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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2019년 노벨물리학상: 페가수스자리 51b는 어떻게 발견될 수 있었을까? / 19.11 크로스로드
해도연 / 작가 지구 바깥의 다른 세계 또는 외계행성의 존재는 인류가 가진 근원적 질문 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상상과 철학의 세계에만 머무르던 외계행성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천문학자들의 관측 목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든 워커와 브루스 캠벨이 분광기에 가스셀 방식을 도입하여 공전하는 행성에 의해 별이 흔들리면서 일어나는 도플러 효과를 초속 15미터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1] 이번에야말로 외계행성을 관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퍼져나갔고, 1988년에는 그들의 연구팀이 세페우스자리 감마 별에서 외계행성을 발견했다는 발표까지 나왔다.[2] 그렇게 외계행성의 시대가 열리는 것만 같았다. 1992년이 되자 워커와 캠벨은 아무래도 행성이 아닌 것 같다며 그들의 발견을 스스로 철회했다.[3] 1994년에는 또 다른 행성 사냥꾼인 제프리 마시와 폴 버틀러가 5년 동안 100개의 별을 관측했지만, 외계행성은 없었다고 발표했다.[4] 1995년 8월에는 워커와 캠벨이 12년 동안 관측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태양 근처의 별 45개에서는 외계행성의 흔적이 없으며 대부분의 별에서 행성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존의 행성형성이론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5] 외계행성 천문학은 이렇게 태어나기도 전에 저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2개월 후인 10월 5일, 프랑스에서 열린 학회에서 스위스에서 온 미셸 마요르와 디디에 쿠엘로가 태양과 닮을 별을 4.2일 만에 공전하고 별에서 고작 0.05 au 떨어진 첫 번째 외계행성 페가수스자리 51b (51 Peg b)를 발표했다.[6][7] 그들이 보여준 사인 곡선 모양의 그래프는 이 놀라운 행성이 분명히 그곳에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정확히 24년 3일이 지난 2019년 10월 8일, 마요르와 쿠엘로는 이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김민정 작가님) 마요르와 쿠엘로가 초속 10미터의 정확도를 가진 분광기 엘로디(Élodie)를 개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는 아니었다. 미국의 마시와 버틀러 역시 뛰어난 분광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당시 최고의 망원경 중 하나인 릭 천문대의 구경 3미터 망원경을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마요르와 쿠엘로가 사용한오트-프로방스 천문대의 망원경은 이보다 작은 1.93미터 구경이었다. 게다가 마시와 버틀러는 마요르와 쿠엘로보다 몇 년 먼저 행성 탐색을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기에 첫 번째 외계행성은 유럽 작은 나라의 천문학자들에게 먼저 발견된 것일까? 쿠엘로는 훌륭한 분광기와 충분한 관측시간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8]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요르가 결정적 차이로 꼽은 '관점의 차이'가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별이 행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관측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별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투자 대비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발견하기 쉬운 행성을 먼저 빠르게 탐색해야 한다. 발견 가능성이 높은 행성은 별을 최대한 많이 흔들 수 있는 거대한 가스행성이었고, 당시의 행성형성이론에 따르면 거대가스행성은 태양계의 목성과 마찬가지로 공전주기가 10년 전후라고 예상되었다. 그래서 워커와 캠벨은 길게는 몇 달 주기로 관측을 하기도 했고 마시와 버틀러는 90일 평균속도를 계산했다. 며칠 만에 별을 한 번 공전하는 행성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마요르와 쿠엘로는 전업 행성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들은 외계행성 뿐만 아니라 갈색왜성 같은 저질량성 동반성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갈색왜성은 형성과정이 행성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며칠 만에 별을 공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전주기에 제한을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행성이 발견되면 더 좋을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9] 마요르와 쿠엘로가 페가수스자리 51b를 발표하고 일주일 뒤, 마시와 버틀러가 그들의 장비로 고작 3일 만에 이 행성의 존재를 교차검증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관점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마시와 버틀러는 과거 8년간의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 반년 만에 6개의 행성을 새롭게 찾아냈다. 행성은 이미 사냥꾼들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만, 거대가스행성은 공전주기가 길 것이라는 관점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높은 만큼 반론도 거셌다. 1997년, 분광천문학의 대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는 페가수스자리 51번 별을 직접 관측한 뒤, 별 표면이 불안정해 행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10] 1년 뒤 그레이가 자신의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며 반론을 스스로 철회하기는 했지만[11] 회의론은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의심의 불씨는 새로운 관측법이 등장하고 나서야 완전히 꺼졌다. 1999년, 도플러 효과로 발견된 행성 HD209458b가 별 앞을 지나가면서별빛이 조금 어두워지는 통과현상(트랜짓)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두 가지 독립적인 방법으로 관측에 성공하자 외계행성의 존재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되었다. HD209458b의 트랜짓은 독립적인 연구팀 두 곳에서 2000년 1월 동시에 발표했다.[12][13] 그렇게 21세기 천문학은 외계행성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첫 번째 외계행성 페가수스자리 51b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목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2년이 걸리지만, 목성보다 조금 가벼울 뿐인 이 행성은 고작 4.2일 만에 공전했다. 별과의 거리는 태양과 목성 거리의 100분의 1에 불과했고 수성보다도 안쪽에 위치했다. 당시 천문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행성형성이론인 표준모델은 아름다운 가설이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태양계의 현재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몇 가지 문제는 있었지만 다른 부분들이 완벽했기에 천문학자들은 곧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외계행성계가 존재한다면 역시 표준모델을 따를 것이고 결국 태양계와 비슷하리라 예상했다. 행성 사냥꾼들이 거대가스행성을 찾을 때 목성의 공전주기를 참고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표준모델의 특징 중 하나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지금의 위치와 거의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고 목성은 태양에서 수 au 이상 떨어진 곳에서만 만들어지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가수스자리 51b는 이러한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표준모델은 더 이상 표준이 될 수 없었고 행성 사냥꾼들은 우주를 바라보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했다. 페가수스자리 51b 이후, 태양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행성들이 발견되면서 행성이 탄생과 진화 과정에서 궤도이주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특히 페가수스자리 51b와 같은 ‘뜨거운 목성’은 바깥에서 만들어진 다음 별을 향해 이동한 것이 분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행성계 진화 시나리오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태양계 역시 목성이 지금의 화성 궤도까지 다가온 적이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는 태양계에 천왕성이나 해왕성 규모의 거대행성이 하나 더있었지만, 궤도이주 과정에서 태양계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14] 태양계 바깥뿐만 아니라 태양계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천문학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페가수스자리 51b를 발견 40여 년 전에 예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오토 스트루베는 195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목성 정도의 행성이 별에서 0.02 au 정도 떨어져 1일 주기로 공전한다면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15] 페가수스자리 51b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그는 서로 가까이 붙은 쌍성이 존재한다면 행성이 수성보다 훨씬 별에 가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표준모델이 구축되기 전이었기에 스트루베가 자신의 사고실험에 제약을 걸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후대 천문학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태양계 너머의 행성을예상할 수 있었다. 현대 천문학의 안과 밖을 흔들어 놓은 스위스의 두 천문학자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진 것은 놀라우면서도 모두가 언젠가 이루어지리라 예상했던 일이다. 마요르가 아직 건강할 때라서 다행일 따름이다. 대학원 시절의 발견으로 인생 최고이자 분야 최고의 성과를 이룬 쿠엘로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수상자들과 비교하면 사소하기 그지없겠지만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외계행성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 작년 겨울부터 올해 여름까지 개인 시간을 책 “외계행성”을 쓰는데 모두 쏟아 부으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깊이 들여다봤다. 그렇기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 흥분을 멈출 수 없었다. 천문학의 역사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올해는 정말 잊지 못할 해가 되었다. [1] B. Campbell and G. A. H. Walker, Publications of the Astronomical Society of the Pacific, Vol. 91, 542 (1979) [2] B. Campbell, G. A. H. Walker, and S. Yang, The Astrophysical Journal, Vol. 331, 902 (1988) [3] G. A. H. Walker, D. A. Bohlender, A. R. Walker, et al., The Astrophysical Journal, Vol 396, L91 (1992) [4] G. W. Marcy and R. P. Butler, ASP Conference Series, Vol. 64, 587 (1994) [5] G. A. H. Walker, A. R. Walker, A.W. Irwin, et al., Icarus, Vol. 116, 2, 359 (1995) [6] M. Mayor and D. Queloz, ASP Conference Series, 109 (1996) [7] M. Mayor and D. Queloz, Nature, Vol. 378, 23 (1995) [8] Pale Red Dot, Interview To Didier Queloz, palereddot.org, (2016/4/21) [9] M. Mayor & P.-Y. Frei, "New Worlds in the COSMOS: The Discovery of Exoplane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10] D. F. Gray, Nature, Vol. 385, 795 (1997) [11] D. F. Gray, Nature, Vol. 391, 153 (1998) [12] G. W. Henry, G. W. Marcy, R. P. Butler, et al., The Astrophysical Journal, Vol. 529, L41 (2000) [13] D. Charbonneau, T. M. Brown, D. W. Latham, et al., The Astrophysical Journal, Vol. 529, L45 (2000) [14] D. Nesvorný, The Astrophysical Journal, Vol. 742, L22 (2011) [15] O. Struve, The Observatory, 72, 199 (1952)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92&s_para1=170&Board=n9998&admin=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