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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센스 앤 센서티비티 (2/3) – 세상과 나 사이의 물리학 / 20.3 크로스로드
정민기 / 영국 버밍엄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김민정) “인간은 세상 속에 있고, 세상 속에서만 자신을 알 수 있다.” -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현관문을 열고 발을 내딛던 퍼셀(E. Purcell)은 한동안 자리에 선 채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그 날 눈을 반긴 사람은 퍼셀뿐만이 아니었겠지만, 누구도 퍼셀처럼 벅찬 기분일 수는 없었다. 수북한 하얀 눈, 무수한 물 분자.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 그리고, 핵과 전자가 있다. 물질의 기본 요소를 찾는 인류의 긴 여정 속에서, 퍼셀은 이제 막 문 하나를 열어젖히고 나온 참이었다. 그에게 보이는 건 더 이상 그저 하얀 눈더미가 아니었다. 눈 속 무수히 많은 원자핵 하나하나가 팽이처럼 세차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원자핵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자석과도 같다는 걸 발견했다. 원자핵 자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미약한 지구 자기장을 중심으로 고요하게 돌고 도는 중이었다. 1945년, 하버드 대학이 있는 미국 동부 케임브리지의 겨울 어느 날이었다. 퍼셀은 핵자기공명법을 개발하여 물질 속 원자핵의 자기적 성질을 밝혀낸 인물이다. 원소마다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달라서, 드러나는 자기적 성질도 다르다. 따라서 핵의 자기적 성질을 측정하면 구성요소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리학은 주로 연구 대상을 중심으로 분야가 나뉜다. 우주, 별, 빛, 물질, 분자, 원자, 핵, 입자... 그런데 핵자기공명은 오늘날 핵물리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와 화학자가 제일 많이 연구한다. 실은 최근 일도 아니다. 퍼셀은 앞서 첫 실험에 성공하고 겨우 칠 년 뒤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당시 연설문에서 벌써 자신의 연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로 확장되는 것에 놀라워했다. 생물학자와 화학자는 핵자기공명을 통해 단백질 등의 분자 구조와 움직임을 알아낸다. 자세한 방법이야 복잡하지만, 간단한 비유를 들어볼 수 있다. 막대자석 여러 개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그 위에 넓고 얇은 판을 올려 시야에서 가려보자. 뒤따라온 사람이 판을 들추지 않고 자석들의 배치를 알아낼 수 있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판 위에 쇳가루를 뿌리면 된다. 쇳가루가 만들어내는 패턴은 판 아래 자석들의 배치에 따라 형성될 테니까. 핵자기공명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 속에 무수히 많은 원자핵을 쇳가루라 생각하고, 전자들을 막대자석이라 생각하면 된다. 전자는 원자핵보다 대략 천 배 가량 힘이 센 자석이다. 핵의 자기적 성질을 살피면, 주변 전자 자석들의 분포와 떨림을 재구성해 낼 수 있고, 원자 간 거리나 방향도 알아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 몸 속을 그려내는 것도 가능한데, 바로 자기공명영상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다. 정확하게는 앞에 핵(Nuclear)을 나타내는 ‘N’이 붙어 NMRI가 되어야 하지만, 일반인에게 괜한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빼고 사용한다. 말하자면, 원자핵은 물질이나 우리 몸 속에 자연적으로 심어진 자기장 센서다. 비록 사람은 직접 자기장을 느낄 수 없더라도, 우리는 그 정보를 시각화해서 알아‘본’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다른 이에게 설명해주면 그들은 알아‘들을’ 테다. 자기장처럼 오감의 영역 바깥에 놓인 물리량을 우리는 정보의 변환을 통해 오감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고 보면, 물리적 탐구는 꼭 대상을 향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세상을 마주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탐구의 대상이다. 다시 말해, 세상과 나 사이에도 물리학이 있다. 감각(senses)의 물리학이다. 퍼셀의 핵자기공명법 개발은 물리학을 통해 오감 너머의 새로운 감각기관을 얻은 예가 된다. 더불어 물리학은 인간의 오감을 강화해주며 문명의 발달을 도왔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하여 더 멀리 보고 더 작은 것을 보는 것은 타고난 인간의 시각 능력을 강화한 것이고, 물리학이 기여한 바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간 물리학이 한 일은 사뭇 결이 다르다. 시각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의미는 확장되고 변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에 섞여들었다. 확장 : 본다는 것은 물체에 반사된 빛을 감지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건 특정 파장 범위 내의 빛, 가시광선뿐이다. 과학은 적외선과 자외선, 엑스선과 감마선까지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게 해주었다. 덕분에 어두운 밤길을 훤히 본다던가, 물질의 화학구조를 보고, 몸 속을 들여다보고, 폭발하는 별을 보는 일 등이 가능해졌다. 변형 : 아무리 좋은 렌즈를 많이 조합하더라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작은 크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확대해서 보려는 대상은 빛 파장의 절반보다는 커야 한다. 하지만, 양자역학 덕분에 이 한계를 에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전자는 한편으론 작은 점과 같은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공간적으로 펼쳐진 빛이나 물결처럼 파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를 가속하여 에너지가 커지면 그만큼 짧은 파장을 가지게 되어서 더 작은 것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렌즈를 통해 빛의 진행 방향이 바뀌듯이 자석을 이용하면 전자가 움직이는 길을 바꿀 수 있다. 그렇게 광학현미경을 훌쩍 능가하는 전자현미경이 만들어졌다. 광학현미경은 물체에 반사된 빛을 모으지만, 전자현미경은 반사된 전자를 모아 이미지로 구성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빛으로만 사물을 보지 않는다. 섞임 : 상대적으로 최근 개발된 주사탐침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e; SPM)은 또 다른 방식으로 원자를 본다. 비유하자면 눈을 감고 한 손으로는 물체 표면을 훑어 만지고, 그 촉감을 바탕으로 다른 손으로는 펜을 쥐고 그림을 그려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주 얇게 가공된 탐침으로 보려는 물체 표면으로 좌우 위아래로 훑으면 탐침과 표면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탐침의 반응이 달라진다. 위치에 따른 탐침 반응을 기록하면 이미지로 재구성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만져-본’ 셈이다. 촉각을 통한 시각의 획득이고, 공감각의 실현이다.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물리학은 힘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종종 상호작용이란 관점에서 문제를 다룬다. 오감은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오감을 새롭게 정의하고, 없던 감각을 더해가는 일이 나와 세상 사이에 우주처럼 펼쳐있다. 글 서두의 일화는 퍼셀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게 아무래도 더 생생하게 느껴질까 싶어 아래에 가져와 봤다. “나는 그때의 경이로움과 희열을 아직 잊지 않았다. 미묘한 움직임은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모든 것들 속에 있었고, 그걸 찾으려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칠 년 전, 첫 실험이 있던 겨울날, 새로운 눈(eye)으로 눈(snow)을 바라보던 게 기억난다. 문간 주변으로 눈이 쌓여 있었다 - 지구 자기장 속에서 조용히 세차운동하는 양성자 더미라니. 세상을 잠시나마 풍요하고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발견에 따르곤 하는 개인적 보상이다.” 그가 느낀 경이와 희열은 어떻게 오감으로 환원될까. 글을 쓰는 지금, 영국의 겨울에는 (늘 그렇듯) 비가 내린다. 그래도 빗방울 속의 원자핵은 눈송이 속 원자핵과 다르지 않다. 퍼셀을 따라 잠시 새로운 눈으로 빗방울을 응시해본다. 조용히 그가 느꼈을 경이와 희열을 반추해 본다. 잘 안 된다. 퍼셀이 말했듯, 그건 아마도 최초 발견자에게만 주어지는, 공유될 수 없는, 개인적 보상이리라. 출처: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28&s_para1=174&Board=n9998&admin=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