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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창조여 잘 있거라, 『화석은 말한다』 / 20.2 크로스로드

박진영 / 서울대학교 『화석은 말한다 -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 (2019, 도널드 R. 프로세로 지음,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화석은 옛날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이 보존된 것이다. 그것은 뼈나 껍데기일 수도 있고, 발자국이나 똥일 수도 있다. 근데 이런 것들이 화석이 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대부분의 뼈와 껍데기는 화석이 되기도 전에 99퍼센트가 파괴된다. 퇴적물이 유해를 덮기도 전에 부패해 사라진다. 매몰되더라도 빗물이나 지하수에 의해 용해돼 버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생물 종(種)에 겨우 1퍼센트 정도만이 화석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화석이 남는다는 것, 진짜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도 박물관은 화석으로 넘쳐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하나만 하더라도 화석을 900만 개 넘게 소장하고 있다. 선진국만이 아니다. 케냐의 나이로비국립박물관(Nairobi National Museum)에 보관된 화석이 20만 개 정도다. 이 중 수천 개가 인류 화석이라고 한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과학자들 덕이다.  화석으로 알려진 생물 중에는 참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다. 약 3억7500만 년 전에 살았던 물고기 중에 틱타알릭(Tiktaalik)이란 종류가 있다. 물고기인데 고개를 들게끔 목뼈가 있다. 그리고 다리뼈와 발목도 있어서 팔굽혀펴기도 가능했다. 과학자들은 뭍으로 올라온 네발동물의 조상이 틱타알릭과 비슷했을 것으로 여긴다. 틱타알릭 외에도 다리 달린 물고기는 지금까지 10가지 정도가 보고됐다. 약 2억2000만 년 전에 살았던 오돈토켈리스(Odontochelys)라는 동물은 거북의 조상이다. 오늘날의 거북은 이빨이 없는 대신 날카로운 부리가 있다. 근데 오돈토켈리스는 후손들과 달리 주둥이 안에 작고 뾰족한 이빨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등딱지는 없지만 완벽한 배딱지를 갖추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오돈토켈리스를 통해 거북의 갑옷이 등보다는 배 쪽이 먼저 진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리 달린 고래도 있다. 약 4800만 년에서 400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로드호케투스(Rodhocetus)는 고래인데 긴 앞다리와 뒷다리가 있다. 놀랍게도 발굽도 있다. 로드호케투스 외에도 30여 가지나 되는 고래의 조상들이 화석으로 발견됐다. 오늘날 고래와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들의 발굽은 퇴화한다. 앞다리는 지느러미가 된다. 그리고 뒷다리는 사라진다. 이처럼 화석들은 마치 케케묵은 앨범에 꽂힌 옛날 사진들 같다. 모든 과거가 기록된 건 아니다. 근데 나열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준다. 화석은 진화가 일어났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아니 근데,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진화 자체가 과학자들이 지어낸 허구라고 한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생물을 신이 창조했다.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있었다고 믿는 건 덤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다. 21세기인데 18세기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창조론자들이다. 창조론자들이 믿는 ‘창조론’, 굉장히 뭔가 있어 보이는 과학용어 같다. 근데 사실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란 범주 안에 발가락도 못 담근다. 과학이라면 증거를 갖고 추론하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증거라고 내놓는 건 고작 오래된 베스트셀러인 경전뿐이다. 화석이나 DNA도 아니다. 게다가 논픽션도 아니다. 성경이나 코란을 과학적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면, 어릴 적 읽었던 도라에몽 만화책도 과학적 증거다. 근데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창조론을 믿겠다는 사람을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관상이나 별자리 운세, 혈액형 성격 분석 등을 믿는 사람도 많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빼 먹으면 섭섭하다. 믿고 싶은 걸 믿는 거야 인간의 자유다. 근데 남을 슬슬 귀찮게 하기 시작하면 이건 문제다. 창조론자들은 미국에서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빼자는 청원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 보낸 적이 있다. 물론 이 모든 싸움에서 창조론자들의 뜻대로 이뤄진 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시비를 건다. 딴 건 몰라도 도전정신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손해 보는 건 진짜 과학자들뿐이다. 연구에 몰두해도 모자를 아까운 시간을 창조론자들 때문에 매번 뺏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이 맞았다.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도널드 프로세로(Donald Prothero) 박사의 책 『화석은 말한다』는 진화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화석 증거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창조론자들의 거짓말과 자연사 왜곡을 폭로한다. 동료 과학자들을 위해 총대를 멘 셈인데, 그가 있기에 학계는 든든하다. 프로세로 박사는 화석을 연구하는 분야인 고생물학계의 그야말로 대부다. 그는 방산충(Radiolaria)이라 불리는 아주 조그만 플랑크톤부터 도마뱀, 발굽동물 등의 다양한 화석들을 연구했다. 30여 권의 책과 250편이 넘는 논문도 썼다. 고생물학자가 평균적으로 1년에 논문을 한 편 정도만 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거다. 이 책은 확실히 창조론을 저격하기 위해 쓰인 거다.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창조론자들의 주장들이 젠가처럼 무너진다. 하지만 단순히 창조론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지, 화석은 어떻게 연구되는지, 그리고 진화라는 게 어떤 방법으로 일어나는지를 쉽고 차근차근하게 설명해준다.   『화석은 말한다』의 하이라이트는 뒷부분이다. 근데 말이 뒷부분이지 책의 절반 이상이다. 무려 여기서 저자는 최초의 생명체부터 플랑크톤, 곤충, 공룡, 매너티 그리고 사람의 진화과정까지 샅샅이 다룬다. 진화를 입증하는 중간단계 화석들은 여기서 줄줄이 소개한다. 이들의 해부학적 특징들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화석이 발견된 배경과 학계에서의 검증 과정도 잘 정리했다. 저자는 어려운 용어를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닌 독자들에 대한 배려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인데, 이 책의 묘미는 중간 중간에 소개되는 저자의 경험담들이다. 토론회에서 창조론자를 무참하게 박살낸 사건, 친구가 자신의 졸업논문을 북북 찢어버린 일, 학부 시절 원시 말과 코뿔소의 이빨을 분류하느라 애먹은 얘기 등이 아주 짤막하게 나온다. 물론 포복절도할 얘기들은 아니다. 양념치킨을 먹다 느끼할 때쯤 입에 넣은 새콤달콤한 무절임 같은 뭐 그런 느낌이다. 사실 과학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직접 만나야 들을 수 있다. 아니, 직접 만나도 기회가 닿지 않으면 영영 들을 수가 없다. 난 프로세로 박사를 학회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다. 하지만 들은 거라곤 요즘 책 쓰느라 바쁘다는 얘기와 늦둥이 아들을 키우느라 요즘 힘들다는 얘기뿐이었다. 이번에 출간된 『화석은 말한다』는 초판이 아니다. 초판은 2007년에 나왔고 이번 건 개정판이다. 그동안 새로 밝혀진 연구 결과들과 중간화석들이 추가됐다. 그 결과 책은 100페이지나 늘었다.   후반부에는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의 반응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창조론자들이 이 책을 공격하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외면한 것이다. 창조론자들에게 화석을 직접 보여줘도 효과는 없다. 세뇌된 사람에게는 증거를 아무리 많이 보여줘 봐야 소용없다. 이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걸까?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창조론이 맞는 얘긴지 아닌지 확신을 못 가진 사람들, 또는 근본주의와 과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효과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이 책에 반응해줬다. 이런 식이면 창조론자들의 영향을 조금씩 지워나갈 수 있을 거다. 우리가 침팬지의 친척이라 해서 기분 나빠해도 상관없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사이가 좋을 순 없으니. 오히려 침팬지가 우릴 더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죄도 없는데 동물원에서 옥살이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든 싫든 진실은 변함없다. 그러려니 하고 어른이 되는 수밖에.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18&s_para1=173&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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