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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mirimlee

[Book Review] 곤충의 시간에서 별의 시간으로 / 20.5 크로스로드

김초엽/작가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2019,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올해 초에는 태국의 치앙마이에 머물렀다. 여행을 준비하며 상상한 치앙마이는 어디에나 초록빛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실외와 실내가 구분되지 않는 식물 인테리어로 싱그러운 느낌이 가득한 도시였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풀고 치앙마이 거리를 산책하면서, 상상했던 것보다도 이 도시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풍경은 햇살을 받아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도 더욱 아름답게 빛났고,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서 산뜻했다. 그런데 오기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인간에게 살기 좋은 곳은 다른 생물들에게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생물은 수많은 벌레들을 포함한다는 것. 치앙마이의 초록 무성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대부분 카운터나 테이블 한켠에 모기 기피 스프레이를 구비하고 있었다. 깜빡하고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으면, 삽시간에 모기와 이름모를 날벌레들에게 물어뜯기기 십상이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갈색의 윤기나는 벌레를 종종 마주치곤 했다. 사람과 식물을 무럭무럭 키우는 날씨는 벌레들도 무럭무럭 키운다. 부정하고 싶지만, 지구는 여지없이 곤충의 행성이다.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곤충이 있다. 아무리 집안 창문 틈새를 잘 틀어막고 방충망을 손보아도, 잊을만하면 어디선가 날개 달린 곤충들이 나타난다. 아름다운 숲과 강변, 바다에는 반드시 곤충 무리가 도사리고 있다. 곤충은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며, 놀라운 생존 전략으로 지구 곳곳을 지배한다. 찬란한 자연과 붕붕거리는 벌레들 사이에 원하는 것만 고를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사실은 그 아름다운 풍경조차 결국은 벌레들이 만들어 준 것임을 인정한다면, 이제 두렵고도 고마운 벌레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는 이상하고 독특한 곤충들의 생활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곤충의 해부학적 특성, 기상천외한 생식, 복잡하게 얽힌 먹이사슬, 곤충과 식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곤충이 맺어온 관계를 탐구한다. 또한 생태계의 죽은 생물들을 다시 생태 순환의 고리로 가져와 삶으로 되돌리는 ‘관리자’로서의 곤충을 살핀다. 인간은 곤충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산업의 원재료로 사용하고, 과학연구의 원천으로 삼는다. 꿀벌이 꽃잎을 인식하는 기제를 연구해 인간의 신경 질환에 대한 단서를 얻고, 생체모방 연구를 통해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낸다. 곤충이 지구 어디에서나 번식하고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놀라운 자연의 전략들은 인간에게도 창조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저자는 책 전반부에서 곤충이 자연과 문명에서 꼭 필요한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나가지만, 한편으로 우리 인간이 보기에 유용하거나 쓸모있지 않은 곤충들 역시 하나의 행성을 나누어 쓰는 종으로서의 충분한 존중을 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생태계는 믿을 수 없이 복잡하기에, 인간이 단지 특정한 생물들을 불쾌하게 여긴다는 이유로 종 다양성을 경시한다면 그 무관심의 결과는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인간에 의해 변형된 지구의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가 도래하면서 곤충들의 삶도 변해간다. 생물들의 서식처가 사라지고, 살충제들이 곤충을 죽이며, 토양의 성분이 변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들이 높아진다. 곤충의 개체수 감소나 멸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 결과는 대비하기 힘든 속도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를 지구라는 해먹에 비유한다. 이 세상이 실로 짠 해먹이라면, 지구의 모든 종과 그들의 삶이 이 직물의 일부이다. 그런데 곤충은 이 해먹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곤충이 멸종하거나 수가 줄어들도록 방치하는 것은 해먹의 실을 뽑고 구멍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구멍이 너무 커지면 해먹 위에서 우리가 누리는 평온도 끝이 나고 말 것이다. 지구가 곤충의 행성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들이 곤충을 포함한 수많은 종들이 함께 만들어 낸 이 행성 생태계에 우리의 삶을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한 곤충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세계는 작은 경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눈은 부족하다.” 『진리의 발견』 (2020, 마리아 포포바 지음, 다른)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은 지성의 역사이자 진리의 발견에 앞장섰던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탐구하는 전기(傳記)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과학자들만 등장하는 책은 아니다. 포포바는 이 책에서 요하네스 케플러, 마리아 미첼, 찰스 다윈, 마거릿 풀러와 레이철 카슨 등의 여러 인물들의 삶에서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아내 서로를 잇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나간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거나 성소수자이며 시대의 억압을 넘어섰다. 포포바는 그들의 예술, 과학, 공학의 성취와 더불어 개인적인 삶의 발자취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면밀하게 탐구되는 레이철 카슨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카슨은 환경학의 고전 『침묵의 봄』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해양생물학자다. 카슨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작가를 꿈꾸며 문학을 전공했지만, 매혹적인 생물학자 메리 스콧 스킹커 교수의 생물학 수업을 수강하면서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었다. 졸업하고 연구를 계속 하면서도 카슨은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과학과 문학의 접점을 곳곳에서 찾아낸다. 미국 정부의 어류및야생동물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카슨은 해양과학 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과학에 관한 글을 쓸 기회를 찾아낸다. 해양 라디오 프로그램의 원고, 잡지 칼럼 기고, 단행본 집필을 이어가며 카슨은 과학자와 작가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간다. 그의 과학 외의 또 다른 재능, 아름답고 시적인 언어로 자연을 탐구하는 재능은 조금씩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카슨은 바다 속 세계를 탐구한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출간하며 당대 최고의 과학작가 반열에 오르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한다. 카슨은 모든 생명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에 항상 관심이 많았다. 복잡한 바다의 생태를 관찰하던 그 시선은 점차 자연과 현대 기술이 맺는 관계의 어두운 측면으로도 향한다. 살충제 DDT의 부작용을 접한 카슨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카슨은 치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생태계와 종 다양성, 인체 신경계에 대한 이해없는 무분별한 살충제 화학전을 비판하고, 새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경고하는 책을 썼다. 새롭고 창의적인 대안을 찾자고 제안하는 카슨의 『침묵의 봄』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과학의 기반 위에 문학의 언어를 쌓아올려 지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었다. 평생 지구의 온갖 생명체들과 그 연결고리를 살폈던 카슨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던 시기에도 작은 생명체들을 관찰하며 삶과 죽음의 진실을 탐구했다. 카슨이 죽는 날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 도로시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그날 아침 도로시와 함께 제왕나비의 마지막 날갯짓을 보았던 순간이 언급되어 있다.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마지막 비행을 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슨과 도로시가 나비들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듯이, 카슨 역시 자신의 끝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나비들에게 배운 것이다. 포포바는 카슨에 대해 이렇게 쓴다. “카슨은 곤충의 시간과 별의 시간이 똑같은 시간의 연속체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야심은 너무도 큰 반면 한정된 시간을 배당받은 소멸하기 쉬운 존재로, 곤충의 시간과 별의 시간 사이 어딘가에서 곤충과 별의 은혜를 입으며 존재하고 있다. 곤충이 없는 세계는 별이 없는 세계만큼 어두울 것이며, 세계를 세계로 만드는 함께 나눌 우주먼지를 빼앗긴 세계일 것이다.” 그러니 작은 것의 경이를 발견하는 일은 온 우주의 경이를 발견하는 일과도 같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작고 큰 존재들에게 세계를 빚지며 살아가는 우주먼지다. 카슨의 깨달음대로, 아마도 곤충은 우리가 생각해온 것보다도 훨씬 위대한 존재들일 것이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54&s_para4=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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