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rimlee

[APCTP Everywhere] 1+1+1≥3 / 20.4 크로스로드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22일



어떤 일을 하던 꼭 한 발짝 늦게 알게 되는 일이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임에도 며칠 차이로 알게 되어 후일을 기약하게 되는, 그런 일 말이다. 내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의 과학커뮤니케이션스쿨(이하 과컴스쿨)을 알게 된 것도 그랬다. 18회 신청 마감일이 이틀 지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때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갓 알을 깨고 과학커뮤니케이터 햇병아리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 정도.

  네모반듯하게 선 정문을 지나 온통 ‘여기가 바로 공대다.’하는 이미지의 건물들로 가득한 이곳은 한옥을 본 딴 건물들이 자리한 학교에서 온 내게 조금은 경직된 곳이라는 첫인상을 주었다. 2박3일의 일정동안 무은재 기념관 앞에서 쭈그려 앉은 나와 친구의 패딩 안으로 쏙 들어오던 고양이나 제법 예쁜 산책로 등이 그 인상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과컴스쿨의 프로그램은 크게 강연과 글쓰기,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강연이라 하면 연사의 내용전달이 주를 이루는 다소 딱딱한 형식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컴스쿨의 강연은 조금 다르다. 강연뿐 아니라 연사분들과 함께하는 스페셜 토크가 있다. 다른 강연에 갈 때에도 이런 외전 같은 시간을 좋아하는지라 강연 이전의 점심부터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이은희 선생님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총론 강의, 장대익 교수님의 종의 기원 강의 모두 좋았지만 나는 스페셜토크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 질의응답을 위주로 하는 시간이었는데 질문거리를 찾으려 필기한 것을 뒤적이다 지목을 받고 잠시 시간을 벌어 나름 열심히 질문을 준비했다. 스페셜 토크에 참여하신 모든 박사님들, 교수님들께서 돌아가며 답변을 주셨다.

  스페셜 토크가 끝난 뒤에는 포스텍 옆 통나무집에서 연사분들과 함께하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앉다가 보니 이은희 선생님, 황정아 박사님, 이정원 박사님, 손승우 교수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좀 더 많았다. 황정아 박사님을 제외한 세 분은 과학문화행사에 참여하며 두어 번 얼굴을 뵈었던 분들이라 친숙했는데 자리를 옮기다 보니 장대익 교수님과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시간이 지나며 다음날의 야식, 대학원 등 여러 주제가 오갔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평소에는 자주 이야기할 수 없었던 ‘과학소통’에 대해 내 고민도 이야기하고 공감하기도 하며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쓰기 프로그램의 경우, 둘째날 아침에 백승권 선생님의 전체강연을 들은 후 3조씩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실습이 위주가 되는 수업이어서 스쿨에 참여하기 전, 사전과제로 제출했던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좀 더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세울 수 있었다. 덕분에 모두가 쉬는 시간마다 노트북을 붙잡고 마감시간 직전까지 글을 수정하기 바빴다.

   2박3일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통해 완성된다. 배정받은 조별로 종의 기원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마지막날에는 2개의 교실로 나뉘어 예선을 치른 뒤, 각 교실에서 뽑힌 한 조씩, 2조가 본선을 치른다. 오기 전 이은희 선생님께 대강 이야기를 들어 빡빡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빡빡할 줄은 몰랐다. 아니, 실은 내가 ‘빡세야 얼마나 빡세겠어.’ 하고 넘겨짚은 것이 크다.

   둘째날 밤은 모두 Common room에 모여 저마다 노트북을 연결해두고 자료를 찾고, 플롯을 짜고 발표 분량을 분배하다가 커피를 홀짝이기 바빴다. 첫날 ‘친목의 시간’ 때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왔던 ‘내일 야식 만두’는 치킨으로 변신해서 돌아왔다. 바쁜 중에 들어온 치킨은 모두의 머리 대신 젓가락을 분주히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일정에 첫째날은 글을 수정하느라 3시간, 둘째날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느라 1시간 정도 잘 수 있었다. 다른 조들도 비슷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프레젠테이션이 혼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혼자 했어야 한다면 종의 기원이라는 이 방대한 주제에서 길을 잃고 꼬박 밤을 새워 만든 프레젠테이션을 버벅대며 발표했을지도 모른다.

  1+1+1=3. 지구에 살고 있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반사적으로 나오는 이 답은 최소한 조별과제에서 만큼은 예외가 된다. -1도, 0도 될 수 있으며 2도, 3도, 혹은 그 이상도 될 수 있다. 조별과제에서 이 답이 무엇이 될지는 팀이 정한다. 서로 얼마나 잘 들어주고 말하며 ‘합’을 맞추어 가는지가 이 수식의 답을 정한다. 다행인 것은 이 곳은 무작위로 배정되거나 하는 학교의 조별과제와는 달리 과학커뮤니케이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조별과제는 조원이 다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종의 기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다 생물 전공도 아니었다. 함께할 사람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한 번 마중물을 붓고 나니 그 이후에 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수월했다. 1+1+1이 3 아니, 그 이상이 되어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 우리 조는 조금 실험적인 선택을 했고, 한 편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이고 높이 매달린 가로등,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달과 별빛만이 숙소로 가는 길을 비추던 시간까지 회의는 계속되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처럼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는 우리 조의 주제와 꼭 맞는 시간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프레젠테이션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포켓몬스터 게임을 이용해 설명하던 조, 연극처럼 설정한 조 등 모든 조의 발표가 흥미로웠다. 다른 교실에 있던 조들의 발표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정작 PPT를 만들면서는 진절머리를 쳤으면서도 다시 돌아보면 ‘아, 참 재미있었다.’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해서 더 그랬다.

  1+1이 2를 넘어 3, 4, 5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각자가 배우고 느낀 것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가 과학을 통해 무언가를, 다른 무언가를 통해 과학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을 것이다. 이 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한 번 더 이런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수식의 답이 언젠가는 무한대로 발산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원본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42&s_para4=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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