있는 불일치의 문제라고 말하던 파트너. 우리가 동일해야 한다고 말하던 지수와, 우리의 모든 것이 같지는 않다고 말하던 파트너. “의견이 맞지 않았죠. 사라, 그건 당신이 경험한 것과 거의 같아요. 불일치는 저와 파트너를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아주 사소한 균열이 사랑하는 두 영혼을 얼마나 상처 입히는지 그때 깨달았죠.” 논쟁 끝의 결정권은 지수에게 있었다. 지수는 매번 망설였고, 파트너가 원하는 대로 동기화를 미룰지 고민하곤 했지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지수는 쌍둥이가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웠다. 지수는 둘 사이에 생겨난 불일치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봐 두려웠다. “너무나 허망한 이유로 그를 잃어버렸어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지수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평생의 사랑을 잃어버린 회한과 죄책감이 밀려들었다.사라는 말을 멈춘 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마치 무언가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도 선생님을 이해해요.” 사라의 말에 지수는 비로소 누군가에게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영혼의 반이 뜯겨나간 것 같은 지독한 상실감을. 지수는 섬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K의 제보 #4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날 사랑한다면 네가 가진 그것을 내려놔.” 그의 표정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제발,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걸 버려줘.” 저는 버리지 못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울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밤 지수는 목을 짓눌러오는 듯한 통증에 눈을 떴다.시야가 가려져 있다.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입에 천과 같은 것이 쑤셔져 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대체 여기가 어딜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온몸을 버둥거렸지만 팔과 다리가 꽉 묶여 있다. 무릎이 긁힌 듯이 아파온다. “당신의 쌍둥이가 남긴 메시지가 있어요. 변조된 목소리에,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해서 확신하기 힘들었지만, 드디어 찾았네요.” 누군가의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묶인 채로 바닥에 질질 끌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동안 머리를 벽에 마구 부딪혔다.눈을 떴을 때 지수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사라와 눈이 마주쳤다. [저는 불일치 오류를 개발한 최지수입니다. 여러분이 파트너들을 구조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도 섬으로 갈 수 있나요?] [아뇨. 저는 원본을 죽이지 않을 거예요. 제 원본에게 분리를 요청할 겁니다.][성공할 수 있어요. 그날 이동할 수 있도록…] [계획은 어긋나지 않아요. 꼭 기다려주세요.] [저는 그를 믿어요. 그는 저를 사랑하니까요.] 환자들이 지수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허름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흙바닥 위였다. 벽 대신 공사 천막이 공간을 분리하고 있었다. 지수는 끊임없이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보았다. 그 목소리는 지수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 목소리가 정확히 지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아챘다. 목소리는 한때 지수의 파트너였던 이의 것이었다. [안 돼요. 저는 그를 죽일 수 없어요.]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고 싶었다. 여전히 입이 틀어막혀 있었다. 지수는 눈을 돌려 주위를 보았다. 사라와 한나, 아멜리, 그리고 지수가 상담했던 다른 환자들…. 그들은 평소와 달리 아주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거나,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7년 전 당신의 파트너가 이 모든 것을 시작했어요.” 사라가 말했다. “그는 동기화에 관한 한 최고의 엔지니어였죠. 당신처럼요.” 누군가 다가와 지수의 입을 막고 있던 천 뭉치를 뺐다. 하지만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동기화 시스템에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그의 자료를 가장 먼저 수신한 게 저였죠.”

사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나와아멜리가 다가와 지수를 카트 위로 끌어 올렸다. 그들은 지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자료를 처음으로 수신했을 때, 저는 온유 섬에 갇혀 있었고 분리증으로 죽어가고 있었어요. 매일 밤 죽으려고 했지만, 매번 겁이 많아 실패했죠. 그래서 자료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저는… 정말로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제가 쌍둥이를 죽였다는 사실에.” 사라는 한순간 정말로 울먹거리는 것 같았는데, 옆에서 한나가 키득거리며 사라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그놈을 죽여서 다행이지.” “그런가요?” “널 만나기 전까지 그놈이 자기 파트너를 두 번이나 죽였던 거 기억해? 사실상 네가 많은 파트너를 구한 셈이야.” 사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건 한나 당신도 비슷했잖아요?” “그렇지.”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지수의 눈앞에서 오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어요. 그 자료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거죠. 동기화 시스템이 결코 쌍둥이 양쪽에게 동등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를요. 그리고 불일치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저는 섬에서 환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분리증 환자들이 그 기만적인 시스템에 대해 깨닫기까지는 뜻밖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사라는 말했다. 지수를 경멸하는 어조였다 .“온유 섬에 오려면 조건이 필요해요. 일단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 분리되기 위해서는 한쪽이 죽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죽지 않아도 가능하죠. 동기화를 영구적으로 포기하면 돼요. 자아의 분리는 생각보다 빨리 시작되거든요. 48시간 이후부터요. 강제 동기화를 유도하는 ‘버튼’을 포기한다면 쌍둥이 양쪽이 죽지 않고도 분리될 수 있죠. 그건 이 시스템을 다뤘던 당신이 제일 잘 알 거예요.” “난… 몰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어?”지수는 말했다. 온몸이 맞은 듯이 아팠고 얼얼했다. 그들이 지수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왜 안 되겠어요? 불일치가 그걸 증명하잖아요. 쌍둥이는 결코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할 수도 없다고요.” 한나가 싱글거리며 지수의 다리를 걷어찼다. 지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츠렸다. 두 사람이 지수를 카트에 묶었다. 지수는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이제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카트를 밀어 천막 밖으로 이동했다. 눈이 부어오른 것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수는 그들이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한나가 중얼거렸다. “최고의 엔지니어 한 명이 동기화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헛발질해댈 때, 그의 쌍둥이는 동기화의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지.” 사라가 말했다. “맞아요. 당신의 파트너가 불일치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한 최초의 파트너예요. 선생님, 자랑스럽지 않나요? 온유 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직원들에게도 불일치를 전파했어요. 이제 섬은 하나의 거대한 성채가 되었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이 여기에서 시작될 거예요. 그 모든 것을 바로 당신의 위대한 파트너가 시작했어요.” “그는 아니야. 그는 나를 사랑했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지수가 토해내듯 말했다. 사라의 눈빛이 한순간 변한 것 같았다. “바로 그게 그의 가장 큰 실수였어요.” 지수는 몸을 마구 비틀었지만, 단단히 결박된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당신의 쌍둥이는 끝까지 당신을 믿었어요. 우리는 메시지를 보내서 거듭 설득했어요. 원본들은 결코 자신이 가진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그는 수많은 실패 사례를 보고도 당신만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주장했어요. 동등한 사랑이 있다고, 그런 사랑이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고.”한나와 아멜리가 카트를 밀었다. 산책로였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뺨을 때렸다. 덜컹거리는 돌길 위에서 지수는 메스꺼운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파트너를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에게 이름을 준 적도 없죠. 그래서 우린 아직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나는 그를 사랑했어. 그건 진심이었어. 네놈들의 쓰레기 같은 원본과 나를 비교하지 마. 나는 내 파트너를 때린 적도 살해한 적도 없어. 그를 사랑했으니까… 그에게는 다른 이름이 필요 없었어. 그는 나였고, 나는 그였어. 우린 같은 존재였어.” 사라가 고개를 숙여 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아뇨. 당신은 파트너와 다른 존재였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요.”사라는 상냥하게 말했다.“버튼을 버리지 않았잖아요.” 덜컹거리던 카트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위치였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당신이 가진 최후의 권리를 포기하라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 버튼을 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 한 사람도, 누구도 그 시험을 통과 못 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시험의 패배자들을 죽이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죠.” 지수는 파트너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파트너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던 순간을.그는 절벽 끝에서 지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동기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결코 동등하게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발 그 버튼을 내려놓아 달라고 애원했다. 사랑을 증명해달라고 말했다.지수는 버튼을 눌러 강제 동기화를 시작했다.지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와 분리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수는 이제 잊고 있던 모든 것을 기억한다. 강제 동기화가 시작되자 그의 일그러지던, 비탄에 잠긴 표정을. 절벽 끝을 향해 무너지듯 쓰러지던 그의 모습을. 그를 집어삼키던 바다를.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 울리지 않았던 총성을 기억한다. “진실한 사랑은 섬 안에 있어요. 섬 밖에는 없죠.” 사라가 총을 들어 지수를 겨눴다. “넌 여기 머물 자격이 없어. 이건 네 쌍둥이의 복수야.” 섬에는 혼자인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사랑을 끝내고 왔다. 그들은 이제 불평등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 불일치를 퍼뜨리고, 섬을 확장해나가며, 사랑의 기만을 드러낸다.그들은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다. 혼자인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들은 지금부터 혼자인 채로 함께일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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