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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Plaza] 과학은 교양이다 / 20.3 크로스로드

김응빈 / 연세대학교

 현대인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 유래한 기술 덕분이다. 이제는 과학기술들이 급속도로 서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과학기술시스템을 이루고, 나날이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그것의 힘은 이미 우리의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고, 훨씬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다. 그런데 막상 과학이 무어냐고 물으면,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내용을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시험(입시) 준비를 위해 이런 저런 공식을 외우고 단편 지식을 암기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시험은 과학의 기본인 논리적 사고력 보다는 지식의 양을 주로 평가한다. 이마저도 인문사회계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은 더 이상 접하기 힘들며, 보통은 과학이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과학과 담을 쌓아 버린다. 정작 과학의 진수는 맛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과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이른다.” ‘진리나 법칙의 발견’이 심오한 학문적 탐구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과학이다. 과학이 알고 있는 사실에 근거해서 어떤 현상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듯이, 우리도 가용한 정보를 최대한 동원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학의 시대인 만큼 현실의 많은 문제가 과학과 관련된다. 바꾸어 말하면, 과학적 지식과 사고력이 문제 해결의 핵심 열쇠라는 얘기다. 당장 ‘생활 속 과학’을 통해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과학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 막연한 기대나 공포에 휘둘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슈퍼박테리아’ 문제를 살펴보자.  슈퍼박테리아란,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박테리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런 병원균에 감염되면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치료는 별로 없다. 도대체 세균은 어떻게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될까?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항생제는 일종의 질병이다. 이전에 접한 적이 없는 항생제와 만나면 세균 대부분은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나 개중에 살아남는 세균이 있다. 돌연변이로 생긴 항생제 내성 유전자 덕분이다. 어떤 개체의 유전자(정확히 DNA 염기 서열)가 변한 것을 말하는 돌연변이는 말 그대로 돌연히(우연히) 생기는 변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내성 유전자는 대물림되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간다. 단세포인 세균은 자라서 적당한 크기가 되면 둘로 나뉘며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가령 대장균은 최적 환경에서 약 20분마다 한 번씩 세포 분열을 하고, 그때마다 개체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 하루가 지나면, 항생제 내성 대장균 한 마리가 272마리, 곧 47해 2236경 6482조 8696억 5000만 마리로 이루어진 큰 무리가 된다.  돌연변이와 세균의 성장 특성에 대한 간단한 이해에 논리적 사고를 더하면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항생제는 내성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그 돌연변이를 지닌 세균이 선택되어 번성하게 하는 환경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항생제 내성 세균이 나타날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이러한 세균이 번성하기 유리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대한감염학회를 중심으로 항생제 올바로 쓰기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과학적 이해에 기반한 국민 참여 운동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비누칠 손 씻기는 손쉽게 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개인위생 방법이다. 그런데 종종 보는 99.9% 살균 효과 같은 홍보성 주장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효과는 일반적인 사용 조건에서는 거의 도달할 수 없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비누의 기능은 미생물을 화학적으로 죽이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때’라고 부르는 물질은 죽은 피부 세포 및 분비물과 먼지, 미생물 따위가 뒤섞인 것이다. 비누는 거품을 일으켜 때를 잘 씻어낸다. 이것만으로도 비누는 충분히 좋은 항미생물제이다. 다양한 개인위생과 세제에 첨가하는 항균물질도 항생제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과도하게 사용하면 내성 세균이 선택되어 번성케 하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과학적으로 일상적인 손 씻기와 청소는 보통 세제로 충분하다. 과학적이란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는 과학 지식이 지니는 높은 객관성과 보편성이 큰 몫을 한다. 이런 속성은 과학의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다. 우선 과학에서는 증거가 없으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험과 관찰은 모두 이런 증거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자는 가설을 세운다. 가설 설정 과정에는 논리뿐만 아니라 상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과학이론은 가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 과학자의 주요 업무이다.  가설의 설정과 검증 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 논리 체계가 쓰인다. 17세기 과학혁명이 시작될 무렵 영국 철학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귀납법’이라는 새로운 논리 체계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방법이 기존의 삼단논법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연역적 논리 전개를 따르는 삼단논법은 두 진술을 합쳐서 결론을 내린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베이컨은 사람이다”라는 진술에서 “베이컨 역시 죽는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진술들이 옳으면 연역법은 형식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제가 오류일 경우 내용상 거짓 추론이 되고 만다. 게다가 대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기에 지식의 확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베이컨이 귀납법을 제안했던 것이다.  귀납법에서 중요한 건 경험으로 수집된 증거를 통한 지식의 확장이다. 수많은 증거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것이다. 물론 귀납법에도 허점이 있다. 아무리 많은 증거들로 쌓아 올린 보편 법칙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반례로 인해 단숨에 무너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컨이라면 모든 백조는 희다고 선언했을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발견된 백조는 모두 하얬을 테니까. 하지만 그 즈음 발견된 호주에 가보았다면 검은 백조도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오늘날 검은 백조, '블랙 스완(black swan)'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결론적으로 올바른 과학적 사고는 연역법과 귀납법의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최근 30여 년간 인류가 새롭게 접하게 된 정보의 양이 인류 문명의 역사 시작부터 1980년대까지 알고 있었던 정보량보다도 더 많다고 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넘치는 정보를 꿰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사고력, 즉 창의력 또는 상상력이 아닐까? ‘과학적 사고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맺을 수 없는 열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과학이 이공계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기초 과목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나마도 글머리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과학적 사고력 보다는 이것의 결과물인 과학 원리를 주입하는 교육이 주를 이루어왔다. 대학교육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새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현실 교육교과과정에 어떻게 접맥시켜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시대가 요구하는 교양 과학 교육 실천을 위한 소견을 제시해 본다.  현대 과학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귀중한 방식으로 오랜 역사 동안 이룩해놓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결집된 산물이다. 그리고 이런 과학적 방법과 연구의 결과물은 과학 원리라는 결정체로 빛난다. 그래서 과학자들의 머릿속에는 그 결정체가 반짝이고 번뜩이며, 이를 통해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데에 익숙하다. 이런 사고는 과학 원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탐구하고 훈련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비전공자들은 그런 연마의 과정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과학 원리는 반짝이는 희열의 별이 아니라 자칫 피곤한 괴로움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과학적 설명은, 과학 원리를 가지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과학 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 원리로 세상을 보고 연구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이지 보통 사람들이 과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교양 차원에서 과학을 소개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과학 원리에 도달했느냐 하는 과정과 사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 소통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과학자는 과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하며, 거꾸로 일반인들은 과학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과학 교양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가 건강한 인문정신이 결여되면, 과학이 인류의 안녕과 번영의 견인차가 아니라 자칫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자가 인문학의 울타리에 갇혀 과학에 무지하다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은 인문정신에도 위배된다. 과학의 시대에는 과학적 소양이 과학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만 하는 필수 교양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융합교육은 바퀴 하나가 빠진 자동차와 같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중요하다. 미래의 주인공으로 살게 될 학생들을 위한 교육 콘텐츠와 거기에 걸맞는 교과과정 및 교수법을 개발하여 실행하는 데에 교육 기관과 당국이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27&s_para1=174&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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