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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Plaza] 과학 연극 '게놈익스프레스'를 제작하면서 / 20.7 크로스로드

정기영 / 바람의길과학 대표


과학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

나는 과학을 연구자나 학생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파는 일을 한다. 그래서 과학 안에서 무엇을 꺼내서 어떤 포장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소극장 연극을 좋아한다. 많이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연 볼 일이 있으면 소극장 연극을 택하는 편이다. 소극장 연극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파닥거리는 연기이다. 그 생생한 느낌이 좋다. 그 중에 두 사건의 공통점이 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연극 <코펜하겐>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연극의 대단함이야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으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이 연극의 애호가들이 꽤 있으니 아마 또 상연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때 꼭 보기를 바란다. 나는 연극 <코펜하겐>을 2009년과 2016년 두 번을 보았다. 이 연극은 연극의 완성도와 과학에서의 중요한 사건과 고민이 함께 담겨있는 작품이었고,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2018년 여름 나는, 내 연극의 원작이 되는 조진호 작가님의 그래픽노블 <게놈익스프레스>를 보았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바로 <코펜하겐>의 인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연극 무대에 올려진 <게놈익스프레스>를 상상하면서 읽었다. 나는 그냥 소극장 연극 애호가일 뿐이니, 그렇게 감명을 받고 마는 듯 했는데, 가을에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새로운 사업이 공고되었다. 이 사업은 과학문화 상품을 만들라는 것이었고, 선택지에 ‘연극’도 있었다. 우와~ 나에게 연극을 만들게 하려는 어떤 계시(?) 같은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도 했다. 나는 꽤나 무책임하고 저돌적인 편인데, 이 덕분에 이 공고를 보자마자 연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진호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연극을 만들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연극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전화해서 대본을 쓸 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연결된 분이 연출과 각색을 맡은 전혜윤 선생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무슨 생각으로 수락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해에는 준비시간이 너무 짧아서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 각색에 대한 논의를 했다. 다행히 우리 연출님은 생물학과 연극을 복수전공을 했다. 대한민국에 딱 한 명 있을 법한 이 분을 만난 덕분에 만날 때마다 구체화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우리는 준비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극을 쓰는 고통은 난 경험하지 않았으니 쉽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별 어려움 없이 준비를 했고, 이듬해에 다시 사업이 공고되어 지원을 했고, 그렇게 선정이 되었다. 이 과정을 이렇게 간단하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큰 우여곡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떨어질 수도 있는 이 연극을 이렇게 덜컥 붙고 나니, 이때부터 겁이 났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애호가 입장으로 연극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때문인지 선정이 되고 나서 두 달 동안 거의 한 일이 없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갑자기 급해지기 시작했다. 연출은 그 사이 배우와 스텝진들을 섭외해 왔고, 나는 갑자기 표준계약서를 뒤지면서 저작권과 계약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저 돈을 주고받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외에 계약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극장도 계약하고, 연습실도 구하고 하면서 시간이 흘러, 드디어 배우들은 연습에 들어갔고, 나는 이 전의 두려움은 잊은 채 일이 진행되는 것에 그저 신났을 뿐이었다. 


연습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다시 고비가 왔다. 내 손에서 시작된 연극이 점점 내 손을 떠나고 있었다. 사실은 각색이 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극적 완성도와 과학적 진실 사이에서 우리는 여러 번 논쟁을 했고, 과학적 진실을 주장하다가 극이 와해될 것이라는 경고도 들으면서 조금은 깊은 수렁에 빠졌다. 며칠간의 고민을 끝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처음부터 연출과 배우를 믿고 시작한 일이니, 연극의 내용에 대해서는 손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적으로 내용이 틀리다면 비판을 겸허히 들으면 될 일이다. 첫 술에 배 부르려 하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마음은 많이 불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코로나19가 창궐한 와중에도 연극은 진행되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다른 대학로 연극들이 점점 관객이 들지 않고, 이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그 책임을 내가 다 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된지도 모르게, 연극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들었고, 많은 호평을 들을 수 있었고, 천운(?)으로 연극이 상연하는 동안 마지막 3일은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기도 했다. 종교를 믿는다면 감사기도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호재가 작동했다. 


나는 이 연극에 제작자 일을 했다. 그러면서 연극을 제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참 고민했다. 제작비를 구했으니 제작자라고는 하지만, 제작이 무엇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더구나 내 손을 떠나가는 연극의 제작자라 생각하니, 그저 제작자는 돈을 구해오고 돈을 집행하는 심부름꾼일 뿐인가 하고, 좌절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연극이 잘 상연되고, 칭찬을 들으면서 내가 뭔가 하기는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고민한 제작이라는 것을 정리해보겠다. 아마 제작의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그저 내가 이해한 정리일 뿐이리라. 


연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크게 연출과 제작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연출가는 무대 안의 일을 맡는 사람이고, 제작자는 무대 밖을 맡은 사람이다.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무대 밖에서 무대 안으로 들어가야 하니 제작자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 무대 세트도 제작자를 통과하고, 무대 효과도 제작자를 통과하지만, 무대 안으로 들어가면, 제작자는 손을 떼어야 한다. 여기서는 무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오롯이 이 연극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무대 밖에는 관객석도 있다. 홍보를 통해 자리를 채우는 일도 제작자가 할 일이고, 무대 밖에서 연극의 이미지를 챙기는 일도 제작자가 할 일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무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연극을 만들어내고 이 연극이 완성되어 밖으로 표현될 때도 제작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각 역할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일도 제작자의 할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썼던 계약서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극 한 편에는 원작 스토리의 저작권도 있고, 각색과 연출의 저작권도 있다. 무대 디자인과 조명을 비롯한 무대효과, 음악, 영상의 저작권도 있을뿐더러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도 저작권이 있다. 이들의 저작권과 초상권 계약을 통해서 연극을 이어나갈 책임도, 아무도 피해를 받지 않게 관리해야 할 책임도 제작자에게 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과학문화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손을 뗀 이후로 연극은 다행히도 우려했던 점들이 많이 정리되었다. 과학의 내용을 다 알지 못했지만, 오랜 경험이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도 연구도 삶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과학에서 알게 된 것들을 표현하는 문화양식에는 기존 모든 문화양식이 다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과학문화운동을 하는 동안 이 문화양식은 얼마나 고민되었을까? 과학 대중화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장르가 그러하듯이 본격적으로 문화양식 안으로 들어갈 고민까지 했었던가. 대중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과학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과학을 표현할 수 있는 저 유구하고 엄정한 양식들에 대한 이해도 충분할 때, 과학문화는 외연을 확장하고, 내연을 깊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연극을 하면서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과학에는 과학지식과 철학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실패한 개념들과 실패한 과학자들, 그리고 성공한 과학자들의 실패한 경험들이 있다. 또 과학자들의 캐릭터와 삶이 있고, 우여곡절이 있다. 그 경험은 통찰을 주기 때문에 마냥 실패라고도 할 수 없고, 그 과정을 통해서 실제로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었다. 이 실패에 대한 것은 내가 기획을 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 했던 원작의 내용을 각색에서 살려주었기에 가능했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과학과 연구도 삶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고, 다른 분야의 오랜 경험들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과학과 연극(또는 문화)의, 먼 스펙트럼 사이에서 보자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할 까 두렵기도 하다. 연극을 겨우 한 번 했지만, 실험실에서 겪어왔던 그 많은 경험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연히 연극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도 호평을 받았으니, 이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다. 다시 연극을 만들고 싶다. 어떠한 과학지식을 이해하거나 말거나,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연극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관객들에게 해석의 자유를 열어주는 연극이면 좋겠고, 답을 주는 것이 아닌, 질문을 던져주는 예술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들이 과학적 탐구과정의 여로와 어우러져서, 서로 논쟁하면서 더 풍성한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코로나19 때문에 쉬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66&s_para1=178&s_para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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