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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FI] 오세요, 알프스대공원으로 / 20.6 크로스로드

아밀 /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박재령)

공기 맑은 곳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는 아무래도 알프스다. 캐나다,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도 유명하지만, 눈이 쌓인 알프스의 산등성이들 사이로 부는 청량한 바람과 그 아래에 잠긴 푸르고 시린 빙하, 하이디가 뛰노는 초원과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전나무숲보다 강력한 이미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시사철 미세먼지에 습격당하는 한국인들은 먼 옛날 잃어버린 우리 강산의 아름다운 가을 날씨를 알프스 산맥에서라면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정작 실제 알프스에서는 몇 해째 여름마다 찾아오는 폭염으로 빙하가 수 천 개는 녹아 없어졌다고 하지만 말이다.  정부에서 처음으로 전국 58곳에 공기청정탑을 설치하고 그 일대를 공기청정지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공사 입찰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바로 이름 짓기였다. 어차피 공기청정지대에 들어설 시설이 고만고만하다면, 매혹적인 이름으로 차별성이라도 얻어야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 공기청정지대 이름 짓기’ 공모전에는 자연히 알프스라는 이름이 빗발쳤다. 모두가 서로 자기네 동네가 한국의 알프스가 되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그중에서 승리의 깃발을 거머쥔 곳은 경기도 끝자락에 위치한 N시의 알프스 대공원이었다.  알프스 대공원은 이름과 다르게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본래 아파트 단지 몇 군데 사이에 있던 근린공원과 폐쇄된 화력발전소 부지를 합쳐서 조성한 곳이다. 기존 공원의 조경을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두 지역을 잇는 산책로만 새로 깔고, 공기청정지대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나무를 빽빽히 심고, 청정탑을 중심으로 널따란 광장을 마련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미뤄왔던 야외 활동을 즐기려 작심하고 주말마다 몰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LPG차 및 전기차 전용 주차장과 충전소, 운동장, 수영장, 테니스코트, 놀이터, 공연장, 시장, 노천 매점과 식당과 카페가 수두룩히 들어서 있다는 점은 여느 공기청정지대들과 같다. 주변에는 산도 강도 없고, 빙하는 물론이요 호수도 없어서 딱히 알프스처럼 경관이 아름답지는 않다. 강원 블루 월드나 지리산 국립공원 한편을 차지한 청정 호수 공원과 같은 넓은 캠핑장 같은 것도 없다. 다만 이 지역만의 특별한 자랑거리가 없지는 않은데, 그것은 바로 옛 화력발전소를 재단장한 미술관 ‘미루아트센터’다. 화력발전소 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힙’한 공간 안에 젊은 신예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특히 넓은 마당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설치미술을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야외 전시장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더 이상 연기가 나오지 않는 폐발전소의 굴뚝과, 파란 새 마크가 그려진 새하얀 청정탑이 배경에 나란히 대비되어 나오도록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족히 열 아름은 되는 거대한 청정탑은 멀리서 봐도 인상적이지만 가까이에서도 천천히 관람할 만하다. 탑을 둘러싼 띠처럼 설치된 롤러블 디스플레이들 때문이다. 성인의 눈높이에 위치한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면 실시간 대기질과 기상 일보 안내, 지도 및 주변 시설 안내, 공원 이용객 혼잡도, 정부의 환경정책과 환경보호 상식 등을 열람할 수 있고, 에코 마일리지를 이용해 휴대 기기 전력을 충전하거나 미술관 입장권을 구입할 수도 있다. 탑 중앙에 있는 거대한 디스플레이에는 현재 시각과, 청정탑의 필터가 정화하는 미세먼지의 양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웬만한 건물 7, 8층 높이에 있는 디스플레이에는 뉴스와 광고가 나온다. 화면 하단에 자막이 뜨기는 하지만 블루투스로 이어폰을 연결하면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오늘도 알프스 대공원 청정탑 주위에는 사람들이 멈춰서서, 또는 지나가면서, 또는 벤치에 앉아서, 이어폰을 끼거나 끼지 않은 채로 디스플레이를 보고 있다. 화면에는 이런 자막이 흘러나온다. 

...연일 고농도 미세먼지가 계속됨에 따라 정부에서 미세먼지 저감조치 실시...  ...평균 농도가 1300마이크로그램 이상...  ...인근의 공기청정지대나, 공기청정시설이 갖춰진 건물 내에서 활동하기를 권고... 

“어쩐지 사람이 많더라니.”  화면을 올려다보던 노년의 여성이 중얼거린다.  여자는 자주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다. 등에 맨 작은 배낭이며 팔목에 동여맨 손수건이며 머리에 눌러쓴 검은 선캡까지, 누가 봐도 운동을 하러 나온 여자다. 여자의 주변에는 한껏 차려입은 젊은 커플들과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중이다.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검은 모자 챙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뭉게구름이 드문드문 뜬 파란 가을 하늘 아래로 통통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르르 날아간다.  “이 동네에 살면 바깥 날씨가 어떤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여자, 경숙은 또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못마땅한 눈으로 주위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훑어본다. 그리고 근처에 유일하게 비어 있는 벤치로 건너가 앉아서 배낭의 바깥 주머니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경숙의 머리카락에 스몄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다.  경숙은 ‘바깥 날씨를 모른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알프스 대공원 단지에서만 지내다 보면 다른 지역의 공기가 얼마나 탁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인데, 불만스러운 듯한 어조이지만 실은 자랑이다. 그만큼 자신이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아들 내외가 안부 전화를 걸어오면 경숙은 “아휴, 나는 요즘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고 산다.”라고 하고, 주일에 교회에서 친구들이 국가검진에서 받은 폐 검사 결과 이야기를 하면 경숙은 “나야 바깥 날씨도 모르니까 뭐.”라고, 그게 건강의 증거라는 듯이 일축한다.  경숙이 이 동네에 유별난 자부심을 가지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의 오래된 저층 아파트에서 거의 30년을 살았으니 말이다. 남편이 처음 그 집을 샀을 때만 해도 경숙은 부동산이니 뭐니 하는 데에는 까막눈이었다. 남편이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굳이 발전소 인근에 집을 살 필요는 없다는 것조차 몰랐다. N시의 토박이로서 오랫동안 발전기 제어실에서 일했던 남편은 자신의 토양과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었고, 아내로서 그 긍지를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을 뿐이다. 아빠는 이 나라에 피를 흐르게 하는 사람이지, 라고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때 남편의 얼굴은 그 어떤 영화배우보다 멋있어 보였다. 경숙은 아들들도 장차 남편 같은 어른이 되리라 상상하며 분진으로 거멓게 물든 와이셔츠와 교복 셔츠의 칼라가 새하얘질 때까지 빨고 또 빨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이 나라의 혈관을 통째로 뒤흔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대출금을 겨우 갚았을 때쯤 불어닥친 최악의 경제 위기는 남편을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만들었다. 곧이어 정부에서 화력발전소들을 전면 폐쇄하고 에너지 정책을 원자력 중심으로 전환하자 남편은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군인처럼 우울에 빠졌다. 기력이 많거나 여유가 많거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는 동안 남편은 무기력과 술을 벗삼아 지냈고 경숙은 아들들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의지가 되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바가지를 긁지는 않았다. 가끔 속상한 마음을 못 이겨 신경질을 내기는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남편은 누가 뭐래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그런 남자를 세상이 내쳐버린 것이 아닌가. 경숙은 남편에 대한 연민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굳게 다져먹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이 모든 환난에서 자신을 건져주리라는 믿음도 크나큰 힘이 되었다.  이 지역이 공기청정지대로 선정되었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경숙은 하나님에게서 드디어 응답이 내려왔다고 확신했다.  경숙은 빙그레 웃으며 벤치에서 일어난다. 풀었던 배낭을 어깨에 다시 메고, 그녀는 청정탑 광장을 벗어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으로, 두 팔을 절도 있게 내뻗으며. 이렇게 바른 자세로 힘차게 경보를 하다 보면 두통이 한결 가라앉는다. 요즘 부쩍 시큰거리는 무릎 관절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 시절 탁한 공기 마셔가며 험하게 살았는데도 이만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경숙은 알프스 대공원에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말쑥하게 관리된 잔디와 나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들도 울긋불긋 물든 낙엽수들도 모두 자신의 힘으로 일군 재산인 양 마음이 뿌듯하다.  경숙은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 재건축으로 지어진 반짝반짝한 새 아파트에서, 바깥 날씨도 모를 만큼 겨울에는 난방을 때고 여름에는 에어콘을 돌리면서, 먹고 싶은 것을 차려먹고 보고 싶은 텔레비전 채널을 보면서 지내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아주 성에 차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였다. 죽을 때까지 먹고살 걱정은 없을 뿐더러 자식들에게 물려줄 집도 있고 이 집은 계속해서 가격이 오를 것이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의 빈 자리였다. 경숙은 남편이 지금 자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대기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정부에서 감염병 관리를 위해 인구를 분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저개발 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기청정탑을 세우고, 결국 그 지역들의 집값이 껑충 뛴 이 세상.  “아니다, 아니야. 남편이 살아 있었으면 마뜩잖아했겠지.”  경숙은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모퉁이를 돌아 걷는다. 보수적인 남편이 이런 새 시대에 적응하며 사는 모습은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윽고 경숙의 앞에 나지막히 솟아오른 공터가 펼쳐진다. 하늘걷기, 자전거타기, 벤치프레스 등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갖춰진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기구가 이미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상태다. 언제나처럼 ‘롤링 웨이스트’ 기구를 하려던 경숙은 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린다. 처음 보는 여자가 기구 위에 올라서서 허리가 꺾어지도록 격하게 몸을 돌리고 있다. 저렇게 무식하게 쓰는 기구가 아닌데, 저러다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서 경숙은 신경이 곤두선다.  알프스 대공원에 몰려오는 외지인들은 경숙에게 눈엣가시다. 그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공공기물을 망가뜨리고, 밟지 말라는 잔디밭을 밟고 다니고, 늘 시끄럽게 군다. 그들 덕분에 상권이 산다고는 해도 정작 이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권리를 못 누린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경숙은 공원내 운동 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만 개방하라고 주민센터에 건의해볼까 싶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헬스장 다닐 돈을 아끼려고 매일같이 이곳을 출퇴근하듯 드나드는 몰염치한 사람들까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는 미술관 매표소 뒤편의 한갓진 곳에 노숙인 십 수 명이 자리를 깔고 있기에 기겁을 해서 민원을 넣은 적도 있었다. 자기네 구역인 양 뻔뻔스러운 태도로, 자판기 믹스커피도 아닌 프랜차이즈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화투를 치는 모습을 보고 경숙은 깊은 경멸감을 느꼈다. 저런 처지에도 아메리카노는 마시고 싶은가, 보도블럭 위에서 자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깨끗한 공기는 마시고 싶은가 싶어서 우스웠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모아서 이 모든 것을 힘들게 얻었건만, 저들은 게으르게 빌붙어서 누리려고 하다니.  경숙은 운동기구들 사이를 빠져나와 다시 산책로에 들어선다. 흐트러졌던 자세를 다시 갖추고 걷기 시작한다. 자신의 아파트가 있는 방향으로.  길 저편에서 걸어오는 남자와 개 한 마리가 보인다. 경숙은 또 어떤 외지인이 개를 데려와서 화단에 똥을 누이고는 치우지도 않고 가려나 싶어서 눈을 부릅뜬다. 


...교수가 대기오염과 신경계 질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유의미한 분석을...

...미세먼지의 광화학적 반응에 의한 제3의 독성물질이 발견돼... 

...국내 대기오염질환의 최근 역학과 대응 방법... 

개가 냄새를 맡는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메일을 확인하던 진웅은 문득 목덜미에 달라붙는 따가운 눈총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몇 미터 너머에서 어머니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진웅을 쳐다보고 있다. 진웅은 왜 저러나 싶어 멀뚱히 그녀를 마주보다가 자신의 개, 알밤이에게 눈을 돌린다. 알밤이는 덤불에 코를 처박고서 열심히 킁킁거리고 있다. 다른 개가 거기다 오줌을 싸놓은 모양이다.  여자가 잰걸음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다.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반색을 하며 진웅에게 알은체를 한다.  “어이구, 누군가 했더니 요 앞 병원 의사 선생님 아니에요?”  진웅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인사한다.  “예,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제가 못 알아봬서...”  “아, 저번 달에 친구들이랑 그 병원 가서 선생님한테 뇌 검사 받았거든. 두통이 심해서. 이제 보니 여기 주민이었구먼? 내 보기엔 인상이, 개 키울 것 같이 안 생겼는데.”  “그랬었군요...”  진웅은 대강 적당히 받아친다. 사실 진웅은 지금 피곤하고, 기분도 매우 안 좋다. 근무 외 시간에 병원도 아닌 곳에서 만난 환자와 애써 친절히 담소를 나눌 마음은 없다. 다행히도 여자는 진웅의 떨떠름한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바쁘신 분을 너무 붙잡았네. 얼른 가세요.”라며 금세 놓아준다. 팔다리를 기운차게 흔들며 산책로를 따라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진웅은 잠시 지켜본다.  그다지 부티 나는 노인은 아니다. 촌스러운 행색이며 거친 피부며 수선스러운 말투까지. 이곳 주민이라기보다는 운동하러 멀리서 찾아온 외지인일 것 같다고 진웅은 생각한다. 대학병원 신경외과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외래환자를 보는 진웅은 저런 여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환자가 늘고 있다. 이러다가는 과로사로 죽겠다 싶다.  진웅은 저만치 앞서가는 알밤이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알밤이는 네 살난 보스턴테리어다. 아기 때 흰 바탕에 고동색 얼룩이 진 동글동글한 얼굴이 꼭 알밤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진웅이 너무 바쁘니 알밤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 되었고, 자연히 알밤이는 진웅보다는 아내를 더 좋아한다. 휴일 산책만큼은 꼭 진웅이 시키려고 하는 편이지만 녀석은 제 아빠를 길벗 삼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이놈 자식, 너는 복 받은 줄 알아. 개들이 다 너처럼 사는 줄 아냐?”  진웅은 한 마디 쏘아붙인다. 알밤이는 들은 척도 않고 진웅이 잡은 목줄을 끌어당기며 개선장군처럼 힘껏 전진한다.  알밤이와 산책할 때면 진웅은 이 동네에 살기를 잘했다는 실감이 든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인도도 잘 깔려 있으니 언제든 마음 편히 개를 데리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만약 공기청정탑 음영지대에서 살았다면 이런 사치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물론 음영지대 주민들은 공기가 얼마나 나쁘든 다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이니 개 산책도 아무렇게나 시키겠지만(혹은 산책 따위는 아예 시키지도 않거나), 진웅은 개나 어린아이나 노인에게 미세먼지가 얼마나, 어떻게 해로운지를 여느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대중은 미세먼지 하면 무엇보다도 호흡기 질환부터 떠올린다. 미세먼지가 혈관을 타고 침투해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고 세포를 손상시킨다는 것도, 그래서 암이라든지 당뇨라든지 뇌졸중이라든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럭저럭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뇌전증이나 루게릭병이나 알츠하이머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많이들 모르는 듯하다.  최근 빈곤층에서 급증하는 원인 불명의 신경 질환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진웅은 그것이 틀림없이 미세먼지 탓이라고 믿고 있다. 미세먼지에 포함된 유독물질이 중추신경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손상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구역질을 하고, 땀이나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심한 경우 의식을 잃거나 시력이 상실되는 발작 증세는 유기인산 화합물에 노출된 인체의 반응과 흡사하다. 2차대전 때 개발된 신경계열 독가스 같은 것 말이다. 정부에서는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어느 언론에서든 김정남 암살 사건 때 쓰였던 화학무기와 유사한 성분이라고 언급이라도 하는 날에는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대략 4년 전쯤부터 갑자기 이런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웅에게는 매우 불길하게 느껴진다. 4년 전부터 우리나라나 중국의 무슨 산업 시설이 신종 오염물질을 내뿜기 시작했다는 뜻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동안 사람들의 체내에 차곡차곡 분해되지 않고 쌓이던 유독물질이 임계치를 넘으면서 급작스럽게 이상 증세를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방금 진웅이 받은 대기오염질환학회의 소식지 메일에 나온 말마따나, ‘광화학적 반응에 의한 제3의 독성물질’ 때문이거나... 이런 경우라면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 세상에 흩뿌린 이런저런 화학물질들이 공기중에서 서로 상호작용해서 자기들끼리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겉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전국에 공기청정탑을 500기쯤 더 설치해 대한민국 전체를 정화하지 않고서야...  하지만 이 나라에 그런 천문학적인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있는 공기청정탑들의 필터를 유지 관리하는 데만도 예산이 빠듯하다며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걷어보려고 아득바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정말이지 넌 복 받은 줄 알아야 해.”  진웅은 주머니에서 배변 봉투를 꺼내며 알밤이에게 재차 강조한다. 알밤이는 잔디밭에 눈 똥이나 어서 치워달라는 듯 권태로운 눈길로 진웅을 올려다보고 있다. 진웅은 한숨을 쉬며 뜨뜻한 똥 덩어리를 봉투에 담는다.  개는 얼마나 행복할까. 개들에게는 양심도, 열등감도, 죄책감도 없다고 한다. 개들의 행복은 인간처럼 상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개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불행해지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개들은 맛있는 것을 먹고, 충분히 뛰어놀고, 주인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면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진웅은 알프스 대공원 에코빌 단지의 청약에 당첨됐을 때만 해도 행복이 시작된 줄 알았다. 의사가 되려고 코피 흘려가며 공부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인턴과 레지던트 기간을 버텨온 끝에, 드디어 그 모든 세월을 보상받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새 집에 신혼집을 꾸리고 번듯한 전문의가 되었는데도 진웅은 행복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다 부모님 도움을 받아 서울에든 고향에든 자기 병원을 차리고, 진료실에서 환자들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점쟁이 노릇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몇 억씩 쓸어담는데, 자신은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면서 잠도 못 자고 초과 근무에 시달려야 하나 싶다.  솔직히 때로는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애쓰신 걸 잘 알면서도, 부모님이 조금 더 부자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털어버리기가 어렵다. 그리고 또... 부모님을 생각하면 진웅은 원망과 죄스러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은 공기청정탑 영향권 내에 살고 계시기는 하지만 진웅과 같은 청정지대 중심부의 ‘탑세권’ 주민은 아니다. 그곳 공기 질이 양호한 수준이라고는 해도 당연히 알프스 대공원만큼 깨끗하지는 않다.  하다못해 개 한 마리도 청정지대에서 산책을 시켜주면서, 부모님께 번듯한 탑세권 집 한 채 해드리지 못하다니.  울적한 생각에 잠긴 사이에 어느덧 미루아트센터 앞뜰까지 다다랐다. 알밤이가 줄을 확 잡아당기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 진웅은 걸음을 멈춘다. 저 앞에서 리트리버 한 마리가 흥분한 채 헥헥거리며 알밤이에게 다가오려고 기를 쓰고 있다. 리트리버의 견주는 “천천히, 천천히!”라고 외치며 목줄을 고쳐잡으려 기를 쓰고 있지만 오히려 질질 이끌리는 모양새다. 진웅은 상대방에게 다가와도 괜찮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 알밤이를 리트리버에게 인사시켜 준다. 두 개는 빙글빙글 돌며 서로의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더니, 죽이 잘 맞는지 이내 장난을 치며 놀기 시작한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지. 개 팔자가 상팔자야.’  진웅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들고 미술관 앞뜰의 설치미술 작품들을 훑어본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젊은 커플들이 유유히 거닐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좋을 때다.’  진웅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너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편협해?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보상을 해줘야지. 음영지대 주민들이 거기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잖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야,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라니까. 그 사람들이 음영지대에 살아서 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있어?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란 말이야. 가족력 때문인지, 생활 습관 때문인지 뭔지...”  음료수 페트병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인지 미술 작품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작품 앞에서 젊은 남자와 여자가 마주서서 옥신각신하고 있다. 둘 다 20대 초반이다. 남자는 대학교 인장이 수놓인 점퍼 아래 청바지를 입었고, 여자는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에 원피스 차림이다. 여자는 팔짱을 낀 채 딱딱한 말투로 남자에게 대꾸한다.  “그거야 조사를 하면 되는 일이지. 그것까지도 정부의 책임이잖아. 애초에 공기청정탑을 이렇게 불균등하게 세우는 게 어딨어? 눈에 보이는 차별이잖아. 음영지대 주민들은 기본적인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단 말이야.”  “우리나라 헌법에는 건강권 없는데. 법대생이 그것도 몰라?”  “야, 너는...!”  여자, 하린이 씩씩거리면서 언성을 높이지만 이내 말문이 막힌다. 반면 남자, 성규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성규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만하자. 너 너무 흥분했다. 이게 뭐냐, 데이트하면서 정치 문제로 싸우고? 참 나.”  성규는 먼저 걸음을 옮긴다. 성규의 등 뒤에서 하린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어물거리다가 결국에는 성규의 옆으로 따라붙는다. 하지만 얼굴에는 토라진 표정이 역력하다.  성규는 여자친구의 이런 면이 적잖이 짜증스럽다. 하린은 지난 학기부터 무슨 환경주의 동아리에 들어가더니 별의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과 운동권들에게 세뇌당해 머리가 돌아버렸는지, 하린은 이제 쇠고기와 우유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라면도 안 먹으려고 하고, 자동차를 평생 쓰지 않겠다며 운전면허도 따지 않겠다고 하고, 탈원전 집회에 나가느라 데이트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오늘은 모처럼 시간을 맞춰서 알프스 대공원 미술관으로 데이트 나왔더니만,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미술품 앞에서 공기중에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가 급기야는 말싸움까지 벌어진 것이다.  성규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끝내주고 집안도 잘 사는 애가 뭐가 불만이라고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린은 굳이 이런 촌스러운 이름의 공공시설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다. 서울의 ‘비밀 정원’ 프랜차이즈 회원 카드에 매달 백 만원쯤 자동 충전시켜놓고 툭하면 찾아가 산책할 뿐아니라, 좀 스트레스 받은 날에는 인공 햇빛, 구름, 안개, 비를 조절할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 서비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애였다. 덕분에 성규도 데이트 비용 문제로 부담은 덜 느껴서 좋은 건 사실이다. 그냥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완벽할 텐데.  요즘 ‘강시병’ 때문에 한창 뉴스가 시끄럽기는 하다. 가난한 집 애들이 곧잘 걸리는, 얼굴이 푸르스름해지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강시처럼 발작을 하는 병 말이다. 성규의 과에도 그런 애가 한 명 있는데, 강의중에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애는 자기가 음영지대 출신이라는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고 언제나 비싼 옷을 입고 다녔기에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여간 없는 집에서 자란 애들이 더 허세가 심하다. 형편이 좀 나아지니 그 사실을 어떻게든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만, 가난했던 과거는 어떻게든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이런 걸 봐도 음영지대의 강시병 환자들에게 정부가 보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일인지 알 수 있다. 지금 음영지대에 사는 사람들만 강시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만 강시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평생을 청정지대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도 재수가 없으면 걸릴 수 있는 병이다. 어디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게다가 미세먼지로 인해 걸릴 수 있는 병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음영지대의 강시병 환자들이 떠들썩하게 시위를 벌인다고 해서 정부에서 돈을 쥐어줬다가는, 음영지대의 폐암 환자, 고혈압 환자, 천식 환자, 각막염 환자, 우울증 환자, 심지어는 조현병 환자까지도 보상금을 내놓으라며 들고일어날지도 모른다. 그중의 태반은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런 병에 걸렸을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성규는 하린을 이끌고 식당과 카페 들이 있는 곳으로 걷는다. 하린은 부루퉁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성규는 구태여 달래줄 생각이 없다. 지금은 배가 고파서 기분이 더 나쁠 것이다. 일단 맛있는 것을 좀 먹고 나면 결국에는 제풀에 지쳐서 화를 풀게 되어 있다.  “뭐 먹을까?”  유럽풍 조각상과 분수대가 있는 아담한 광장에 이르러 성규는 묻는다. 광장을 중심으로 이탈리안 비스트로, 패스트푸드점, 태국 음식점, 일식집, 샌드위치 전문점 등이 늘어서 있다. 간판이며 꾸밈새는 가지각색이지만 가게 앞에 노천석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다 똑같다. 모처럼 공기청정지대에 온 사람들은 야외에서 햇빛과 바람을 즐기며 식사를 하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하린과 성규도 마찬가지다. 하린은 식당들을 유심히 둘러보더니 화덕 피자 전문점 앞에 비어 있는 테이블 하나를 가리킨다.  “저기 피자 맛있대. 비건 피자도 있고.”  하린은 성규를 앞질러 걸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길세라 재빨리 의자를 차지하고 앉는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 PC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하린의 얼굴은 벌써 한결 누그러져 있다. 반대로 성규는 하린이 또 비건치즈에 버섯과 가지 따위만 올려진 피자 같지도 않은 피자를 시킬 거라는 생각에 또 다시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둘이서 밥을 먹을 때면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메뉴를 시켰고, 으레 하린이 밥을 남겨서 성규가 늘 1.5인분을 먹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 하린이 먹는 것들은 도무지 맛이 없어서 나눠먹고 싶지도 않거니와, 보통 음식보다 언제나 몇 천원 정도 비싸기까지 하다. 하린이야 금전 감각이 없으니 자기 식사값은 자기가 낸다며 속 편하게 저러지만, 성규는 자신이 늘 하린보다 싼 메뉴를 고르고, 싼 선물을 하고, 특가로 풀린 호텔 방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데에 질렸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적당히 센스 있게, 오늘은 국밥을 먹고 싶은 기분이네, 귀찮은데 그냥 가까운 모텔 가자, 이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거랑 자몽에이드 먹을래.”  하린이 가리킨 메뉴판 속에는 역시나 풀과 버섯투성이인 피자 사진이 떠 있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성규는 태블릿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테이블 유리에 비친, 원피스 네크라인 위로 드러난 하린의 가슴골을 흘끔 눈짓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임대 아파트 짓겠다고 녹지를 밀어낸다니,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명색이 청정지대인데 나무를 더 심으면 심었지, 사람을 더 들이려고 나무를 베어낸다니? 이건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다 같이 항의해야 할 문제라니까요. 도대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겠어. 그러지 말고 청정지대를 더 만들면 되잖아.”  화덕 피자 식당 건너편에 있는 한 카페의 노천석에서 30대 후반의 여성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쏟아낸다. 그 맞은편에 앉은, 그녀보다 몇 살 어린 외모의 여자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화덕 피자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는 피자집 노천석에 앉은 젊은 커플 중, 남자애 쪽이 입은 점퍼 등판의 문구를 바라보는 중이다.  지산대학교 경영학과.  저 남자애와 같이 피자를 먹고 있는 여자애도 아마 같은 대학교 학생이리라.  여자, 유정은 명문대생들을 보면 동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저런 좋은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청춘을 보내고 연애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정은 대학을 다닐 나이는 지났고 이미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엄마이지만, 못내 미련이 남는다. 어쩌면 유정도 대학을 졸업했을 수도 있었다. 시아를 낳지 않았더라면.  “엄마, 엄마, 나 심심해.”  시아가 유정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유정은 자신이 한 생각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시아는 그야말로 지겨워 죽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리며 유정을 올려다보고 있다. 시아의 앞 테이블에는 유정이 건네준 스마트폰과 빈 아이스크림 그릇이 나란히 놓여 있고, 맞은편에 앉은 수빈은 제 엄마의 스마트폰을 붙잡고 게임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어머, 쟤는 게임을 안 하네.”  수빈 엄마가 반쯤은 신기하고 반쯤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빈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눈치가 빠른 시아는 친구네 엄마가 자신을 칭찬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수줍은 얼굴로 유정의 뒤에 숨는다.  확실히 시아는 별난 데가 있다. 여느 아이들과 달리 스마트폰보다는 책 읽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성가시기도 하다. 소리내어 읽어주어야 하고, 책을 골라주기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도 해주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스마트폰만 쥐어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논다는데. 유정은 핸드폰을 집어들고 유투브의 어린이책 방송 채널을 켜서 시아에게 건네준다. 그러자 시아는 짜증이 났는지 무언가 서러워졌는지 울상을 지으며, 조그맣게 “이건 이미 다 봤단 말이야.”라고 칭얼거린다. 유정은 확 신경질을 내고 싶은 걸 참으며 다른 구독 채널들을 차근차근 넘긴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찾은 시아는 금세 표정을 풀고 화면에 시선을 붙박는다.  “시아 엄마는 참 좋겠어요. 애가 똑똑해서. 말도 어쩜 저렇게 또박또박 잘하고.”  가시가 살짝 돋힌 수빈 엄마의 말투에 유정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 아니에요. 그냥 애가 책은 좀 좋아하는 거 같은데, 다른 데에는 통 관심이 없어서... 저랑 그이는 걱정인걸요.”  “하긴 사회성 교육도 중요하지. 엄마로서는 이것저것 다 어렵죠 뭐.”  수빈 엄마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유정은 그녀가 자신을 은근히 비꼬았다고 직감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비꼰 것인지는 모른다. 유정이 이 동네 엄마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고 돌려 말하는 걸까? 아니면 시아의 교육을 유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힐난하는 걸까?  유정은 자신이 고졸일 뿐더러 음영지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수빈 엄마는 물론이고 주변 여자들 모두가 아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근거는 없지만 자신을 향한 그들의 눈빛이며 수군거림을 느낄 수 있다. 유정은 머뭇거리며 원래의 화제로 말을 돌린다.  “그러게요... 그, 임대 아이들하고 섞이는 것도 걱정되고요. 학교에서 어떤 애들이랑 노는지 다 알 순 없으니까...”  “어휴, 그러니까.”  수빈 엄마가 다시금 흥분한 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말을 잇는다.  “지금도 가뜩이나 그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픈데. 공원 바닥에 돗자리 깔아놓고 고추를 말리질 않나, 화단 둘러서 걸어가기 귀찮다고 산울타리를 없애질 않나... 그런 집 애들은 또 부모 보고 뭘 배우겠어요. 뻔하지. 우리 수빈이는 유치원 때부터 워낙 아무하고나 잘 놀았어서...”  수빈 엄마는 수빈이가 유치원 때 임대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트러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두어 번 들었던 이야기지만 유정은 내색하지 않는다. 사실 임대 세대 주민들은 대다수가 음영지대 출신이고, 이 이야기는 결국 음영지대 사람들에 대한 험담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유정이 사는 집은 남편 소유이니 꿇릴 것 없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쪽 사람들하고는 엮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유정은 괜히 이 화제를 꺼냈다고 내심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참, 그러고보니까 그 얘기 들었어요? 요즘 도는 그 강시병이라고 있잖아.”  수빈 엄마의 말에 시아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재빨리 내린다. 그 순간 유정은 시아가 스마트폰에만 집중하는 척하면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 조그만 머리로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정은 반사적으로 시아의 어깨를 감싸쥔다.  “강시병이 왜요?”  “그게 전염된다는 소문이 있어.”  “네?”  수빈 엄마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닥거린다.  “음영지대에서 도는 전염병인데 정부에서 숨기고 있다는 거야. 지금 사람 환자한테만 관심이 쏠려서 많이 안 알려졌는데, 사실 동물들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대요. O시 같은 데 가보면 길고양들이나 들쥐 시체가 널렸다지 뭐야. 어휴, 소름끼쳐.”  시아가 스마트폰을 잡은 손을 내리고 수빈 엄마를 흘끔 돌아본다. 이제 보니 어느새 수빈도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팽개쳐놓고 턱을 괸 채 제 엄마를 올려다보고 있다.  “설마요. 미세먼지 때문이라던데... 동물들도 공해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요?”  유정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두려움 어린 눈길을 의식한 수빈 엄마는 헛기침을 한다.  “글쎄, 아무튼, 이런 건 조심해서 나쁠 것 없죠. 병 걸린 사람들하고 가까이 지내다가 괜히 옮기라도 하면 우리만 손해지. 수빈아, 너도 조심해.”  수빈 엄마의 말에 수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아와 유정을 곁눈질한다. 묘한 죄책감이 서린 그 얼굴을 보며 유정은 다시금 확신한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유정은 말없이 시아의 어깨를 한 번 더 당겨 안는다. 그렇게 하면 시아를 지킬 수 있을 것처럼.  “아, 귀찮아. 그냥 가자.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지. 좀 혼나기밖에 더 하겠어?”  “그래도 더 찾아보자. 학교 비품이잖아.”  카페 뒤쪽을 따라 성길게 조성된 수풀 속에서 운동복 차림의 소녀 두 명이 천천히 걸어다니며 옥신각신한다. 한 명은 웬만한 성인만큼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통통하고 가무잡잡한 종아리를 느릿느릿 놀리며 친구의 뒤를 마지못한 듯 따라가고 있다. 큰 키의 은진은 허리를 구부정히 기울이고 명자나무와 키 작은 라일락 나무를 헤치며 바닥을 살핀다. 흙바닥 어디를 봐도 형광 연두색 테니스 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채령은 한숨을 쉰다.  “이상하다. 그게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기가 무슨 산 속도 아니고, 공이 파묻혀서 안 보일 만큼 나무가 무성한 것도 아닌데... 야, 그새 개가 물고 간 거 아닐까? 아까 어떤 남자가 개 데리고 지나가는 거 봤는데...”  채령이 늘어놓는 말을 묵묵히 듣던 은진이 걸음을 멈춘다.  “요 어디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연습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은진의 침착한 목소리에 채령은 입을 다문다. 은진은 분명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 말일 텐데도 채령은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 주말에 여기까지 와서 테니스 연습을 하는 건 채령의 실력이 뒤떨어지는 탓이다. 공을 잃어버린 것 역시, 채령이 서브를 괴상하게 넣어서 테니스장 가장자리의 산울타리 너머로 공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공이 허공으로 넘어가 사라진 순간 은진의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을 채령은 자꾸만 떠올린다. 어이없다는 듯한, 동시에 별 기대도 없다는 듯한 체념의 표정.  연습을 하면 늘기는 하는 걸까, 채령은 생각한다. 공을 치면 칠수록 팔에 힘만 빠지고 라켓은 걸상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은진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하지만 채령은 그런 표현을 하지 못한다. 은진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는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잔디밭을 살핀다. 화단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인데도 마치 바깥 세상과 한 단계 분리된 것처럼 조용하다.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카페에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들이 비워두고 온 맞은편 테니스장에는 어느새 다른 팀이 들어왔는지, 깡 하고 라켓에 공이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그 매끄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채령은 그들의 실력을 가늠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채령과 은진이 다니는 학교의 테니스부는 이제 막 생겼을 뿐이고, 코치 선생님부터 부원들까지 전부 오합지졸이다. 채령 자신을 포함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배웠다는 은진이라면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음영지대의 학군에서 뭘 열심히 해봤자 그걸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채령은 단지 은진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입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은진의 눈 속에서 번뜩이는 욕심을 본 순간부터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미안해졌다.  “빨리 학교에 테니스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치?”  쪼그려앉은 채 라켓 끝으로 잡초 틈새를 뒤적거리던 은진이 입을 연다.  두 사람은 어느새 후미진 곳의 빈터에 이르렀다. 뭔가를 심으려는 건지, 무슨 시설을 만들려는 건지, 흙을 골라놓은 네모진 땅이 한동안 방치되어서 잡초가 무성히 자란 상태다. 말끔하게 관리된 주변의 정원과 대조되어서 더욱 지저분해 보인다.  채령은 침묵이 깨진 것이 반가워 냉큼 말을 받는다.  “그러니까. 짐 싸들고 공청지대까지 와서 연습하는 것도 지겨워. 눈치 보이고. 공원 너무 붐비는 날엔 입장도 못하고... 짜증나 진짜.”  채령이 제풀에 점점 흥분하며 말한다. 은진은 운동복 바지를 털고 일어선다.  “참, 그거 들었어? 이제 강시병 걸린 사람들도 이런 데 입장 못하게 할 거래.”  채령은 벙쪄서 은진을 돌아본다.  “뭐? 왜?”  “전염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나. 몰라, 가짜 뉴스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아까 학교 커뮤니티 보니까 다 그 얘기더라고. 예방 조치가 어쩌구.”  “미쳤다. 그게 뭐야? 그냥 존나 가난하면 걸리는 건데.”  채령은 킬킬 웃으며 학교의 푸르둥둥한 강시 애들을 떠올린다. 한 반에 두세 명꼴로 있는 강시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네끼리 무리 지어 다닌다. 강시병에 걸리면 그렇게 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애들만 강시병에 걸리는 건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음침하거나 찌질한 성격이어서 보통 같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시들끼리 같이 놀려면 서로의 그런 점을 대체 어떻게 견뎌낼까, 채령은 가끔 궁금증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에는 강시 없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받지 말자.”  채령은 부지불식간에 잡초를 라켓으로 마구 헤집는다. 버려진 페트병 뚜껑, 과자 봉지, 핫도그 꼬챙이, 더러운 물티슈 같은 것들이 라켓 끝에 쓸려서 이리저리 튄다. 주황색 환타 뚜껑이 데굴데굴 굴러가 은진의 종아리에 맞는다. 그러자 은진이 피식 웃으며 뚜껑을 발로 차 채령을 향해 돌려보낸다.  “웃긴다. 너처럼 공도 못 치는 애도 입부하는데 무슨.”  채령은 뚜껑을 되치려고 라켓으로 땅을 내리찍지만 실패한다. 뚜껑은 간발의 차로 채령의 다리 사이를 지나쳐 더 멀리 굴러간다. 채령은 몸을 돌려 그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어, 저게 뭐지?”  채령은 주황색 뚜껑 옆에 놓여 있는 파란 봉제인형 같은 것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뒤에서 은진이 따라오는 기척이 들린다. 채령은 웅크려 앉아 파란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아, 하고 짧은 비명을 뱉는다.  “이것 좀 봐.”  “뭔데?”  은진이 채령의 어깨 뒤에서 굽어본다.  죽은 비둘기의 시체다. 비둘기는 마치 동화 속의 파랑새처럼 털 전체가 새파란 빛깔을 띠고 있다. 죽은 지 오래된 듯 속은 이미 들쥐들과 벌레들이 파먹어서 껍데기만 남았는데, 거무죽죽하게 문드러진 거죽과 뼈대 위로 푸른 깃털들이 포스터 물감처럼 선명하다.  두 소녀는 잠시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본다. 욕지기에 사로잡혔으면서도 그들은 금방 눈을 떼지 못한다. 은진이 한쪽 발을 살짝 옮기자 흙 위를 지나가던 개미들 중 몇 마리가 그녀의 운동화 밑창 아래로 사라진다. 그중 또 몇 마리는 재빨리 발을 옮겨 두 소녀를 둘러싼 화단 바깥의 광장으로 걸어나간다.  옛 아파트 단지 근린공원의 운동장이었던 광장에는 짙은 회색과 연회색의 콘크리트 블록들이 깔려 있다. 그 위로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유로운 오후를 즐긴다. 매점, 식당, 카페 전면에는 최소 2미터 간격을 사이에 두고 배치된 노천석들이 널려 있고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 먹고 마시며 떠든다. 식물들과 곤충 및 소동물들의 조화로운 공생을 도모하고, 해충과 잡초를 자연스럽게 억제할 수 있도록 계획하여 심긴 나무들은 짙푸른 빛깔과 싱그러운 향기를 한껏 자랑한다. 주변에는 산도 강도 없고 빙하는 물론이요 호수는 없지만,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미루아트센터의 굴뚝에 그려진 파란 새 마크와 그 뒤의 새하얀 청정탑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제법 멋진 랜드마크 노릇을 한다. 공원 어디에서든 눈만 들면 볼 수 있는 공기청정탑의 거대한 디스플레이에는 현재 시각과 미세먼지 양이 표시되며 공영 방송사의 뉴스가 송출된다. 뉴스 속보에 전국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몇으로 뜨든 간에 이 일대의 공기 질은 언제나 ‘최고 좋음’을 유지한다. 저 멀리 알프스에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는 날에도 이곳의 날씨는 언제나 쾌청할 것이다.  이곳이 바로 N시의 자랑거리, 알프스 대공원이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61&s_para1=177&s_para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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