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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Everywhere] 잊은 사이를 잇다 / 20.2 크로스로드

이한기 / SBS 『과학과 문화예술 소통워크숍 Ⅱ』 참가 후기


 처음 『과학과 문화예술 소통워크숍 Ⅱ』 참가를 권유받은 건 서늘해진 햇볕 속에 아직 열기가 남아있던 계절 사이였다. 대학원을 떠난 지 5년, 과학기자 생활을 한 지도 4년이 넘어가면서 ‘과학’이라는 단어가 제법 멀게 느껴질 때쯤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고향의 봄’ 같은 그리움에 선뜻 참석을 결정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11월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그런데 워크숍이랑 우리 일이랑 어떤 연관성이 있는거야?”   워크숍에 가기 위해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나의 이야기에,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음’ 하며 시간을 벌어봤다. 상대방의 반응은 ‘과학과 방송 사이’에 관한 순수한 의문에 가까웠는데, 당시 나에겐 그 의문을 풀어줄 만큼의 진심어린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만나서 소통하는 거죠.”   조금 시간을 벌어본다고 순수해서 단단한 의문을 깨뜨릴 방안을 찾을 순 없었고 결국 택한 건 만능키워드 ‘소통’ 이었다. 2박 3일을 보낼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단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첫 식사자리에서도 질문에 대응할 혹은 적절할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워크숍에 참가한 합당한 명분을 찾는 와중에, 내 몸은 어느새 ‘소백산 천문대’라 적힌 표지판을 지나 터덜터덜한 도로 위에 올라서 있었다. 12인승 승합차는 금세 빗면을 따라 기울었고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어색한 분위기 속에 웅크려들었던 자세가 더욱 동그랗게 말렸다. 해결하지 못한 질문과 함께 나는 점점 더 깊은 산 속으로 접어들었다.   *  천문대 견학과 함께 시작된 워크숍은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를 오갔다. (각 강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필자 분들의 훌륭한 후기로 대체합니다.) 오랜만에 듣는 용어와 내용들에선 고향말을 듣는 듯한 친숙함을 느꼈고, 분야에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와 과학 사이에 대해 고민하는 참가자들의 이야기에선 잊고 있었던 고민과 생각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진부하지만 ‘과학과 사회’, ‘과학과 문화’, ‘과학과 대중’에 대한 생각은 내겐 제법 오래된 숙제였다. 대학에서 과학을 공부했던 시절부터 잠시 과학기자로 일하던 시기까지 수년간, 나름 진지하게 두 단어 사이의 간격과 관계를 고민했었지만 원론적인 수준 이상의 답은 얻지 못했었다. 그리고 PD로 일하면서는 그런 고민들과 아예 멀어져 버렸다. 내 배경을 알고 호기심을 보인 경우 나눈 짧은 대화를 제외하곤, 삶 속에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만나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다. 가끔 마주한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도 인상비평 이상인 경우가 드물었고, 무질서하게 서로 부딪히는 자유전자처럼 수없이 가볍게 스쳐갔던 경험들 속에서 과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워크숍은 과학에 대해 무관심했던,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냉소적이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과학 주변부에 잠시 있었다는 짧은 경험을 과신해 ‘과학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는 기회였다. 자기소개부터 질의응답, 자유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분들이 보여준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튿날 밤에 이뤄진 야외 천체관측은 큰 울림을 주었다. 겨울밤 별을 보면서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나눈 시간 동안, 나는 앞서 적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이번 워크숍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그동안 과학과 관련하여 내가 들어온 많은 피상적인 표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원인과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 보지 않고 얻고 싶은 결과하는 도착점만을 보며 출발한 공허한 메아리 같이 느껴졌다. ‘과학과 콘텐츠’라는 깊고 넓은 주제에 대해 몇 단계는 건너뛰고, 둘 사이를 완벽하게 이어줄 필요충분조건만을 생각한 건 아닌가 싶었다. 워크숍 내내 맴돌았던 질문은 그래서 다시 더 깊은 곳으로 침전해 들어갔지만, 생각은 한층 더 맑아졌다.  또한 활동하는 영역과 방법론에 차이가 있을 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의 고민은 결국 비슷한 기저에서 출발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코드로 그린 그림(ETRI 이주행 박사)’에서 보여준 작업 방식은 실제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방식과 매우 유사했다. 원본 그림을 찾듯이 아이템을 찾고, 이미지를 코드로 정리하듯이 현상을 촬영하고, 머신러닝을 통해 이미지를 완성하듯이 구성과 편집을 통해 최종 콘텐츠를 만드는 모습이 그 기저에서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코드로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고통과 희열이 가깝게 다가왔다.  *  워크숍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와 다시 익숙한 일과와 마주했다. 소백산 깊은 곳에서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은 이미 아득했고 과학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남았다. 진공 상태와 같았던 과학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미줄처럼 무성한 실선들을 발견하고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 실선들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사람이기도 했고 그저 어떤 이미지와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실선을 어떻게 더 촘촘하게 엮을지, 어떤 경로를 택해야 할지는 아직도 난제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잊었던 사이를 다시 이을 수 있다는 그 생각과 느낌은, 아주 강력하게 과학과 나 사이를 연결해주고 있다. 이 글을 빌어 그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정우성 사무총장님과 손승우 교수님을 비롯한 APCTP 여러분, 귀중한 공간과 훌륭한 인프라를 제공해 주신 성언창 대장님과 소백산천문대 관계자분들 그리고 이번 워크숍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래 사진은 워크숍 이튿날 산행 중 강연 내용에 나왔던 네트워크를 떠올리며 찍었던 나무 사진이다. (당시 많은 강의가 네트워크와 객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루었다.) 그런데 글을 쓰며 당시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마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실선 같이 느껴졌다. 나에게 남은 이번 워크숍은 이처럼 아직 잎과 열매가 무성하지는 않지만, 한겨울에도 꿋꿋이 하늘을 채우고 있는 굳센 나뭇가지 같은 이미지로 남았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21&s_para1=173&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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