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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Review] 우주를 상상으로 재조립하는 하드 SF, 『위대한 침묵』 / 20.7 크로스로드

김창규 / SF 작가


『위대한 침묵』 (2018, 해도연 지음, 그래비티 북스)

SF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그 넓이만큼이나 SF의 서브 장르와 작품 사이의 성격차가 크다보니, 장르 자체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각 작품이 담고 있는 감동과 재미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양상 또한 SF를 읽는 즐거움에서 큰 축을 담당하게 마련이다.

물론 독자가 살고 있는 시대 특성도 감동과 재미에 큰 영향을 준다. 성인이 되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목격했던 독자와 2020년 현재 갓 성인이 된 독자가 SF를 읽으며 기대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른바 ‘미래’ 기술이나 그 기술이 보편화된 앞날의 생활상을 읽는 것만으로도 장르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미래 전문가’나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근미래 발전상을 예측하고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지금, 문학 장르로 SF가 갖는 특징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SF 문학의 특징이란 무엇일까. 요약한다해도 모든 면을 다루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테고, 이 글의 목적 역시 그 점을 모조리 논하는 데에 있지는 않다. 대신 해도연 작가의 작품집 <위대한 침묵>에 실린 글들을 통해 SF 문학의 본질을 조금 엿볼 생각이다.


<위그드라실의 여신들>과 <위대한 침묵>


작품집에 실린 네 작품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위그드라실...>과 <위대한 침묵>은 한 무리를 이룬다. 두 작품은 나머지 두 글과 비교해 하드SF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것만으로도 같은 분류에 넣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결을 공유하고 있다.


물리와 화학. 이 두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는 (지금은 쓰지 않는) 교육과정 내 과목명을 떠올리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이 세계의 근본’이라는 관념부터 떠오른다. 우리는 우주 안에 살고 있는데, 그 우주를 탄생하게 하고 유지하는 법칙이 곧 물리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생명 작용 역시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물리와 화학작용을 벗어날 수 없다. 


<위그드라실...>과 <위대한 침묵>은 그처럼 세계를 관통하는 물리를 기반으로 삼아 각각 생명과 문명을 이야기한다. <위그드라실>은 인류가 연구 목적으로 태양계 외행성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에서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에는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예견했던 대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으며, 특수한 조건 때문에 발전 속도나 방향이 다른 여러 문명 사회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는 장례와 사후 세계라는 관념까지 갖춘 지성체, 즉 아스족의 사회도 있다. 이야기는 에우로파의 생태계를 현장에서 연구하는 무리아스 카오스 기지를 중심으로, 출생 환경이 상이한 지구인 세 사람의 판단과 행동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도입은 (본격적인 SF가 그렇듯) 배경 설명을 최대한 생략하고, 아스족의 존재와 의의, 에우로파 생태계에 북유럽 신화 속 고유명사가 할당된 이유를 암시하면서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지구에 발생한 위기 상황 때문에 에우로파 생태계와 그 안에 사는 지성체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 기지의 연구자들은 중의적으로 작품 제목과 직결되는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표제작인 <위대한 침묵> 또한 우주의 구조를 이야기 구조와 단단하게 결합해놓고 있다. 그 단단함이 너무 강해 내용 일부를 드러내지 않는 한 상세한 평을 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제목의 ‘침묵’은 페르미 역설과 직접 관련이 있다. 작품 속 미소공간과 중력파 통신은 인류를 다음 단계에 올려놓을 정도로 획기적인 발견이다. 핵심 인물들은 미소공간을 둘러싸고 저마다 일신을 보존하기 위해 두뇌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데, 사실 미소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미지의 통신문이야말로 처음부터 인류에게 그 싸움에서 현명하게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두 작품은 서사를 펼치는 방식뿐 아니라 시작부터 상당한 수준의 과학적 연상을 요구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과학 ‘지식’이 아니라 ‘연상’이라고 표현한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두 작품은 처음부터 하드SF임을 솔직하게 내보이면서 함의가 있는 고유명사나 과학 용어를 쏟아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기 때문에, 폭포처럼 떨어져내리는 진짜 과학 용어나 개념들도 결국은 지어낸 상상과 존재하지 않는 이론을 소개하기 위한 징검다리이다. 따라서 공식까지 검색하진 않더라도 각 용어의 정의와 의의 정도는 알아야 작가가 마련한 결말이 개연성이라는 틀에 맞춘 논리적인 도달점임을 알 수 있다. 


우주와 세계의 근본 원리를 마술사처럼 원하는 대로 주무른 덕분에 두 소설 모두 일상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하지만 일어날 수 있을 듯 보이는 거시적인 사건과 그에 따른 거대한 비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위그드라실...>과 <위대한 침묵>은 하드 SF를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욕심을 낼만한 지성 문명의 운명과 항성간 세계의 위기 이야기를 지극히 효율적으로 조형하고 있다. 


다만 구조가 유사하다보니 단점으로 볼만한 요소들도 비슷해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작품 속 세계의 크기를 극한까지 확장하는 하드SF의 경우, 인물이 설정의 광대함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거나 이론을 설명하고 기능을 다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약점이 두 작품에서도 완전히 가려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은 개인사 소개가 너무 절제된 나머지 중심 인물이 내리는 결정에 금세 공감하기 힘들다. 제목이 시사하는 인물의 중요도에 비추어보면 그 점이 더 눈에 띈다. <위대한 침묵>은 해답이 갖는 의미가 말 그대로 ‘위대’해 보이기 때문에 잊게 되지만, 책을 덮고 돌아서 곱씹는 순간 그 위대함에 매몰된 미후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다는 씁쓸함이 있다. 물론 작품 속 사건이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그만큼 강력하긴 하지만 말이다. 작품이 조금 길었더라면 그런 아쉬움을 보완하고 우주적 침묵의 무게감을 더 여유 있게 맛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세상을 위해>


하드 SF를 설계하는 해도연 작가의 실력을 듬뿍 맛보고 나면 이 작품이 기다린다. 앞선 두 작품이 쉽게 접할 일 없는 개념으로 하드SF의 본령을 한껏 과시했다면, <따뜻한 세상...>은 완전히 다른 높이에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 높이란 인공지능 비서다. 다른 행성의 지성체나 우주론보다는 훨씬 친근한 소재다. 원시적이기는 하나 이미 인공지능 비서라고 자처하는 제품들이 시중에 나와 있고, SF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SF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좋은 작가의 글이라면 그게 전부일 리는 없다. 이 작품도 그렇다. 


주인공의 인공지능 비서 ‘아가사’는 세상 어떤 인간보다 주인공을 잘 알고 있다. 주인공의 진심을 모르는 세상을 ‘아내’가 대표한다면 아가사는 그 반대편에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안다는 사실이 곧 내 편임을 뜻할까? 아날로그와 구시대 정서에 대한 단평이 1인칭 주인공의 입을 빌어 복선으로 주어지는 가운데, 불신과 신체적인 위협이 불거지면서 이른바 헐리우드식 긴장이 순서에 맞춰 다가온다. 불안과 위협의 진실이 계속 글의 후반으로 물러선다는 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작품집에 실린 두 하드SF의 무게감을 볼 때, 반전 역시 만만치 않으리라 추측할 수 있고, 그 추측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작가의 기획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따뜻한 세상...>은 속도감이나 반전의 성격을 놓고 볼 때 50분 짜리 단막극이나 100분 정도의 영화용 이야기로 안성맞춤이다. 쉬이 공감할 수 있는 중심인물의 일상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독자를 안내하는 구성도 친근함에 한몫한다. 내재된 경이감의 무게 또한 부담스럽지 않은 접근성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의 경향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오락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SF다.


그리고 <마리 엘리에스>가 있다.

이 작품을 앞에 두고는 필자의 개인 경험을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

SF 소설을 쓰려는 분께 작은 조언을 드릴 기회가 가끔 찾아온다. 그럴 때면 실로 다양한 배경과 사상을 가진 분들이 지은 글임에도 SF라는 장르를 의식한 나머지 우연 이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틀을 발견하곤 한다. SF 장르 자체가 유달리 소재와 아이디어로 규정된다는 빗나간 선입견 때문에 전형적인 소재를 정해진 대로 다루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좋은 작가와 습작하는 이의 다른 점을 정량적으로 계측하는 기준은 없다. 그 차이는 깃털 하나일 수도 있고 거대한 협곡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 마주치는 오해와 달리, 소재나 출발점만으로 좋은 작품이 결정되진 않는다는 점은 얘기할 수 있다. SF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마리 엘리에스>는 외형만 보면 정통 SF극뿐 아니라 국내에서 SF를 습작하는 이들이 종종 선택하는 상황과 모티프 위에서 펼쳐진다.  (<위대한 침묵>이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 <마리 엘리에스>에서 다시 영감을 얻은 이도 있었을 것이다)


출발점이 같은 여타 이야기들과 <마리 엘리에스>를 비교한 독자는 종착점조차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서도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 엘리에스>는 <따뜻한 세상을 위해>와 달리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모든 것이 실려있지 않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의 사고 흐름을 투명할 정도로 고르고 얇게 펴서 독자가 SF라는 장르를 잊어도 매 단락마다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도록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해도연 작가가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히 대함을 보여주는 예와도 같다. 다만 그 충실함이 독자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이 작품을 읽는 도중 작가가 필자와 같은 종류의, 충실함의 전투를 벌이는 사람임을 의식해버렸고, 독자의 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침묵>은 해도연 작가의 주특기와 분투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독자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본격 하드SF에서 시작해서 반전과 오락성을 거쳐 서정성이 그득한 SF까지 두루 맛볼 수 있다. 해도연 작가는 SF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고루 창작하고 있으니, 그 작품들 역시 이 책과 같은 눈높이로 지켜봐도 좋을 듯하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70&s_para1=178&s_para4=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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