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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신경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19.11 크로스로드

이은희 / 과학커뮤니케이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변화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 서구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과학적’ 담론 중 하나는 우생학(優生學)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설명한 환경에 적응한 변이들이 선택된다는 자연 선택의 개념을 바탕으로 허버트 스펜서가 제안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관점을 인간에게 적용시킨 개념이었다. 프랜시스 골턴에 의해 토대가 제시되었던 우생학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실질적 증거도 매우 부족하고 이론적 토대도 부실했으나, 당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매우 적합하여 삽시간에 유럽과 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우생학은 훗날 과학이라는 근대적 권위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한 대표적인 사회적 선동이며, 과학적 ‘가설’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때 얼마나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인류 최악의 그림자로 남았다. (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 김호연 지음, 아침이슬, 2009 참조)

 근대 이후, 우리는 ‘과학’ 혹은 ‘과학적’이라는 것을 근거로 삼아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많은 움직임을 경험했다. 종교가 차지하고 있던 절대적 신뢰의 근거가 약해지고, 신분제 질서와 기존의 가치관들이 무너지는 와중에서 늘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과학과 과학적 규칙이 기존에는 설명할 수 없던 몇몇을 명쾌하게 설명해내는 데 성공하면서 과학과 과학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맹신’의 대상이 되는 우를 종종 범해왔다. 물론 과학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정통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증명된 사실만큼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방법론의 정통성을 비껴갔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라는 단어가 지닌 권위에 기대 특정한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그렇다고 믿는-혹은 믿고자 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의도적으로 이용할 때 발생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이 종종 그다지 악한 의도가 아닌, 심지어는 선한 의도로 사용할 때 역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신경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힐러리 로즈 & 스티븐 로즈 지음, 김동광 옮김 이상북스, 2019) 의 물음표는 다소 묵직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영혼이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영혼을 담는 그릇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 인간의 의식과 정신과 마음이 뇌라는 1.4kg의 말랑한 덩어리에서 유발됨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는 정말로 이 덩어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뇌에 대해서 아는 초기의 지식들은 그 뇌의 주인공들에게는 정말로 불행한 사고의 덕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끊임없이 이어지던 전쟁은, 학자들에게 끊임없이 ‘파괴된 젊은 뇌’의 표본을 제공했고, 이로 인해 학자들은 뇌의 영역과 기능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마치 탐험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여 지도의 빈 곳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듯이. 이와 동시대에 파블로프와 스키너에 의해 실시된 행동주의 실험들의 결과들은 이 뇌에서 출력되는 행동들의 원인을 설명하는 틀을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뇌는 감각기관의 입력을 받아 행동이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일종의 함수이며, 각각의 함수마다 정해진 기능이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우리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뇌의 구석구석의 퍼즐들을 감각, 기억, 연산, 감정, 언어, 운동 조절 등의 기능과 연결하는 1:1 매칭 게임이라 생각되었다. 이는 미지수는 다소 많기는 하지만 입력과 출력 사이에 대응이 가능한 함수로 뇌를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려면 그만큼 많은 함수를 구동시킬 자원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뇌의 크기와 위치가 중요해진다. 19세기 말, 뇌의 용적과 두개골의 융기를 자세히 파악하려는 골상학이 등장한 건 어쩌면 당연한 사고의 흐름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구의 폭이 넓어질수록 뇌의 기능이 1:1 대응 함수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의 크기와 두개골의 생김새는 지능과 성격과 행동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과학자들은 뇌의 영역은 확고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혹은 상당한- 가소성이 존재하며 뉴런들의 시냅스 형성이 중요할 수 있다는 발견들을 속속 해냈다. 프랜시스 크릭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뉴런 덩어리’였으나, 중요한 건 그 뉴런 자체라기보다는 뉴런과 뉴런이 형성하는 시냅스와 네트워크의 구조, 그리고 그들을 연계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만들어지면서, 시냅스의 개수가 중요해졌다. 삼아한 아인슈타인의 뇌를 몰래 훔쳐낸 병리학자가 그의 뇌는 평균적인 사람보다 가벼웠으나, 두정엽 부근에 시냅스 개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았다는 결과(사실 이 주장의 진위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를 발표하고, 뇌의 상당 부분을 잃었음에도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10% 이론’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뒤이어 특정 시냅스들을 활성화 혹은 불활성화시키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들이 발견되었고, 이들의 조절에 따라 감정과 성격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어쩌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단일하게 응축된 것이 아니라 뉴런들의 시냅스 어딘가의 노드들에 흩어져 있으며, 그들의 관계를 분자 단위로 파악하면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이 책이 기존에 나왔던 수많은 신경과학책과의 차별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에 대중서로 나왔던 신경과학책들이 벽돌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자랑한 것과는 달리 이 책의 볼륨감은 매우 가볍다. 그러나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동안 우리가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번도 이렇게 묻지 않았다고 말이다. ‘뇌의 작동 과정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가치관에 적용시키는 방법이 과연 적합했는가?’라고.  뇌와 신경계는 위장과 소화계, 심장과 순환계처럼 우리 몸을 이루는 대표 장기이자 기관계이지만, 그 작동의 결과는 음식을 잘게 쪼개 흡수시키고 혈액을 통해 물질을 순환시키는 생리적인 기능을 넘어선다. 뇌의 프로세스는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그 인간들이 구성하는 사회적 흐름과 방향성과 가치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뇌의 기능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사회는 이를 이용해 개인과 집단의 행동 양식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이론의 발견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 적절한 보상과 처벌을 통한 학습화가 중요하다는 교육 이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해리 할로우 박사의 원숭이 실험은 애착 이론으로 발전하여 육체적으로 학대하지 않더라도 방임과 무관심이 아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일 수 있음을 알렸다. 이 실험의 결과가 사회에 준 충격은 엄청나서 긍정적으로는 정서적 학대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주 양육자-주로 어머니-와의 애착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모성 신화가 부풀려지고 소위 ‘냉장고 엄마’에 대한 비난을 증폭시키는 일종의 트리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뇌 활성화 정도를 실시간으로 찍을 수 있는 fMRI 기법이 발달하자 이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뇌는 생후 3년 안에 기본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1001일 이론’이 등장하며 유아에 대한 조기교육의 열풍이 엄청나게 휘몰아쳤고, 10대들의 뇌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결과로 인해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연령 구분-십대(teenager, 13~19tp)와 프리틴(pre-teeen,10~12세)-이 마치 인생에서 선이라도 그어지는 양 분명해지면서 이 시기의 아이들을 인간 종족이 아니라 마치 외계인을 대하는 태도로 구분지어 바라보는 시선도 강해졌다. 또한, 신경전달물질이 속속 동정 되면서, 인간의 정서적 변화와 심리적 상태 역시도 각종 향정신성 약물들로 조절해야만 하는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대응들은 많은 경우 적절했고, 이로 인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새롭게 이해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많은 경우, 특정한 신경학적 연구 결과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지나치게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를 독립적인 의식을 지닌 주체로 파악하지 않고, 그저 뉴런으로 이루어진 동일한 기계장치처럼 바라보며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신경 ‘과학’의 결과를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연결시키는 지점에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없는가, 라고 말이다.  ‘신경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렇다’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변화의 유무보다는 그것이 지닌 방향성과 속도일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발전적일까 파괴적일까, 급격할까 지난할까. 그렇기에 신경과학이라는 미지의 지식을 우리의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논의와 신중한 행보가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놓고 그 결과를 모두 독자에게만 던져놓은 듯해서다. 독자들이 조금 더 마음의 결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실마리가 될만한 것들을 제시해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연세대에서 생물학을 배웠고 고려대에서 과학언론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과학 대중서를 쓰고 과학 강연을 하며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살고 있다.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487&s_para1=170&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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