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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센스 앤 센서티비티 (3/3) - 존재와 부재/ 20.5 크로스로드


(일러스트레이션: 김민정)



정민기/ 영국 버밍엄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무(nothingness)는 존재(being)의 한 가운데 똬리를 틀고 있다.” - 쟝-폴 사르트르- 아침마다 들르던 학교 앞 까페에 아무도 없다. 단골이라며 이름을 불러주고, 가끔 공짜 커피를 내어주던 직원들도 없다. 학교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학생, 직원, 교수, 아무도 없다. 오리와 다람쥐, 이름 모르는 새들,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따라 고슴도치 등이 캠퍼스를 누빈다. 하지만, 의식 있는 존재, 사람이 없다. 이 부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존재감이 확실한 그것. 바이러스. 유난히 흐리고 비가 잦은 겨울이 3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대학은 문을 걸어 잠갔고, 며칠 뒤 나라 전역에 록다운이 선포되었다. 록다운과 함께 화창한 날씨가 찾아왔다. 영국답지 않게, 내리 지금껏 햇살 가득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재택근무 삼 주째에 들어서며 하릴없이 캠퍼스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바이러스는 1938년 전자현미경을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의사와 생물학자들은 이미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걸쳐 바이러스의 존재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론 크기의 박테리아와 다르게 거름 장치를 너끈히 통과하고, 현미경으로도 찾을 수 없으니, 갑갑한 노릇이었다. 전통적인, 그러니까 빛을 사용하는 ‘광학’현미경으로 구분할 수 있는 크기는 이론상 200나노미터 정도가 한계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등장은 이 한계를 무너뜨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계를 에둘러 갔다고 해야겠다. 방법은 빛이 아닌 다른 작은 입자, 특히 전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같은 작은 입자들은 빛처럼 파동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전압을 걸어 전자의 에너지를 높여주면 파장이 줄어들고, 그만큼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1930년대 독일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루스카(Ernst Ruska)는 가속된 전자의 짧은 파장을 이용한 현미경을 개발 중이었다. 전자현미경의 무한한 응용성을 꿰뚫어 본 건 의학을 공부한 동생헬무트(Helmut Ruska)였다. 그는 형이 만든 7나노미터 분해능의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인류 최초로 바이러스를 관찰하는 데 성공한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의대 인턴일 때 이야기다. 적어도 과학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건 관찰이다. 힉스 입자, 중력파, 블랙홀 등, 지난 몇 년 만 봐도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관찰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관찰을 통한 존재의 증명은 물리학자의 일상이다. 그런데, 물리학은 거꾸로 무언가의 부재를 증명하며 발전하기도 한다. 가을 학기에는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전도(superconductivity)’ 과목을 가르친다. 첫 수업의 제목은 ‘저항의 부재 (Resistance Zero)’. 1911년에 발표된 그래프 하나를 보여준다. 수은의 전기 저항을 온도에 따라 측정한 결과다. 온도를 낮추면 저항도 따라 줄어들다가, 절대온도 4.2도 부근에서 갑자기 0으로 뚝 떨어진다. 저항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온도를 더 낮춰도 저항은 계속 0으로 남아있다. 저항이 0이란 건 전도도(conductivity)가 무한이란 뜻이기에, 이 상태를 초전도라고 부른다. 온도를 내리면 전기 저항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저항은 전자들이 움직일 때 방해받는 정도를 나타낸다. 수은과 같은 금속 물질에서 가장 큰 방해 요소는 열적 요동에 따른 원자들의 무작위적인 떨림이다. 온도를 내린다는 건 열적 요동을 줄인다는 말이고, 따라서 저항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절대 온도 0도에 도달하기 전에 갑작스레 저항이 0으로 떨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직 열적 요동이 남아있을 텐데, 어떻게 저항이 0이 될 수 있을까. 실제 물질 속에는 다른 전자들이나 결함 같은 또 다른 방해 요소들도 많을 텐데. 혹시, 그저 너무 작은 값으로 줄어들어 0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대답은 단호하다. 저항은 완전히 0이다.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실험적으로 0을 측정한다는 게 가능한가. 무언가의 부재를 관찰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학생들이 물리적 사고와 실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갈 차례다. 보통 물리 실험실에는 전기 저항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인 옴미터(ohm meter) 또는 멀티미터(multimeter) 등이 굴러다닌다. 물질에 일정한 전류를 흘려보내고, 그때 생겨나는 전위차를 측정해서 저항을 구하는 방식이다. 전위차가 크면 저항이 크고, 전위차가 0이면 저항이 0이란 얘기다. 하지만 옴미터 내부 회로에도 저항이 들어있고, 측정할 수 있는 전위차에는 한계감도가 있다. 한계 감도 미만의 전위차는 0으로 인식된다. 이 경우 어떻게든 측정하는 저항값의 정밀도를 높이려면 전류를 키우면 된다. 하지만, 전류가 너무 크면 초전도 현상이 파괴된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전기 저항의 존재는 발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유물처럼 되어버린 따뜻한 백열전구처럼 말이다. 그런데, 저항이 작으면 발열도 적을 테니, 어지간히 전선을 길게 만들어도 효과를 확인하기 쉽진 않을 것이다. 둥그런 고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저항이 없는 고리에 전류를 흘리면, 전류는 영겁의 시간 동안 고리를 맴돌 테다. 하지만, 만약 아주 작은 저항이라도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전류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 테고, 이를 통해 저항값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싸한 이 방법은 두 가지 문제를 새로 안고 들어온다. 먼저,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 고리에 어떻게 전류를 집어넣을 것인가. 둘째로, 저항 없는 상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류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을까. 물리학 전공 학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아이디어를 낸다. 전자기 유도법칙을 사용해 보자고. 간단한 방법이다. 고리 근처에서 전자석을 이용해 자기장을 만들면, 고리에는 전류가 유도된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법이랄까. 두 번째 질문도 자기장으로 해결한다. 고리는 건드리지 않고 주변으로 자기장 세기를 측정하면 고리의 전류값과 그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실제로 자기장의 세기가 변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실험을 시작하고 무려 1년 넘게 지켜본 결과 (독한 사람들),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혀 자기장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를 전기 저항으로 환산하면, 10^-26 Ohm m 이하. 상온 구리 저항값의 백만 분의 백만 분의 백만 분의 일 보다 작은 값이다. 이 차이는 우리가 쉽게 구분하는 전도체와 절연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말하자면, 초전도체는 그저 훌륭한 전도체라기보다, 새로운 제3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초전도 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이해하는 게 남은 한 학기 수업시간 동안 하는 일이다. 저항의 부재는 초전도라는 새로운 존재를 드러내 보였다. 물리학에는 여러 의미의 부재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물질의 부재는 진공이란 이름으로 오랜 시간 물리학 연구의 대상이었다. 그 의미 또한 시간에 따라 바뀌었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은 백년, 이백 년 전 과학의 고요한 진공이 아니라, 양자 요동이란 활력이 들어차 있다. 존재와 부재를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은 시간이다. 인간에겐 어느 정도 영원성에 대한 집착 또는 동경이 있지 않을까. 쉴 새 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게 물리학자들이다. 원리, 법칙, 그리고 근본 물리 상수(fundamental physical constants). 그런데 또 물리학자들은 청개구리 같아서, 기껏 찾은 물리 상수들이 혹시 시간에 따른 변수는 아닌지 묻는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너무나도 천천히 변하기 때문에 우리가 상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현상의 부재, 물질의 부재, 시간과 변화의 부재, 차이의 부재. 이들의 연구가 현대 물리학을 가득 채운다.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던 길을 떠올려 본다. 동료 교수들의 연구실을 지난다. 외계 행성, 중력파, 암흑 물질, 중력 상수(G)와 미세구조 상수(fine-structure constant)의 변화, 전자의 전기쌍극자(electric dipole moment) 등 다들 희미한 존재, 또는 그것의 부재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다. 벌써 그리운 내 연구실 복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는 ‘정밀도(precision)’이다. 같은 층에 있는 교수들이 주로 이온 시계, 중력계, 원자 자력계 등 높은 정밀도를 추구하는 양자 센서(quantum sensor)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정밀도의 향상은 단순히 개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한 것만 돌이켜봐도 알 수 있듯이, 정밀도의 향상은 새로운 과학을 여는 탄탄한 길이다. 그리고, 존재와 부재 사이의 한 끗 차이를 가르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49&s_para4=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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