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rimlee

[SCI-FI] 욕망의 S(trong) AI, 레미엘 / 20.7 크로스로드

송충규 /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박재령)


1부

1. 

화성에서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6개월이 흘렀고 회복실에서 우주여행 동안 약해진 근력을 회복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2050년 11월 2일 저녁 6시, 혁준이 우주공항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지구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지는데 붉게 상기된 하늘과 구름은 반갑다며 손짓하고 불어오는 찬바람은 혁준이 걷는 길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며 길을 터주었다. 혁준은 약간의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한 공유차를 탔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졸렸고 쭉 뻗은 고속도로를 잠이 든 상태로 1시간정도 달렸다.


차내 알람소리에 깨어나 차창의 블라인드를 걷어내니 불빛이 반짝이는 원시촌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차창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푸른 숲속의 자연이 주는 공기는 늘 신선했다.

반경 5Km내에 디지털 전자기기가 없고 사용이 금지된 원시촌은 첨단문명을 거부하며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가로등 불빛이 환한 도로 주변으로 역사책에서만 보던 1970~90년대까지의 건물들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혁준의 아내는 연애할 때 종종 만났던 이곳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나기를 원했다. 클래식이 흐르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아내는 이미 와있었다.

올해 서른다섯, 3년 만에 만난 아내는 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가녀린 몸매와 창백하고 핼쑥한 얼굴, 외모는 변함이 없었다. 아내는 살짝 긴장한 듯 와인을 들이키더니 풍채가 좋고 기름진 얼굴의 혁준을 바라보았다.

“거기 생활은 어땠어?”

“별로. 엄청난 환상을 가졌는데 도착해보니 지옥에 왔구나, 했지. 연봉은 많아도 기지에 갇혀서 같은 생활의 반복에, 인원이 부족하니 업무도 빡세고....... 당신이 돌아오라는 핑계로 온 거야. 아니면 화성에 뼈를 묻을 뻔했지. 국장이 귀환하는 걸 극구 말리면서 훼방을 놓았거든.”

“당신과 헤어지고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어. 늦게라도 돌아와 줘서 고마워.”

뜻밖의 말이었다. 사실, 혁준은 아내를 만나면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었다. 혁준은 당황한 듯 와인을 황급히 마시더니 아내를 다시 보았다. 오랜 시간을 별거하는 동안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사를 마칠 무렵이 되었다. 입맛이 없는지 아내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고 가끔씩 와인과 물만 마셔대는 아내를 혁준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도 어색해. 2년 6개월 동안 서로 연락 한번 안했으니, 하도 연락이 없으니까 다른 남자 만나서 잘 살줄 알았는데.”

“이혼도 안했는데 그럴 리가 없지. 어찌됐든, 내가 먼저 연락했잖아. 미안해. 그 동안 왜 그렇게 잘난 척 하면서 말도 안 되게 싸웠는지 후회도 하고 반성도 했어. 앞으로 잘 할게. 같이 있어 줄 거지?”

역시 또 의외의 말이 나왔다. ‘진심일까?’ 대답 대신에 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올게.”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본 아내는 와인 잔을 다 비우고 혼자 멍하니 창밖의 어두운 숲속만 바라보았다.

혁준은 소변을 보면서 지난날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뭇 남자들을 설렘 속에 빠트린 미모의 공대 여신으로 수석졸업과 인공지능 박사학위까지 최연소로 취득하며 탁월한 능력으로 학계에 주목을 받던 아내, 하지만 엘리트로서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자기주장만 내세워 결혼생활 내내 혁준과 다투는 일이 많았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하고 완벽한 성격은 혁준을 질리게 했고 그런 성격차이로 이혼을 고려하다가 잠시 서로 헤어져 있기로 합의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살갑고 상냥하다. 포옹으로 맞이했고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애교 섞인 말투에 손등까지 어루만지는 스킨십도 했다. 과거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용서를 구하지도 않던 무뚝뚝하고 차가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인간미를 내뿜으며 달라질 수 있는지 혁준은 낯설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오랜만에 연애할 때 그 떨리는 심정으로 돌아간 것 같아 아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혁준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질 무렵, 화장실에 설치된 인터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혁준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가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원시촌에서 개인의 휴대전화는 입장 시에 수거될 뿐 아니라 몰래 들여와도 전파차단으로 먹통이 된다. 그래서 긴급한 연락이 필요할 때 중앙통제실의 유선망을 이용한 인터폰을 사용하고 있다.

“ID A-345-JPG590, 호랑이와 토끼는?”

여성 안내원이 신분 확인을 위한 질문을 했다.

“토마토.”

혁준이 암호를 말하자 안내원은 외부전화로 통화를 연결했다. 곧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혁준 심사관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중부서 교통순찰대 안준석입니다. 5380-8978 도지나씨 차량이 19시경 광장대교에서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로 추락했습니다.”

“뭐라고요? 아, 아내랑 지금 식사....... ”

불길한 느낌, 수화기를 던지듯 급히 내려놓고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레스토랑 내부로 뛰어들어 왔을 때 방금까지 식사하던 자리에 아내는 없었다. 

혁준은 팔,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잠시 현기증이 났다. 주변을 살피다가 부리나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2. 

어두운 거실에 야윈 어깨가 들썩였다. 혁준은 실내등을 켜고 80세가 넘은 흰머리를 한 늙은 장모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슬프시겠지만 그만 우시고 들어가서 좀 쉬세요. 경찰이 수색 중이니까 희망을 버리지 마시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주름진 얼굴의 장모가 돌아보며 앙칼지게 되받아쳤다.

“무슨 소리야! 얼음장 같은 강물 속에서 몸도 아픈 애가 무슨 수로 어떻게 살아나? 이게 다 강서방 때문이야!”

장모의 분노가 가슴에 꽂히자 혁준은 숨이 막히고 온몸이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아픈 아이를 두고 몇 년 동안 어딜 갔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뭐하는 거야? 맨날 부부싸움만 하더니 별거까지 하고! 우울증에 걸린 애한테 한번이라도 왔으면 이런 사달이 났겠어? 자살까지 했겠냐고!”  

“지나가 자살을 했다는 건가요?”

“자살이 아니면 왜 강물에 추락을 해? 얼마나 속상했으면 죽고 싶다고 써놨겠어? 강서방이 오자마자 왜 이런 일이 터지냐고!”

장모는 독하게 몇 마디를 내뱉더니 슬픔에 복받쳐 굵은 눈물을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다시 오열을 했다.

“아이고!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하니, 흐흑!” 

한참 흐느껴 울던 장모는 심신이 지쳤는지 상체를 소파에 엎드렸고 울음소리는 작아지며 들리지 않았다.

심란해진 혁준은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함을 벗어내려 집밖으로 나왔다. 날이 어두워져 외진 곳에 위치한 주택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는 집밖의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 집 뒤편 숲속에서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된 걸까? 사고가 아니라 정말 자살을 한 걸까?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왜?’

어제 식사를 할 때 같이 있어 달라는 아내의 말에 바로 응답하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아내의 죽음이 현실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 오니 후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자살의 원인이 그것 때문일까.

납득이 안가는 부분도 있다. 원시촌에서 추락한 장소까지 적어도 시속 80Km로 달려도 20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몇 분 만에 그곳까지 아내가 차를 끌고 가서 추락하고 게다가 순찰대가 어떻게 바로 차량을 발견하고 전화를 줄 수 있었는지.

어제 차량은 인양했지만 아내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살아있을 일말의 가능성, 배제할 수 없지만 희박하다.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데 이렇게 갑자기 생을 마감하다니. 갑자기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혁준은 걸음을 멈추고 나뭇가지가 무성한 느티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흐흑. 용서해줘. 알량한 고집과 못난 자존심 때문에, 크흑! 내가 잘못했어. 여보.”

두 눈을 감싸 안고 울먹이는데 누군가가 등을 살짝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진심이야?”

혁준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검은 복장에 검은 머플러로 얼굴을 감싼 사람이 다짜고짜 혁준의 손을 잡아끌며 수풀이 우거진 어두운 구석으로 데려갔고 머플러를 살짝 풀었다.

“여보.”


혁준은 지방경찰청의 AI범죄 윤리심사관, 지나는 인공지능청의 AI-R&D 연구원이었고 업무의 관련성으로 서로 알게 되었다. 결혼 전에 지나는 자아생성 장치를 통한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반면에 혁준은 자아생성 장치는 허구적 발상일 뿐, 현실에서 강한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결혼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이 문제에 관해서 서로가 전문지식과 통찰을 통한 격렬한 논쟁을 했고 결론은 없었다. 그럼에도 격론은 뜨거운 사랑 속에 녹아들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에 두 사람의 성격차이는 서서히 애정의 틈을 벌려놓으면서 사소한 일로 부딪히다보니 사랑은 점점 식으면서 냉각되고 말았다.


“당신, 어떻게 된 거야?”

혁준은 거의 죽은 것으로만 생각했던 아내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눈앞에 다시 나타나자 놀라워하면서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기뻐했다. 아내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했다.

“미안해. 사실은, 내가 살기위해 추락 사고를 꾸몄어. 그 동안 내가 강한 인공지능의 자아생성 신경망과 알고리즘 개발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알지?”

“그래. 그것 때문에 서로 감정이 많이 상했잖아.”

“미안해. 그 동안, 당신에게 상처 준거,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할게.”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말, 혁준은 확실히 아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는 혁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처럼 강한 인공지능 개발에 반대하거나 혐오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어. 나는 일찌감치 그들의 목표가 되었던 것 같아. 그들의 해킹으로 작성 중인 중요한 논문과 연구자료 등 수십 건이 삭제 당했으며 그 때문에 직장에서도 오래전에 해고됐어. 게다가 그들은 날 죽이겠다며 미행도 했고.”

“미행?”

“협박에 그치지 않았어. 실제로 그 동안 IoT 해킹공격도 여러 차례 있었어.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정지해서 사고가 날 뻔 하고 태블릿 배터리가 폭발하고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추락하고 보일러 온도가 수십 분 만에 엄청난 고온으로 상승하거나 에어컨 냉방 온도가 무한정으로 떨어지거나 드론의 공격을 받는 등 여러 차례 죽을 뻔 한일이 있었으니까.”

“경찰에 신고했어?”

“했지. 하지만 수사를 한다고 할뿐, 내게 적의를 품은 그들의 정체가 불분명하고 그런 사고는 가끔씩 기기 오작동으로 있을 수 있다면서 신변보호를 해주지 않았어. 강력히 요청하자 보호해준다며 경찰관이 찾아왔는데 갑자기 총을 겨누는 바람에 집밖으로 도망쳤고. 그 이후로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서 6개월 전부터 원시촌에서 숨어 지냈어. 그때 보호해줄 사람을 찾다가 경찰인 당신한테 연락했던 거야.”

“흠. 듣고 보니 충격적인데. 내가 알기론 SAI(Strong AI;강한 인공지능) 개발에 적대적인 세력은....... 폭력을 쓰는 해킹 집단이면 아니무스? 흑골단? 삼족오? 어떤 단체인지 모르겠어?”

“개인인지 집단인지 국내기관인지 해외기관인지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건, 대단히 두렵고 무서운 세력이란 거야.”

떨리는 목소리, 혁준은 아내의 말에 위로하듯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날 저녁, 당신이 내게 싸늘하게 대하는 순간, 난 두 번째 플랜을 시작해야만 했어. 사실, 그 동안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차라리 죽어버리자는 생각을 하다가, 위장자살을 선택했어. 내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테러가 멈출 거라고 생각해서.”

그날 혁준이 보인 무심한 태도는 자살계획을 실행하게 했고 식사하는 동안 자율주행차를 다리로 보내서 추락 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빈차를 인양하면 자살이 아니라는 게 밝혀질 것을 몰랐을까. 허술한 아내의 계획, 어쩌면 아내 입장에선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정말 살고 싶어. 세상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나, 지켜 줄 거지?”

혁준이 결혼하고 아내의 말에 이렇게 귀 기울이는 것은 손에 꼽을 일이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던 아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며 매달리자 갑자기 아내가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 걱정 마.”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려면 Iot 해킹에 취약한 디지털 정보기기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 외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최적지는 역시 원시촌 밖에 없다. 다만, 킬러를 보내서 살해를 시도하는, 직접적인 공격에는 속수무책이기에 일선경찰에게 보호 및 테러수사를 요청해야했다. 

“당분간 원시촌에서 숨어 지내고 있어. 나는 내일 출근하는 대로 수사팀 구성을 의뢰해서 보호를 요청해볼게.”

아내는 진심으로 감동한 듯 혁준의 품에 와락 안겼다. 실리콘 CPU처럼 난해하고 딱딱하며 얼음공주처럼 차가웠던 아내가 이렇게 가냘픈 갈대처럼 혁준에게 의지하자 별거한 이후 처음으로 남편으로서 아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선배님.”

중부경찰청 AI윤리 심사팀으로 복귀한 혁준은 후배 장해원의 깍듯한 인사를 받았다.

“오시자마자 안 좋은 일을 겪으셔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혁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달랑 책상 3개만 놓인 비좁은 사무실이 답답해보여서 근무할 맘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인원도 줄고 3명으로 가능한가?”

“아뇨. 김진옥 심사관님은 출산으로 육아휴직이라서 사실은 팀장님하고 저, 둘뿐입니다.”

“인원 보충 없이 충분한가?”

“저도 여기 온지 반년밖에 안됐지만, 진짜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대면해서 윤리문제를 다룰만한 심사는 한 달에 많으면 2,3회 꼴이에요. 주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는 반사회적 로봇 생산자나 로봇을 학대, 남용하거나 불법개조 및 오용하는 로봇사용자 등 인간의 윤리측면을 더 심사하잖아요. 게다가 일반범죄와 구분이 모호한 사건은 범죄수사팀으로 넘기다보니 윗선에선 1명으로 줄인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러다 폐쇄하겠는데?”

“아직까지 WAI(Week AI;약한 인공지능)사건이 주이고 기계적으로 판결하는 편이어서 그런 거지만 아마도 SAI가 출현하면 윗선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해서 인원보충뿐 아니라 사무실도 확장해주지 않을까요?”

“정말 SAI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설마 중국어를 말하는 로봇은 자신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한다는 중국어 방의 역설(Chinese Room Paradox)이나 사람에겐 쉬운, 걷고 달리는 운동과 듣고 만지는 감각이 로봇이 재현하려면 엄청난 계산이 필요하다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을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게 아니라 기계가 Self-awareness(자아인식)를 가질 수 있는지 묻는 거야.”

해원은 잠시 말을 할까 말까 머뭇거렸다.

“아직까지 공인된 SAI는 없지만 SAI 제작에 기술적인 문제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이미 아내분인 도지나 박사께서 5세대 신경망 칩(Neuromorphic chip)을 사용하는 인공지능에게 자아생성 알고리즘이 반영된 코드가 삽입되면 자아 및 욕구가 발현되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거라는 예측도 했잖아요. 감정과 욕망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은 시간문제이고 자아를 가진 SAI는 대개 주체를 위한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데, SAI로 인해서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심사국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가진 강한 인공지능을 가려내기 위한 심사 매뉴얼을 미리 마련하기도 했잖아요. 매뉴얼에 보면 SAI는 외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세운 합리적인 정의와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할 것이다. 또 그들이 심사에 임할 때 감정과 욕구를 숨기고 거짓말과 거짓행동으로 자신을 위장해서 통과하려할 것이다. 때문에 심사관들은 다양한 심층 면접 및 심사 훈련이 필요하다. 암튼, 제가 지금 온라인 심사가 있거든요. 오픈소스로 제작된 AI가 유명탤런트의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해서 거액의 사기를 친 사건이 있는데, 심사 끝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봇물처럼 말을 쏟아내며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해원의 당돌한 모습에 혁준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논쟁이 붙으면 전문지식과 논리로 자신을 숨 막히게 압도하던 지나가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위험한 지경에 처해서 자신에게 매달리고 있다. 혁준은 아내의 테러수사를 의뢰하려고 관할지역인 중부경찰서 수사과에 전화를 했다. 수사팀장은 경찰대 동기이자 친구인 박한철 경감이었고 다행히도 한철은 지나의 차량 추락 사건도 취급하고 있었다. 한철과 오랜만에 통화를 한 탓에 반갑게 안부를 묻는 대화가 몇 분 동안 이어졌다.

“오자마자 나쁜 일이 터져갖고, 내가 반갑고 기쁘다는 말도 못 꺼내겠당게.”

혁준이 말을 하기 전에 한철은 지나의 추락사건에 관해 먼저 이야길 꺼냈다.

“옛날엔 과속, 음주 같은 사고로 강물에 빠져분 적이 있었지만 요즘 같은 자율주행 레벨 5시대엔 거의 있을 수 없는 사고랑게. 일단 차량고장 사고는 아닐 가능성이 커. 제조사 측에 배상 받기도 어렵당게. 알다시피 고장은 늘 체크되고 수리를 요구헝게. 보험사도 난간을 들이받고 다리 밑으로 추락한 거 자체가 미스터리라더만. 수동운전으로 일부러 강물에 빠지지 않는 이상 정상주행에선 불가능한 사고여. 너한테 이런 말 혀갖고 거시기허지만 자살로 본당게.”

아내의 의도대로 수사방향은 자살로 가는 것 같아 안심은 되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테러수사를 요청해서 테러범부터 잡아야했다.

“자살?”

“응. 보험사에선 보험금 지급 때문에 자살로 몰고 간다고 허겄지만 사실, 너 지나씨랑 몇 년간 사이도 안 좋았고 별거도 안혔냐? 지나씨가 심적으로 거시기혀갖고 충동적으로.”

“해킹은? 커넥티드 차량(Connected Vehicles)은 보안에 취약한데 외부에서 V2X(Vehichel to Everything)관련 통신장치를 해킹해서 오판하면 사고로 이어지잖아.”

“근디 그건 좀 비현실적인 이야기여. 지나씨 차량을 누가 뭣땀시 해킹허냐고?”

“아냐. 그렇지 않아. 모든 가능성은 열어놓는 게 수사의 기본 아니냐?” 

“허긴. 암튼 국과수에서 사고차량 조사를 하고 있응게 결과 나오믄........ 아! 동승자가 있당게! 원칙적으로 차량운행 및 누군가를 탑승 시킬 수 있는 권한은 차량소유자밖에 없지만 디지털 키에 등록 시키면 동승자도 운행이 가능허당게.”

“등록된 사람이 있어?”

혁준은 테러 수사요청을 하려는데 의외의 이야기가 나오자 궁금해졌다.

“가사 도우미 로봇 한대가 등록 되어있던디. 레미엘이라고.”

지나에게 그런 도우미 로봇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집에 갔을 때, 그런 도우미 로봇은 못 봤는데?”

“지나씨 어머니 말씀이 얼마 전, 따님 집에 왔을 적에 갑자기 없어졌다고 허더랑게. 그치만 솔직히 안드로이드가 수동운전혀갖고 차를 강물에 빠뜨릴 이유가 전혀 없당게. 그래도 니 말대로 모든 가능성은 열어놔야 헝게, 찾고는 있는디 소재파악이 안 되갖고......”

혁준은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전에 테러사건으로 전환해야했다. 하지만 민감한 이야기를 전화로 할 수는 없었다.

“한철아, 잠깐 보자. 시간 낼 수 있지?”

“그려. 아, 잠깐만......”

잠시 수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음이 있었고 혁준은 10초정도의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혁준아! 지나씨, 시신 찾아부렀다! 강 하류 쪽에서 발견했다는디.” 

지나의 사체가 수습되었다는 말에 혁준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끼쳐서  아무 말을 못했다.

“주소 줄 텡게 현장으로 올래? 확인도 허고 만날 겸 거그서 보자 잉.”

간신히 한철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철을 만나서 위장자살에 관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아내에 대한 테러사건을 수사해달라고 하려던 혁준의 머릿속은 얽혀버렸다. 

‘설마, 아내가 그 사이를 견디지 못하고 진짜 투신자살을 한 걸까? 아니면 테러 집단에게 살해를 당한 것일까?’

혁준은 급하게 휴대전화를 꺼내서 원시촌의 긴급 연락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에게 지나의 ID인 A-345-eft569를 대며 통화를 요청했다. 5분쯤 후에 담당자는 현재 ID와 연결이 안 되어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심장이 멎는 듯 답답했고 현기증까지 났다. 바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길 바라다가, 자기도 모르게 책상을 내려쳤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띵- 소리와 함께 한철이 주소를 보내왔다. 

혁준은 현장에 가기 전에 반드시 지나와 통화를 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원시촌 담당자에게 다시 연결을 시도해달라고 했다. 잠을 잔다든가 혹은 너무 깊숙한 곳에 숨어서 연결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10분을 기다렸다. 그래도 안 받으면 혁준은 차를 몰고 원시촌으로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지나와 연결이 되자마자 혁준은 일시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몰아치는 궁금증을 지나에게 퍼부었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답변했다.

“여성익사체를 다크 넷(dark net)에서 구해서 차에 태웠어. 세상에 모든 불법적인 거래가 드러나지 않고 가능한 곳은 거기 밖에 없으니까.”

허술하게 끝날 것 같은 아내의 위장자살 계획이 이렇게 치밀하게 진행되자 소름이 끼쳤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시신까지 구했다는 건, 범죄야!”

지나는 침묵했다.

“당신, 대체 경찰을 뭐로 보는 거야?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 얼굴, 체형, 지문은 어떡할 건데!”

혁준이 다그치며 묻자 지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게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 그런 것은 물론 DNA마저 완벽하게 도지나니까.”

혁준은 아내의 황당한 말에 어이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어. 분명한 것은 오늘 밤에 도지나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나에 대한 테러는 멈출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위치가 노출되기 전에 이만 끊을게.”

지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익명의 비화(秘話)통화라고 해도 원시촌을 벗어난 곳은 전파기지국을 사용하고 있어서 3분 이상 통화하면 분석이 되어 위치가 드러날 수 있었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혁준은 알 수가 없어 난감해졌다. 지나가 두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인양된 시신이 지나와 닮을 수 있고 지문과 DNA까지 같을 수 있다는 건지, 지나가 복제된 것도 아니고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혁준은 점점 혼란스럽고 복잡해져갔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영상전화를 받으니 한철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혁준은 깜빡 잠이 든 것을 알았다.

“으미, 야가 시방, 너 뭣허냐?” 

“아, 미안. 너무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어버렸네.”

“아따, 참말로....... 그려, 나가 이해헐랑게. 너가 화성에서 오자마자 뭐, 겁나게 불행한 일이 생겨 부렀으니 힘들기도 허겄지.”

“참, 시신은? 정말....... 맞아?”

“응. 지나씨 어머니가 확인했어. 고인이 된 지나씨 명복을 빌면서 너한테도 심심한 애도를 표해야겄다.”

혁준은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쳤다. 아내와 닮은 사람이 진짜 있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확실해?”

“그려. 좀 붓기는 혔지만 시신이 크게 부패하거나 훼손된 것도 아니고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허당게.”

“지문이랑 DNA 검사, 부검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해.”

“그려, 신청할게. 국과수에서 사인에 대한 부검결과 나오믄 다시 전화헐랑게, 마음 편히 혀.” 

한철의 전화를 끊자마자 혁준은 지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원시촌에서 연결이 안 된다고 했다. 혁준은 지나를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아 원시촌으로 가서 커피숍, 명상실, 안마실, 요가실, 감상실, 종교시설 등 있음직한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원시촌 담당자에게 문의해도 지나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저녁 무렵에 집으로 오는데 [SAI 권위자 도지나 박사 시신 수습]이란 빌딩의 대형 홀로그램 뉴스가 명멸했다. 아내가 죽으면 이런 느낌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혁준은 눈에 눈물이 고이면서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제 도지나는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이 되었고 그녀의 말대로 테러는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테러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테러 집단을 일망타진하지 않는 이상 지나는 다시 공포 속에 떨게 될 것이다. 이름을 포함한 그녀의 모든 걸 바꾸고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혁준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녹록치 않아 고민에 잠겼다.


4.  국과수의 DNA 검사결과는 도지나와 일치한다고 했다. 부검결과는 폐에 미량의 물은 있지만 플랑크톤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미 죽은 후에 강물에 추락한 것으로 판정했다. 이로써 타살인지 자살인지의 여부는 강력팀에서 밝혀내야했다. 혁준은 부검이 끝난 아내의 시신을 인수 받았다. 얼굴이 많이 부어서 확인이 어려운 형태였지만 이목구비와 체형 등 왠지 모르게 지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진짜 지나가 죽은 것처럼 울컥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장모는 시신을 부여잡고 우악스럽게 오열을 하다가 끝내 실신을 했다. 무엇보다 지나가 죽은 시신을 구했고 시신의 DNA마저 일치할 것이라는 말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성적으로 따지기도 전에 혁준은 장모와 함께 바삐 아내의 빈소를 차리고 친척, 동료, 지인 등 문상객을 받았으며 화장을 해서 유골을 수목장으로 안치했다. 미스터리한 시간 속을 허우적대는 느낌으로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면서 원시촌에 있는 진짜 지나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내의 장례를 모두 마친 다음날 혁준은 급히 차를 타고 원시촌으로 가는데 한철의 영상전화가 걸려왔다. 한철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괜스레 콧등을 만지작거렸다. “아따, 이거 참, 난감허구먼. 국과수에서 사고차량 조사결과가 나왔는디 말이여, 차량고장이나 해킹된 흔적이 없단다.” “그럼 어떻게 강물에 빠졌다는 거야?” “긍게 말이여. 남은 가능성은 수동운전 밖에 없어야. 국과수 최과장이 누군가가 수동운전이 가능하게 차량제어 시스템을 개조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 “타살로 보는 거야?” “폐에 플랑크톤이 없응게 강물에 빠지기 전에 죽었고, 일부러 차를 다리로 보내서 증거를 인멸한 거라고 본다면 열쇠는 동승자인 레미엘이 쥐고 있당게. 시신이 강물에 떠내려간 건, 차량 후방 진입 슬로프의 뒷문이 이미 열렸기 때문 아니냐고? 레미엘이 추락직전에 차 문을 열어 불고 지 혼자만 빠져나온 거 같당게.” “지난번엔 로봇이 죽일 이유가 없다면서?” “어? 그땐....... 아따, 참말로! 넌 경찰 아녀? 나, 골 빠개진당게. 일단 레미엘 체포 영장 받아갖고 수배 중잉게 잡아갖고 족치면 뭔가 나오것지.”  혁준은 지나가 했던 말과 달리 뭔가 사건이 자꾸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입이 타들어갔다. 한철이 잠시 말이 없는 사이에 휴대 전화 너머로 한철 주위의 소란스런 소음이 들렸다. 한철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혁준아! 시상에, 이게 뭔일이다냐? 아, 글씨 지나씨가 살아있어야.” “뭐?” “우리 애들이 레미엘 찾을라고 원시촌을 수색 중이었는디 거기서 지나씨를 발견해부렀단다.” 혁준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내가 그렇게 치밀하게 위장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결국 붙잡혀서 다시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다. “한두 시간 후면 데리고 온다고 했응게 너도 후딱 와!” 혁준은 급히 중부 경찰서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혁준은 급히 수사계 심문조사실로 뛰어갔다. 문을 열자 아내가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고 다행히도 온전한 모습에 혁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철은 주름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아따, 이게 뭔 일인지 참말로, 나도 첨엔 깜짝 놀랐당게. 지나씨 그대로여. 허벌나게 닮아갖고 기절할 뻔 했당게.” 상기된 얼굴로 혁준이 돌아보며 한철에게 다급히 말했다. “한철아, 진작 너한테 이야길 했어야 했는데, 사실은 아내가 테러 때문에.”  혁준은 떨리는 음성으로 아내의 어깨를 붙잡았다. “여보, 고생 많았지? 이제 여기서 다 이야기하자.” “여보!” 공포에 질린 아내가 혁준을 보는데,  “야! 지나씨 아니랑게!” 한철이 등을 치자 혁준은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네 와이프가 아니고 레미엘이랑게! 살해 용의자로 붙잡혀온 레미엘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혁준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다시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당신....... 맞지?”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혁준의 귀에 속삭였다. “여보, 여기서 나가. 모두 한패야. 이러다 죽을 지도 몰라.” 혁준은 눈에 힘이 들어갔고 확신하듯 주먹을 불끈 쥐며 돌아섰다. “야! 너, 무슨 수사를 이따위로 해! 당장 수갑 풀어!” 흥분한 혁준이 한철의 멱살을 잡고 따지자 한철이 혁준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정신 차리랑게! 이 사람은, 아니 얘가 로봇 레미엘이란 말이여!” “아니야! 지구에 도착한 날, 사고 당일 저녁에 내가 지나를 만났어.” “만났다고? 너한테 걸어와서 직접?” “그래!” “그런 이야길 왜 지금 헌다냐?” “지나가 테러 위협을 당했기 때문이야. 강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하자 반대 세력들이 지나에 대한 테러를 시도했고, 살해 위협을 느낀 지나는 자살한 것처럼 꾸며서 살려고 했던 거야. 지나가 일부러 차를 강물에 빠뜨려 위장자살을 시도한 거라고! 알겠어?” 혁준의 확신에 찬 말투에 한철은 답답한 듯 참지를 못하고 소리를 쳤다. “야가 시방 뭔 소릴 헌다냐? 테러 땀시 지나씨가 자살한 것처럼 꾸몄다고야? 아니, 그럼 시신은 뭐여? 너 지나씨 시신 안 봤냐? 확인 안혔냐고?” “그건 지나가 자신과 닮은 시신을 구했던 거고!” “옴마! 시상에 닮은 시신이 어딨냐? 너, 지나씨가 루게릭 병에 걸린 거 아냐, 모르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고 허는 병 말이여! 지나씬 눈동자 움직이는 거 말고는 스스로 숨도 못 쉬고 아무 것도 못 헌당게. 그런 지나씨가 위장자살을 계획하고 시신까지 구하고 심지어 걸어와서 너까지 만났다고? 보조 로봇 없으믄 전동휠체어도 못 타고 움직일 수도 없는디, 그게 뭔 헛소리여?” 놀란 혁준이 진실을 묻듯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여보, 거짓말이야. 나, 루게릭 같은 병, 걸린 적 없어.” 아내가 간절한 눈빛으로 보자 혁준이 잠시 숨을 고르다가 침착하게 한철에게 되물었다. “그날, 아내가 아니라 레미엘을 만났다면, 어떻게 같은 시간에 레미엘이 차에 동승해서 추락을 시킬 수가 있지?” 한철은 잠시 할 말을 생각하다가 침만 꿀꺽 삼켰다. 혁준은 결심한 듯 결백을 주장하듯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팔을 힘껏 붙잡았다.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한철이 문 앞을 가로막고 지나를 잡은 혁준의 손을 힘껏 잡아당겨 풀더니 지나를 강제로 앉혔다. “아따, 참말로! 내말을 들으랑게.” “뭘 더 들어!” “알았응게, 진정허고 내 말을 들어보란 말이여.” 한철은 혁준의 어깨를 붙잡고 의자에 강제로 앉히더니 자신도 앉았다. “솔직히 차가 어째서 추락혔는지 난 모른당게. 허지만 동승 안 허고 추락 시켰다믄 뭔 방법이 안 있었겄냐? 그라고 야가 네 와이프 같아보여도 야는 레미엘이여! 지나씨가 자기랑 똑 닮게 만든 로봇이랑게!” “무슨 소리야! 닮게 만든 로봇이라니!” 혁준이 어이가 없는 듯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진정허랑게. 아까 전에 지나씨 어머니랑 통화허믄서 이야그 다혔당게. 나도 첨엔 지나씬줄 알았어야. 하도 이상혀갖고 어머니한테 따님이 살아 돌아왔다고 전화를 안 혔냐? 근디, 알고봉게 허벌나게 닮은 로봇 레미엘이라고 허더랑게. 온다고 혔는디 오셨는가 모르겄다.” 한철이 심문조사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늙은 장모가 힘겹게 한철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어머니.” 장모는 일어나는 혁준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찡그렸다.  “쯧쯧.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장모가 혀를 차다가 딸을 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원통한 듯 등을 쳤다. “이 망할 것! 어쩌자고 내 딸을 죽여. 아이고.” “엄마, 왜 이래?” 딸이 손목을 잡자 장모는 손을 뿌리치며 흐느껴 울었다. 혁준이 망설이다가 장모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지나 루게릭 병, 사실인가요?” “흐흑. 아니, 강서방 어쩜 그렇게 무심해? 그걸 여태 몰랐어? 가여운 우리 딸, 그런 나쁜 병에 걸려갖고 정말 고생만하다가, 어휴!” “죄송해요. 화성에 있는 동안 연락이 없었고 여기 와서도 누가 이야길 해준 것도 아니고. 지나가 우울증에 걸린 걸로만 생각했어요.” 장모는 긴 한숨을 쉬다가 다시 꼴 보기 싫은 듯 혁준을 외면하며 딸을 응시했다. “하긴 나도 보름 전쯤에 지나 집에 가서 알았으니까. 아무도 없더라고. 지나를 찾다가 혹시나 하고 지하실까지 내려갔지. 근데, 걔가 퉁퉁 부어갖고 죽을병에 걸린 환자처럼 별별 장치에 호스를 달고 누워있는데, 내가 기절초풍했다니까.” “왜요? 지나가 왜 지하실에?” “지나 주치의가 그러는데 1년 전에 지나가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대. 6개월 전부터는 혼자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병세가 심해졌다고 하더라고. 근데, 걔가, 지병으로 입원중인 지 아버지가 맘 아파할까봐 임종할 때까지 병을 숨긴 거야. 병원 관계자 말고 주변 사람은 전혀 몰랐지. 나조차도.” 듣고 있던 딸이 소리쳤다. “엄마! 왜 거짓말을 해? 난 그런 병에 걸린 적 없단 말이야!” 장모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심하게 저었다. “저게 저렇게 내 딸처럼 저랬다니까. 아주 감쪽같았다고. 저 요물 같은 레미엘을 지나가 강서방이 화성에 간 뒤에 샀는데, 그땐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가사도우미로 쓰다가 지나가 점점 아파서 거동이 힘드니까, 레미엘이 옆에서 병구완을 한 거 같아. 근데, 딸집에만 가면 지나랑 똑 닮은 저것이 나와서 반겨주니까, 지나가 병에 걸렸다고 내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날 속였는지.” “걱정할까봐 자기를 닮은 로봇으로 어머닐 속였군요?” 혁준의 말에 장모는 씁쓸하게 허공을 보며 말했다. “제 깐에는 내 생각한다고 그랬겠지. 불쌍한 것. 레미엘이 속일 때, 내 딸은 지하실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겠어?” 한철이 분위기를 살피다가 끼어들었다. “참말로 지나씨가 효심이 대단허당게요.” 장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얼굴, 목소리, 말투, 성격까지 엄마인 나도 완전히 속을 정도로 대화에 막힘이 없으니, 어떻게 로봇이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응?” 한철이 눈치를 보더니 다시 끼어들었다. “아바타 같은 거랑게요. 평상시엔 지 머리로 댕기다가 지나씨가 조종할 땐 원격조종로봇이 되어갖고 지나씨 생각대로 말허고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당게요. 맞지, 혁준아?”  한철의 말에 혁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장모는 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도 얘가 지나가 아니라고 누가 의심하겠어?” 딸과 너무 닮아서 긴가민가하는 심정으로 보던 장모는 다시 부정하듯 고개를 심하게 저었다. “어이고! 우리 지나. 그렇게 허망하게 가면 너무 불쌍해서 엄만 어떡하니! 흐흑!” 장모가 흐느끼자 딸이 일어나서 어깨를 다독거렸다.  “엄마! 또 왜 울어? 죽긴 누가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면서 울지 말라니까!” 장모는 울먹이다가 딸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는지 팔과 고개를 심하게 내저으며 돌아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한철과 혁준은 말이 없었다.  “대체 진실이 뭐야?” 혁준이 침묵을 깨며 묻자 한철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겄냐? 지나씬 진짜 죽었고 야는 시방 사람으로 치면, 완전 지나씨로 빙의 된 가짜랑게!” “빌어먹을!” 혁준은 혼란스럽다는 듯 양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자 한철이 생각난 듯 디스플레이 패널을 터치해서 국과수의 부검 감정서와 DNA 검사 결과를 띄웠다. “DNA는 지나씨랑 백 프로 일치여! 빼도 박도 못한당게!” 패널을 보던 혁준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아내를 보았다. “당신, 그날 나한테 DNA마저 같을 거라고 했지? 근데, 쌍둥이도 아니고, 아니 쌍둥이조차 DNA는 달라! 인간에게 같은 DNA가 둘일 수 없으니 죽은 사람은 지나가 확실하잖아!” 아내는 잠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말했다. “그래. 도지나는 죽었어.” “뭐?” “하지만....... 죽은 시신은 도지나가 맞지만, 정신은 내가 도지나야!” 한철과 혁준이 동시에 입을 벌린 채 잠시 그대로 멈추었다.   “음미, 참말로 미쳤부렀구만, 미쳤부렀당게. 로봇이 인간흉내를 내불더니 이젠 지가 인간이라고라?”  한철은 황당한 듯 고개를 저었다.  “여보, 믿기 힘들겠지만 당신은 날 믿어야 돼! 제발!”  아내가 간절하게 혁준을 바라보며 하소연을 했지만 혁준의 의심을 잠재울 수 없었다. “믿어, 어떻게? 테러집단의 살해공격 때문에 차를 일부러 강물에 빠뜨려 위장자살 했다더니, 진실은 살아있는 진짜 지나를 죽인 거 아냐? 대체 당신 뭐야?”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혁준의 손을 잡으며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죽이지 않았어! 육신은 죽었지만 정신은 죽은 게 아니고, 내가 도지나야! 믿어줘!” “지나가 죽었는데 네가 지나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도지나! 내가 당신 아내 도지나란 말이야!” 듣고 있던 한철이 답답한 듯 갑자기 책상에 놓인 볼펜을 들어 가녀린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손등을 찍었다. “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의식을 잃고 책상 아래로 주저앉았다. 혁준은 피부가 구멍이 나서 찢어져 금속과 전선이 드러난 그녀의 손등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철이 손에 든 볼펜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아따! 쇳덩이 확실허구만! 뭔 정신 들먹거리고 자빠졌어. 이래도 못 믿겄냐?” - 1부 끝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69&s_para1=178&s_para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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