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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전파천문학자 이야기 / 20.6 크로스로드

이상성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일러스트레이션: 김민정)


군복무를 마치고 2년 만에 다시 찾은 3월 봄날의 대학 캠퍼스에는 말할 수 없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이제 막 사회로 나온 복학생에게 새 학기 캠퍼스의 모습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6년 전 이맘 때, 천문학자의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천문학도의 배움의 길은, 아직도 쌀쌀한 3월의 초저녁, 8인치 반사망원경을 돌려 서쪽 하늘에 낮게 드리어진 초승달과 그 아래 영롱하게 반짝이는 샛별의 향연에 도취되면서 시작되었다. 4000년 전 저녁 하늘을 올려다 본 인류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졌을 그 하늘의 향연. 우리 태양계의 모습이다. 그리고 잠시 눈을 돌려서 밤하늘에서 가장 희미한 별 카시오페이아자리 로우(Rho Cassiopeia)를 찾는다. 4000년 전 인류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그 별에서 출발하여 지구에 도달한 별빛, 즉 가시 광자(visible photon)을 만난다. 천문학의 꿈은 역시 눈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또는 광학망원경을 통해 그려지는 우주를 여행하며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던 천문학도. 그러나 그 길을 바꾼 것은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지름 6미터의 접시형 안테나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이다.


8인치 반사망원경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차이를 보이는 전파망원경은 지름 6미터의 주 반사경과 지름 61센티미터의 부 반사경으로 이루어진 카세그레인 광학계를 갖추고 있어, 그 전체 높이만 무려 10미터에 이른다. 주 반사경은 평균 크기 70센티미터인 알루미늄 패널 84개가 100마이크로미터 오차로 정렬되어 있다. 수 미터 길이의 지지대 4개가 받치고 있는 부 반사경은 100GHz 대역 전파신호를 초점면에 집중시킨다. 집중된 전파신호를 수신하기 위해 헤테로다인 수신기가 헬륨 냉각기에 의해 절대온도 20도의 극저온 냉각을 유지하면서 작동하는 시스템. 그 규모 및 사용된 기술에 깊은 인상을 받은 천문학도는 낯선(?) 천문학 분야인 전파천문학에 입문하고자, 즉 전파천문학자가 되고자 결심한다. 


보이는 빛(가시광)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는 천문학을 광학천문학이라고 한다면, 전파천문학은 보이지 않는 빛(전파)를 수신하여 우주를 탐사하는 천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전파천문학도는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아니,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방법에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대인에게 있어서, 생각이 그렇고, 감정이 그렇고, 믿음이 그럴지도. 또, 눈에 보이는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사상, 이념, 또는 신앙이 대중을 움직이듯.


수 천 년 전, 맨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위대함을 경외하고 철학하던 인류에게 자연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안겨 준 과학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법칙, 맥스웰 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선사했고, 해와 달, 별들이 존재하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했던 천문학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을 가능케 했다. 기나긴 천문학의 역사에 비해 매우 짧은 역사를 갖는 전파천문학은 그러나 다양한 천문학적 중대 발견들을 낳았다. 1932년, 잔스키(Karl G. Jansky)에 의해 우리은하 중심에서 날아오는 우주 전파 신호가 발견되면서 태어난 전파천문학은 펜지아스(Arno A. Penzias)와 윌슨(Robert Wilson)의 우주배경복사 발견(1963년), 벨(Jocelyn Bell)의 펄서 발견(1967년),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의 국제 연구팀에 의한 초대질량블랙홀 그림자 발견(2019년)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우주를 밝혀왔다.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우주를 그리고 자연을 더욱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이런 전파천문학의 매력이 한 전파천문학도의 마음을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전파천문학은 어떻게 이런 주요 발견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아니 자연은 왜 전파천문학자들에게 이런 발견을 허락했을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에는 전파 신호이외에도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들도 있다. 현대 천문학의 눈부신 발전은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검출하는 천문관측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발전을 통한 천문학적 발견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파천문학의 역사적 발견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또한 여전히 천문학 지식의 근본이 되고 있다. 


관측파장이 약 500나노미터(nano-meter)인 가시광에 비해 수 천 배 내지 수십 만 배 정도 긴 파장(수 밀리미터에서 수십 센티미터)의 전파는 우주 공간을 여행할 때 만나는 성간 물질(우주에 떠다니는 미세먼지나 티끌)에 의해 간섭(방해) 받지 않고 진행한다. 이는 빛의 간섭 또는 산란 효과가 그 파장이 짧을수록 크고, 반대로 그 파장이 길수록 적어지는 특성 때문이다. 즉,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파장이 짧은 빛들(가시광선)은 수많은 우주 입자들에 의해 산란되어 빛의 진행 방향이 흩어지게 된다. 이는 원래 진행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빛의 세기 감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파장이 비교적 짧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으로 관측할 수 있는 천체의 거리는 파장이 긴 전파 신호로 관측할 수 있는 천체의 거리에 비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같은 고유 밝기의 천체를 가정했을 때).


먼지 입자로 가득 찬 우리 은하 중심의 전파신호가 그 먼지 입자들을 뚫고 약 25000년 이상을 여행하여 지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우주초기 대폭발(Big Bang) 이후 뜨거운 우주에서 방출된 빛이 138억년을 날아 우리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백조자리 은하단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M87)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5300만년을 날아온 빛이 지구에 도달할 수 있던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하고, 전파망원경에 의해 밝혀질 수 있었던 이유들 중에 하나는 어쩌면 긴 파장의 전파 특성일 것이다. 그 전파천문학자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쩌면 전파는 빛이 아니라, 창조주가 그 자연의 비밀을 인간에게 들려주는 언어일지도...”   


관악산 자락 전파망원경의 지름 6미터 반사경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84개의 알루미늄 패널들의 정렬 정밀도를 30마이크미터까지 낮추는데 성공한 전파천문학자는 독일의 연방도시인 본(Bonn)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에펠스버그(Effelsberg) 전파망원경의 지름 100미터 주반사경을 올려다본다. 미국과 유럽에 위치한 전파망원경 13대를 동시에 가동하여 우주 저 멀리 수십억 광년 거리에서 초대질량블랙홀들이 뿜어대는 강렬한 불꽃에서 날아오는 전파신호를 수신하여 불꽃의 모습을 그리려한다. 이는 1946년 라일(Martin Ryle)과 폰베르그(Derek Vonberg)에 의해 개발된 전파간섭계 기술을 활용하여, 지구에서 달 표면의 스마트폰 만한 물체의 각 크기도 측정할 수 있는 공간 분해능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봄날의 저녁 하늘, 초승달과 샛별의 절묘한 하늘 향연에 유혹되어 천문학의 길에 들어섰고, 최첨단의 로봇공학과 전자공학의 집합체인 전파망원경의 웅장함에 마음 빼앗긴 어느 전파천문학자는 그렇게 그 길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도 그 길을 걸어간다.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의 그림자를 그리기 위해.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58&s_para1=177&s_para4=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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