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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물리학 벨 에포크 / 19.11 크로스로드

정민기 / 영국버밍엄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 김민정 작가님)  런던 시내 중심에 있는 다우닝(Downing) 거리 10번지. 차분한 외관의 검은색 벽돌 건물이 삼백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한 인물의 흉상이 보인다.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로서, 전기로 굴러가는 20세기 문명사회가 탄생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다. 건물은 지난 백여 년간 영국 총리가 집무를 보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패러데이 흉상은 1982년에 이곳으로 들어와서 십여 년간 방문객을 맞이했다.  누가, 하필 패러데이를 여기로 데려왔을까. 다름 아닌 당시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과학을 전공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영국 총리다. 옥스포드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회사에서 과학자로 일한 경력도 있다. 그에 걸맞게 80년대 후반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하던 최초의 행정 수반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패러데이 흉상은 총리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대화에 오르내렸다. 대처는 패러데이가 자신의 영웅이라 말했고, 이 전설적인 과학자가 더 널리 영국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기여했다. 덕분인지 패러데이는 탄생 이백 주년을 맞이해서 20파운드 지폐에 얼굴을 넣는 영광을 누린다. 그가 밀어낸 사람은 셰익스피어였다.  패러데이는 자신을 실험 철학자(experimental philosopher)라고 불렀다. 전자기 현상을 다루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공간을 채운 ‘장(field)’이란 개념을 고안했는데, 이는 전자기학뿐만 아니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도록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전자기 유도 법칙과 자기광학 현상을 발견해서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열었고, 모터와 발전기처럼 당장 실용적인 걸 발명하기도 했다. 화학 분야에서는 벤젠 같은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했을 뿐만 아니라, 전해질에 대한 이론을 성립해서 배터리의 기초를 닦았다. 염소와 암모니아 등 여러 기체를 액체로 만드는 데도 성공하는데, 이는 훗날 냉각 기술 개발의 단초를 제공한다. 전기 동력과 통신, 냉동 냉장 기술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패러데이가 아니었다면 20세기 문명은 사뭇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 대단한 과학자가 또 인기 만점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했다. 특히, 자신이 일하던 왕립연구원(Royal Institute)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 강연’ 시리즈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기였다고 한다. 단조롭게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강연이 아니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전자기 현상이나 화학 반응 등을 눈앞에서 직접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강연 중 하나를 책으로 엮은 ‘양초의 화학적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읽히고 있다. 그는 1827년부터 1860년까지 열아홉 차례에 걸쳐 크리스마스 강연을 했는데, 전통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매년 세계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이 초대받아 패러데이가 강연했던 바로 그 공간, 그 자리에 서는 영광을 누린다. 더불어 매년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대중과 과학을 소통하는 데 뛰어난 역할을 한 과학자에게 ‘마이클 패러데이 상’을 수여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린다.  패러데이는 본인이 직접 실험하고 연구하는 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그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대중과 소통했던 까닭은 얼마간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제본공의 조수로 일하며 십 대 시절을 보내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런던에서 열리는 이런저런 과학 강연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중엔 험프리 데이비 경(Sir Humphry Davy)의 강연도 있었다. 훗날 패러데이에게 과학자의 길을 열어준 인물이다. 패러데이는 주변의 독려에 힘입어 강연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데이비에게 보낸다. 아무런 수학과 과학 교육을 받지 못했던 가난한 소년이 당대 최고의 화학자이자 왕립연구원 교수였던 데이비의 따뜻하고 호의에 찬 답장을 받은 게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패러데이가 남긴 말 중에서 지금껏 회자되는 것도 있다. 1850년, 전기라는 게 아직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무렵이다. 영국 재무상이 패러데이에게 물었다. 전기가 어디든 쓸모가 있는 것인지. 패러데이는 ‘곧 전기에 세금을 매기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실 패러데이가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사람들이 순수 과학의 쓸모를 따져 물을 때, 보채지 말라는 취지로 인용되곤 하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 말이 소비되는 모습에 종종 아쉬움이 든다. 패러데이는 연구실에 처박혀서 자신의 지적 호기심만 좇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국가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예를 들어, 1846년 95명의 사망자를 낸 광산 폭발 사건의 조사를 맡아서 석탄 먼지가 원인임을 밝혀냈다. 해상활동이 활발하던 당시에 안전한 선박 운항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등대의 기술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거나 개선 방안을 조언해주기도 했다. 또, 스완지 같은 도시의 산업공해를 조사하고, ‘더 타임즈’에 템즈 강의 오염에 대해 기고하기도 했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예를 들어,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기획에 참여했고,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해 여러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보존하는 일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패러데이는 과학의 가치를 순수한 지적 만족에 가두거나 막연하게 미래로 던져두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방법이 당장 도움이 될 일을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찾았다. 사실 그것이 자연 철학자 패러데이가 평생 몸담은 왕립연구소의 설립 취지이기도 했다.  패러데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인용되는 인물 중 하나가 페르미 연구소 초대 소장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박사다. 1969년, 그는 연구소 최초의 가속기 건설과 관련해 의회에서 증언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새로운 지식은 …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과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요.” 아름답고, 여운이 남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구만 쏙 뽑아서 가져다 쓴다면, 꼭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순수 문학, 예술, 철학, 음악, 이 모두가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데 기여하지만, 어느 것도 기초과학처럼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지 않기 때문이다. 윌슨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반부에 이런 말도 남겼다. “납세자의 돈을 쓸 때는 당장에 적절한 혜택을 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곤 빈민층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소수인종을 적극 고용하는 등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연구소의 노력에 대해 설파한다. 집요하고 합당하게 따져 묻는 상원의원과 차분하고 끈질기게 대답하는 윌슨 박사의 대화는 맥락을 따라 전문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  쓸모를 바라고 순수과학을 지원하면 안 된는 걸까. 그럼 왜 시와 그림 대신 과학을 지원해야 하는 걸까. 패러데이의 말을 가져다 쓰던, 윌슨의 말을 가져다 쓰던, 과학자는 정확하고 앞뒤가 맞게 과학의 가치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기초 물리학과 순수과학에 무지막지한 세금이 지원된 건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호황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몇 개 나라와 미국 정도다. 근대 과학이 탄생한 이후로만 고려해도, 아주 잠깐의 ‘좋았던 시절’이다. 어느 때보다 사회의 다양성과 지속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과학자의 수도 훨씬 늘어난 지금, 언제까지고 ‘그때 그 시절’만 소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좋든 싫든, 과학자는 과학의 가치를 매번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어디까지 과학을 지원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건 계속될 것이다. 누가 열 번을 물어보면, 과학자는 열 번 모두 성심껏 대답할 의무가 있다. 전문 지식을 앞세우며 한숨 쉬거나, 비꼬거나, 면박 주는 건 당연하게도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과학의 가치가 제대로 이해되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게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패러데이를 가진 영국에서 물리학은 한국과 다르다. 영국인에게 물리학은 ‘우리의 이야기’다. 고전 역학을 성립한 뉴턴, 전자기학을 완성한 패러데이와 맥스웰, 열역학의 기초를 닦은 켈빈 경 등 물리학의 거인들이 살던 집, 공부하고 연구했던 곳, 그들의 실험장치와 노트가 모두 지근거리에 남아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영광만 안고 사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노벨상이 수여된 힉스 입자, 위상물질, 그래핀 등의 발견도 영국이 고향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과학은 아직 ‘남의 이야기’다. 안타깝지만,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남의 이야기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우리가 남겨줄 게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과학 교과서에서, 그리고 박물관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찾을 일도 한동안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과학이 문화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과학을 우리 이야기로 만들 가치가 있을까. 늦어도 다음다음 세대에게는 과학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가 길을 닦아 놓아야 할까. 판단하는 건 납세자의 권리이고, 설득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다.  패러데이가 활동하던 시기는 영국이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아래 들어서며 산업, 과학, 문화, 경제 모든 면에서 전에 없던 대부흥을 누리던 때와 맞물린다. 새로운 지식, 특히 자연과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컸다. 더불어 가장 최신 과학이 생략 없이 대중에게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세계에서 제일 앞선 과학을 할 수 있었고, 역사에 남을 과학을 할 수 있던 시대였다. 과학을 직업으로 삼는 길이 처음 열리기도 했다. 패러데이는 운 좋게도 그 낭만의 시절을 오롯이 향유한 인물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에서 소설가 주인공은 밤마다 차를 얻어 타고 과거를 방문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멋모르고 처음 도착한 1920년대에서 그는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 등 동경하던 작가들을 만나 어울리는 호사를 누린다. 그런데 막상 그들 사이에서 만난 여인은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풍요한 ‘벨 에포크 (Belle Epoque; 아름답던 시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와 마차를 타고 벨 에포크에 도착한 주인공은 화려한 물랭 루즈에서 로트렉과 드가와 고갱을 만나 합석한다. 하지만 고갱은 자신들의 시대는 공허하며, 수백 년 전 르네상스야말로 황금시대라고 말해준다.  우리 시절의 과학도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게 기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다. 패러데이 시절이, 아니면 다른 어느 시절이든, 좋았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전인적 과학자로서의 활동과 역할 앞에서 누가 쉽게 떳떳할 수 있을까. 일단 연구실 한쪽 벽에 그의 초상화를 하나 걸어 두었다. 겸손한 과학자로 알려졌는데, 초상화와 독사진은 유난히도 많이 남겼더라.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86&s_para1=170&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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