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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빛으로 듣는 소리 / 19.10 크로스로드

고재현 / 한림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 김민정 작가님) 시각과 청각은 우리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활용하는 대표적인 감각들이다. 눈은 전자기파 중 가시광선을 활용해 대상의 밝기와 색상을 인지하고 귀는 일정한 주파수 대역의 음파를 감지해 소리를 내는 파원을 파악한다. 시각이 직접적인데 비해 소리는 직감적이다. 두 눈에 비치는 시각 정보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시야 속 대상들과의 거리감, 대상의 입체감을 확보할 수 있고, 두 귀에 들리는 소리의 차이를 통해 우리는 소리의 원천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파동의 일종인 소리, 즉 음파는 매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변위에 의해 생겨나는 압력의 주기적인 진동이 일정한 속도로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음파가 전달되는 매질은 공기나 물과 같은 유체일수도 있고 콘크리트와 같은 고체일 수도 있다. 다른 파동처럼 음파도 공간적 주기성과 시간적 주기성을 나타낸다. 공간적 주기성은 파장으로 표현되고 시간적 주기성은 주파수(혹은 진동수)로 드러난다.[1]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약 20~20000 Hz다. 이보다 낮은 주파수 영역의 음파는 초저주파(infrasound), 더 높은 주파수 영역의 음파는 초음파(ultrasound)라 부른다. 음파의 속도는 음파가 통과하는 매질의 밀도 및 이 매질의 변형에 대한 저항력과 관련된다. 매질이 변형된 후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힘이 클수록 음속도가 높다. 변형에 대한 저항력은 기체보다 액체, 액체보다 고체가 더 크기 때문에, 보통 이 순서대로 음속도가 증가한다. 공기 속에서 초속 343 미터 정도인 음파의 속도는 물에서는 초속 1482 미터, 고체인 철 속에서는 초속 약 6천 미터로 늘어난다.[2] 소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음향학(acoustics)이라 한다. 음향학에서 이루어지는 소리의 연구에는 매우 다양한 실험 방법이 사용된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빛을 이용해 소리를 듣는다. 시료에 쏘아준 레이저 빔과 음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물질 내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고체 결정(crystal)이 있다고 하자. 눈에는 가만히 있는 듯 보이나 고체 속 원자들은 제자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진동은 항상 존재할뿐더러 온도가 올라가면 진동의 폭이 더 커진다. 이 복잡한 진동 속에는 다양한 파장과 진동수로 진동하며 온갖 방향으로 진행하는 음파가 섞여 있다.[3] 이제 고체에 입사되는 빛의 입장에서 원자들의 진동을 보자. 만약 빛에 눈이 있어서 ‘푸리에(Fourier) 안경’이라 불리는 특수 안경을 쓰고 날아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푸리에 안경은 고체 속 복잡한 원자 진동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파장과 진동수의 음파를 일일이 구분해서 볼 수 있는 신기한 안경이다. (물론 진짜로 이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이 안경을 쓴 빛의 입장에서 고체 내부는 온갖 종류의, 즉 온갖 파장과 진동수를 가지고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음파와 각종 진동들이 뒤섞여 중첩되어 있는 혼잡한 세상이다. 신기한 현상은 빛이 특정한 음파를 만났을 경우에 발생한다.[4] 고체 내 음파, 특히 종파는 밀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소밀파에 해당된다.[5] 그리고 밀도가 바뀌면 굴절률도 주기적으로 달라진다. 음파가 진행하면 그에 발맞춰 움직이는 굴절률 격자가 생기는 것이다. 굴절률이 서로 다른 두 매질의 계면(가령 공기와 유리의 계면)에 입사된 빛의 일부가 반사되는 것처럼 음파의 밀도 변화에 의해 발생한 굴절률 격자도 각각 빛을 부분적으로 반사시킨다. 그런데 빛이 무엇인가? 빛은 서로 간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전자기 “파동”이다. 따라서 각 굴절률 격자에서 반사된 빛들이 만나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특정한 방향이 있다.[6] 이 굴절률 격자가 고체 속에 고정되어 정지해 있는 것이라면 각 격자에서 반사되어 보강간섭을 이룬 빛의 진동수는 입사되는 빛의 진동수와 달라질 이유가 없다. 즉 광자(photon)의 에너지에 변화가 없는 탄성 산란이 관측될 것이다. 그런데 굴절률 격자를 이루는 것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음파다! 빛을 보강간섭이 일어나는 특정 방향으로 반사시켜 쏘아주는 굴절률 격자가 움직이는 것은 빛을 방출하는 광원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움직이는 광원은 도플러 효과를 만든다. 광원이 다가오는 방향으로는 빛의 진동수가 늘어나고(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지는 방향으로는 빛의 진동수가 줄어든다(파장이 길어진다). 마찬가지로, 음파가 다가오느냐 멀어지느냐에 따라 보강간섭으로 산란된 빛의 진동수가 정확히 음파의 진동수만큼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고체에서 산란되어 나오는 빛이 고체 속 음파, 즉 소리의 주파수 정보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이 효과는 1922년 처음으로 이를 예측한 프랑스 물리학자 레옹 니콜라 브릴루앙(Léon Nicolas Brillouin, 1889-1969)의 이름을 따 ‘브릴루앙 산란(Brillouin scattering)’이라 불린다.[7] 이제 남은 일은 산란광의 스펙트럼을 측정해 음파의 진동수를 알아내는 일이다. 가시광선 레이저 빛의 주파수는 약 (4~7)ⅹ1014 Hz이다. 빛과 반응할 수 있는 고체 속 음파, 특히 종파의 진동수는 보통 수십 GHz(109 Hz)이다. 따라서 음파의 도플러 효과에 의해 일어나는 빛의 진동수의 변화율은 만 분의 일에서 십만 분의 일 정도다. 이 정도로 작은 진동수 변화는 분광기로 흔히 사용되는 프리즘이나 회절 격자로는 측정할 수 없다. 주파수 분해능이 훨씬 뛰어난 분광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보통 두 개의 거울이 마주보고 있는 파브리-페롯(Fabry-Perot) 간섭계를 활용한다.[8] 음속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음속도는 탄성계수(elastic constant)를 계산하기 위해 필요하다. 탄성계수는 비유하자면 고체가 가지는 스프링 상수와 같은 것으로서 원자들 사이의 힘이나 퍼텐셜(potential) 에너지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이는 물질의 근본적인 성질 중 하나로서 소자 응용에 있어서도 소중하게 활용되는 물성 정보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거미줄을 따라 이동하는 진동은 거미가 먹이를 탐지하거나 다른 거미와 소통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속도, 가령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 만드는 진동이 거미줄을 따라 이동하는 속도에 대해서는 최근에서야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거미줄처럼 가는 실 모양의 물체는 초음파법 등으로 음속도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최근에 브릴루앙 산란법을 이용해 거미줄 속 소리의 속도와 독립적인 모든 탄성계수를 성공적으로 측정했다.[9] 이런 정보는 거미줄과 같은 바이오 물질의 응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계적 성질을 알려 준다. 브릴루앙 산란이 적용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 구슬이 내는 음악이 있다. 구슬이 소리를 낸다는 건 뭘까?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구슬은 지구일 것이다.[10] 종을 치듯 지구를 울리면 지구는 떨면서 소리를 낼 것이다. 지구가 소리를 내는 경우는 진도 8이나 9의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 때다. 진앙에서 가까운 곳의 인류에게는 극단적인 공포의 순간이겠지만 지구물리학자들에게는 지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정한 굵기와 길이를 가진 현악기의 줄이 특정한 진동수(와 그 배수)의 소리만를 내는 것처럼 공과 같은 경계 조건을 가진 지구 역시 특정한 방식으로 진동하며 일정한 고유 진동수로 소리를 낸다. 가령 구의 형상이 타원 회전체로 변형되거나 북반구와 남반구의 회전 방향이 서로 반대인 비틀림 진동 등이 고유 진동의 몇 가지 예이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지구답게 지구라는 구슬이 내는 소리의 고유 진동수는 매우 낮아서 며칠 동안 느리게 진동이 지속되기도 한다.[11] 만약 구슬의 크기를 지구의 크기에서 점점 줄이면 어떻게 될까? 구슬의 직경을 수백 나노미터 정도로 줄이면 구슬이 내는 소리의 주파수는 수 GHz 정도로 올라간다. 이런 높은 주파수의 음악은 당연히 우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브릴루앙 산란으로 측정할 수 있는 산란광의 주파수 영역이 정확히 이곳이다. 나노 구슬이 내는 고유 진동수에 대한 이론적 계산은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졌지만 이를 브릴루앙 산란을 이용해 확인한 실험은 2003년도에 진행되었다.[12] 이는 나노 구슬이 내는 음악을 빛을 이용해 최초로 들었던(즉 분광기로 확인한) 실험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번개나 바람, 비가 내는 다양한 소리들은 공기와 물, 땅을 통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건물이나 다리와 같은 인공 구조물들도 자신들의 고유 진동수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물들이 내는 소리는 때로는 위협과 저항의 신호를, 때로는 사랑의 교감을 전달한다. 생명체들은 소리를 만들고 소리를 지각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고 이는 생명체의 번성을 불러왔다. 인간은 본인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대역을 넘어서 초저주파와 초음파 영역을 탐색해 자연의 비밀을 파헤쳐 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전자기파를 탐지할 과학적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시각의 한계를 탈피했듯이 말이다. 확장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곳에서 확장된 귀로는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울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브릴루앙 산란과 같은 빛의 도움으로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소리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학이 들려주는 자연의 음악에 함께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 귀로 직접 들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자연의 구조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이 거기에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읽을 거리] (1) [소리의 과학] (세스 S. 호로비츠 지음, 노태복 옮김, 에이도스) (2) [지상 최고의 사운드] (트레버 콕스 지음, 김아림 옮김, 세종서적) (3) 브릴루앙 산란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이 논문을 참조해도 좋다: 고재현, “브릴루앙 광산란 분광법을 이용한 응집물질의 탄성 특성 및 상전이 거동 연구”, 새물리 68권, 1~19쪽 (2018). (링크: http://www.npsm-kps.org/journal/view.html?uid=6429&vmd=Full) [1] 매질이 한번 진동하면서 나아가는 거리가 파장이고 매질이 1초에 진동하는 횟수가 주파수(=진동수)다. 파동의 속도는 파장을 주기(한 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로 나누어 구하는데, 이는 다시 파장과 주파수의 곱으로 표현된다. 이 글에서는 주파수와 진동수를 혼용할 것이다. [2] 공기와 물 속 음속도는 섭씨 20도, 해발 0 미터 기준의 값이다. 가장 단단한 물질에 속할 다이아몬드 내에서 특정 방향으로의 음속도는 무려 초속 19000 미터까지 올라간다. [3] 고체 내부의 양자화된 진동을 포논(phonon)이라 부른다. 포논에는 결정의 구성 단위인 기본 낱칸(primitive cell) 내 원자들이 동일한 위상으로 진동하는 음향 포논(이것이 음파에 해당된다)과 역위상으로 진동하는 광포논이 있다. 광포논을 측정하는 분광법이 라만(Raman) 분광법이다.   [4]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량 보존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은 빛과 음파의 상호작용에도 적용된다. 입사되는 빛(광자)의 운동량과 음파(음향 포논)의 운동량을 더하면 산란되는 빛의 운동량과 같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광자와 포논 사이의 충돌 전후 에너지의 총합은 보존되어야 한다. 특정 방향으로 입사되어 검출기가 놓인 특정 방향으로 산란되는 빛은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음파하고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푸리에 안경을 쓴 빛은 자기가 어떤 음파와 반응해야 하는지 잘 안다.   [5] 기체나 액체와 같은 유체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는 항상 종파로 자신을 나타낸다. 즉 매질(공기나 물)의 진동 방향과 파동이 전달되는 방향이 같다. 반면에 고체와 같이 구성 성분 사이의 상대적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종파뿐 아니라 횡파도 만들어 전달할 수 있다. 횡파는 음파의 진행방향에 대해 매질이 수직으로 진동하는 성질을 가지는데, 층밀림파(shear wave)라고도 불린다. 땅의 진동이 전달되는 지진파의 P파와 S파가 각각 종파 및 횡파에 해당한다. [6] 반사되는 두 빛 사이의 경로차이가 빛의 파장의 정수배가 되는 방향으로 보강간섭이 일어난다. 결정 구조의 분석에 사용되는 엑스선 회절에서 특정 각도로 회절 피크가 형성되는 것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7] 소련의 물리학자인 레오니트 이사코비치 만델시탐 (Leonid Isaakovich Mandelstam, 1879-1944)이 이 효과를 1918년 먼저 발견했지만 발표를 늦게 해 발견의 우선권을 놓쳤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이 효과를 브릴루앙-만델시탐 산란(Brillouin-Mandelstam scattering)이라 불러 만델시탐의 공헌을 인정하기도 한다. [8] 두 거울로 구성된 공진기의 구조 속에서 공진 조건을 정확히 만족하는 특정 파장만 통과시키는 간섭계이다. 거울 사이의 간격을 조절해 통과되는 파장을 변화시켜 분광기로 이용할 수 있다.  [9] https://www.nature.com/articles/nmat3549 [10] 물론 지구는 완벽한 구도 아니고 내핵과 외핵, 맨틀, 지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구보다 훨씬 복잡하다. [11] 이 링크에서 지구가 진동하는 고유한 형상(normal mode)들을 볼 수 있다. http://www.columbia.edu/itc/ldeo/mutter/jcm/Topic1/Topic1_12.html [12]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90.255502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77&s_para1=169&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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