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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mirimlee

[Cross Street]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다 / 20.5 크로스로드


(일러스트레이션: 김민정)




문성실/ 미생물학자


9월 2일 (서 아프리카 해안 외곽) 유리처럼 맑은 날과 바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명의 사망자가 선상에서 나왔다는 보고를 듣고 엄청나게 우울해졌다. 그들의 매장(burial)은 오전 11시에 열렸으나, 시체는 4 구였다. 오늘 오후에 두 번의 매장이 더 있었고, 또 다른 죽음이 있었다. 다른 배들도 매장으로 바쁘다. 사망자 중 한 명은 아름다운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이 병의 이상한 점은 젊고 강한 남성들이 이 병을 최악으로 앓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내가 아는 이름도 있었다. 오늘은 질서 정연하다. 나는 오늘 음식을 조금 먹을 수 있었고, 기분은 훨씬 좋아졌다. 1918년 뉴질랜드를 떠나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항해했던 한 군인의 일기 중 일부이다. 그는 정어리를 켜켜이 쌓아 놓듯이 밀폐된 배의 빽빽한 공간에서 다른 군인들과 생활했다. 1918년 가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큰 물결이 오기 직전, 그 배 안에서는 많은 이들이 너무 쉽게 죽어갔다. 이 군정에 탔던 어느 누구도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지는 않은 채,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에 끝이 났다. 그러나 1,117명 중 90% 이상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고, 77명이 사망했다. 이 일기의 주인공도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다 회복되었다. 그의 일기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인플루엔자의 역학적 의미와 함께 전쟁의 공포보다 전염병의 공포가 드리워졌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플루엔자는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질병이다. 중세 의사들은 별의 위치나 추위의 “영향”(influenza)을 받아 이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8세기 이탈리아에서부터 이 병을 인플루엔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세에 흑사병이 있었다면, 20세기에는 인플루엔자가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1918년 봄, 미국 캔자스의 미군 진영에서 인플루엔자의 최초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유럽으로 파병되었고, 그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인플루엔자는 그들과 함께 더욱더 강력해져 돌아왔다. 100여 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냈을까? ‘세균학의 아버지’인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의 제자인 리처드 파이퍼(Richard Pfeiffer)는 1892년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동안 환자의 폐와 가래에서 박테리아를 분리해냈다. 파이퍼는 그 박테리아가 인플루엔자의 원인이라고 믿었고, 사람들은 이를 “파이퍼 인플루엔자 바실러스(B. Influenzae)”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1918년 동일한 증상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이 닥쳤을 때, 과학계와 의학계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파이퍼의 의견을 수용했다. 물론 반대론자들도 있었다. 폐렴구균이나 연쇄상 구균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모든 인플루엔자 환자에게서 인플루엔자 바실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1919 년 미국 의학협회 저널 (JAMA)에 실린 논문에는 인플루엔자 바실러스는 독소를 만들어내며 이 독소는 필터를 통과할 수 있는 물질일 뿐 아니라, 토끼를 몇 시간 만에 사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소라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뉴욕시 보건국의 윌리엄 H. 파크 박사는 파이퍼의 인플루엔자 바실러스가 팬데믹 인플루엔자의 원인이라 확신하고 백신 개발에 착수한다.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 중이던 필라델피아의 폴 루이스 박사는 폐렴구균 백신에 인플루엔자 바실러스를 첨가하는 새로운 백신 개발을 시도했으며, 1918년 10월 19일 연쇄상구균, 폐렴구균, 인플루엔자 바실러스의 혼합 백신을 생산해 냈다. 그 후, 약 십만 명을 대상으로 여러 지역에서 임상실험이 시행되었으나 뚜렷한 백신의 효과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유는 팬데믹 인플루엔자는 인플루엔자 바실러스라는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를 사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이 전염병의 실체는 세계적으로 약 오천만 명이 사망한 팬데믹 종료 후 십수 년이 지난 1930년대가 되어서야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것임이 밝혀진다. 파이퍼의 인플루엔자 바실러스는 b 형 헤모필러스 인플루엔자, 즉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원인균이었다. 1918년 당시 박테리아로 알고 있었던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어떻게 밝혀지게 된 걸까? 1951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박사과정생이던 요한 훌틴은 1918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Brevig Mission으로 탐험을 나선다. 그가 알래스카로 간 이유는 1918년 당시 인플루엔자로 알래스카 이누이트 부족이 집단으로 사망하였고, 그들의 시신은 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층에 매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영구 동토층에 매장된 시신은 부패되지 않은 채 1918년 과거의 바이러스를 품고 있기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훌틴은 마을 장로들에게 허락을 받고 영구 동토층에 묻혀있던 소녀의 시신에서 폐조직 샘플을 채취한다. 그는 그 폐조직을 아이오와로 가져와 바이러스 분리를 위해 달걀에 주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1918년 유행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분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생명과학분야에서는 1970년대 후반이 돼서야 유전자 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훌틴은 46년이 지난 1997년 두 번째 탐험을 떠나게 된다. 당시 미군 병리학연구소의 Taubenberger 박사팀은 연구목적으로 보관 중이던 1918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미군의 페조직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RNA 추출에 성공했다. 그들은 1918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조각 중 3개의 단편 서열을 분석할 수 있었다. 훌틴은 이들과 함께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에 매장된 “루시”란 이름의 이누이트 여성의 폐조직과 연구를 위해 보존해 놓았던 전사 군인들의 폐조직에서 1918년 팬데믹을 일으켰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체를 분석해 냈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1918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것이 아닌 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사함을 밝혀냈고, 바이러스의 8개 조각의 전장 유전체를 밝혀내는 데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10년이란 세월이 더해졌다. 1918년 이후, 인류는 세 번의 다른 인플루엔자 유행과 마주했다. 1957년 조류 인플루엔자(H2N2)와 1968년 홍콩 인플루엔자 (H3N2)는 각각 약 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돼지독감 H1N1)는 약 25만 명이 사망했다. 유전적으로 다르지만 몇 번의 반복되는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인해 인류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고, 바이러스를 대항할 수 있고,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 우리는 적군을 안다. 우리의 적이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고, 의학적으로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며, 과학적으로는 감염환자가 발생하면 유전자 분석을 수일 내로 끝내고 전 세계와 공유하는 시대가 왔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글로벌 인플루엔자 감시 및 대응 시스템(GISRS)을 조직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함으로, 지구 공동체 내에서 세계 경제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의 코로나19를 이토록 혹독하게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피츠버그 대학의 바이러스 학자인 도널드 버크 박사는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에 대한 경고를 해왔다. 첫 번째는 인류 역사상 전 세계 유행을 일으킨 적인 있는 바이러스 종류(오르소믹소바이러스(인플루엔자), 레트로바이러스(에이즈)), 두 번째는 인간이 아닌 동물 집단에서 큰 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된 바이러스 (오르소믹소바이러스, 파라믹소바이러스(센드라, 니파), 코로나바이러스(사스, 메르스))이며, 마지막으로 내재적 진화 가능성 즉, 돌연변이로 인해 인간에게 신종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레트로바이러스, 오르소믹소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를 제시했다. 코로나 19의 등장과 버크 박사의 예상이 들어 맞은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은 세계적으로 군대의 이동과 동원으로 많은 이들이 과밀된 공간에서 생활했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군함의 경우는 켜켜이 쌓인 숙주가 어떻게 바이러스의 전파능을 높이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현재 우리는 밀폐된 공간과 밀집된 도시를 살아간다. 미국 최고 인구 도시 뉴욕이 중국의 확진자 수를 뛰어넘는 것은 숙주의 밀집된 환경이 바이러스의 서식의 최고의 환경임을 입증해 준다. 1차 세계대전엔 유럽 국가와 미국 외에도 남미,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참전을 하게 된다. 그들은 해로와 육로로 전 세계를 바이러스와 함께 누볐다. 글로벌 시대의 우리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항로와 육로로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1918년 의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 30% 넘는 의사가 전쟁에 참여했고, 민간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해 의대생까지 임시병원으로 나갔다. 전염병보다 만성질환 위주의 현대 의료 시스템은 전염병을 방어하는데 취약해졌다. 의학과 과학 발전을 위한 연구비는 전염병보다 만성질환과 노화를 대상으로 옮겨갔다. 100년이 지나 기술과 환경이 바뀌고 인류의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었다는 믿음은 발전된 인류에 의해서 이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전염병에 대한 방어체계는 인류의 착각이였다. 그 마저도 각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으로 인해 촘촘한 대응이 아닌 느슨한 각개전투가 되어 버렸다. 바이러스는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가 발전하고 살아가는 모양새가 바이러스에게 적합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CDC 산하 국립 면역 호흡기 질환 센터의 낸시 메소니에 국장은 미국의 코로나 사태 초기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는 전파가 일어날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언제 일어날 것인지가 문제이다.”이 말은 버크 박사가 언급한 모든 종류의 바이러스를 대입해 볼 수 있는 말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알지 못하나” 그들은 꼭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의학계, 과학계와 더불어 정치, 경제를 포함한 인류의 전반적인 부분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전염병에 대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0년 후의 인류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적과 계속 싸워야 할 터이니 말이다.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48&s_para4=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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