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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Everywhere] 우리들의 똑똑한 겨울나기 / 19.12 크로스로드



(일러스트레이션 : 김민정 작가님)


 매년 10월은 노벨상의 달이다. 노벨상은 시간이 좀 지나서 학계의 평가가 잘 정리된 업적에 주고 있어서 어떤 한 분야가 무엇을 추구해왔고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준다. 2019년 노벨물리학상은 제임스 피블스, 미셸 마요르와 디디에 켈로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들 중 피블스는의 수상 이유는 “물리우주론에서 이론적인 발견들에 대한 공로로”라는 두리뭉실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다. 그만큼 그의 업적이 현재의 우주론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저기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혁혁한 업적을 꼽으라면 당연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일 것이다. 하지만 두 분야의 성과를 기반으로 우주론에서 이룬 성과도 그에 못지않다. 지난 100년간 우주론은 우주에 대한 밑그림 정도를 그리던 수준으로부터 정밀과학의 수준까지 발전했다. 일반상대성 이론의 등장에서 출발해서 우주의 팽창과 우주배경복사의 발견, 빅뱅 핵합성 과정의 확인을 통해서 빅뱅 우주라는 우주의 모습에 대한 큰 그림을 완성하고, 가속팽창과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관측을 통해 우주의 정밀한 모습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우주론이 이렇게 발전하는데 중심 역학을 한 것이 우주배경복사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일반상대성은 주변의 물질에 의해서 시공간이 휘어지고, 시공간의 휘어짐이 중력으로 작용한다는, 그래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새로운 중력이론이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을 우주,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전체 시공간에 적용해보는 시도를 했다. 그는 우주의 공간은 어디나 똑같다는 우주원리를 채택했고, 한편으로 우주는 영원불변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중력방정식은 그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정적인 우주를 얻는 데 집착한 그는 우주상수를 도입하고 그 값을 정밀조정해서, 그가 나중에 언급한 표현에 따르면 인생 최대의 바보짓을 통해, 그의 이상을 실현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프리드만과 조르주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정직하게 풀어서 나온 균일하고 등방인 우주는 팽창한다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1929년 에드윈 허블은 은하들의 광도 거리와 적색이동 사이의 비례관계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면서 일반상대성과 물질의 동역학으로 우주의 모습과 진화과정을 설명해보려는 현대우주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우주의 팽창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조지 가모프는 우주가 팽창하면 그 안에 있는 물질의 온도가 내려갈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우주의 초기에는 온도가 아주 높았을 것으로 유추했다. 높은 온도의 물질에서는 열복사가 나온다. 그는 우주가 팽창하면 온도가 내려가긴 하겠지만, 열복사가 우주 전체에 배경복사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으로 보았고, 자신의 학생에게 이 복사의 현재 온도를 추정해보도록 했다. 1948년 랄프 알퍼와 로버트 허만은 우주배경복사 온도를 5K으로 예측했다가, 2년 후 28K으로 다시 추정했다. (당시는 팽창의 속도를 나타내는 허블 상수가 부정확해서 온도의 정확한 예측이 어려웠다.)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는 별로 주목을 못 받다가 1960년대 초 야코프 젤도비치, 그리고 로버트 디키에 의해 독립적으로 재발견됐다. 디키는 2차 대전 중에 레이더 개발팀에서 일했는데, 이때 mm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검출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우주배경복사를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당시 자신의 학생이던 피블스에게 복사 온도를 다시 추정해보도록 했고, 데이비드 윌킨슨과 피터 롤에게는 검출장치를 제작하도록 했다.

 그런데 디키의 팀이 검출장비를 열심히 만들던 중에 우주배경복사는 옆 동네의 엉뚱한 사람들에 의해 의도치 않게 발견이 되어 버렸다. 1964년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은 통신과 우주탐사를 위해 제작된 마이크로파 안테나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검출되는 마이크로파 잡음의 원인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디키의 팀이 이런 것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취했고, 두 팀은 만나서 확인한 결과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때 전화를 받고 디키가 했다는 탄식 “Well, boys, we’ve been scooped.”

 우주는 빅뱅(팽창의 시작) 후 백만 분의 1초 일 때 양성자, 전자, 광자가 플라즈마 상태로 뒤섞여 있는 뜨거운 상태에 있었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는 내려간다. 38만 년 후가 되면 우주 온도는 3,000K가 되고, 이때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하여 수소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일어난다. 양성자, 전자와 전자기 상호작용을 하던 광자는 이들이 수소 원자가 돼서 사라지면 물질과 분리되어서 3,000K의 열복사로서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다. 우주는 그 이후에도 계속 팽창하여 열복사 온도는 내려가고, 138억 년이 지난 현재는 온도가 2.7K이 된 것이다. 물질로부터 분리가 된 후 물질과는 상호작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는 나이가 38만 년이 됐을 때의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냅사진이라 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던 당시에 우주론에서는 빅뱅 모형과 정상상태 모형이 격돌하고 있었다. 정상상태 모형은 우주가 팽창은 하지만 모습은 변하지 않는 우주 모형이다. 팽창을 하면서도 모습이 바뀌지 않으려면 팽창에 의해 밀도가 줄어드는 만큼 물질이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정상상태 모형의 주창자였던 프레드 호일은 팽창에 의해 온도가 내려가면서 모습이 변하는 우주는 그 시작에 큰 폭발과 같은 사건이 있어야 한다며 약간은 조롱을 담아서 빅뱅이라 표현했는데, 그것이 이 모형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는 빅뱅 모형이 맞는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물질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 정상상태 모형은 물질로부터 2.7K이라는 극저온의 열복사 스펙트럼을 가진 복사가 만들어질 방법이 없었다. 우주배경복사가 열복사 스펙트럼을 가진 것이 확실해지면서 영원불변한 우주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에서는 선수를 뺏겼지만, 디키의 팀은 포기하지 않고 우주배경복사의 관측을 계속했고, 좀 더 정밀한 관측을 위해 노력했다. 우주는 큰 거리척도에서 보면 균일해 보인다. 우주배경복사가 그렇고 은하들의 분포가 그렇다. 그러나 이 균일성은 작은 거리척도까지 유지될 수 없다. 은하와 별과 우리(생명체)가 존재하려면 물질이 골고루 분포하지 않고 밀집되어야 한다. 피블스는 우주 초기에 만분의 일에서 십만 분의 일 정도의 밀도섭동이 있었다면 중력의 작용으로 섭동이 커져서 우주의 구조물들이 생기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계기로 빅뱅 우주에서 작은 밀도섭동이 초기조건과 우주의 물질구성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를 조사하는 선형섭동의 진화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우주배경복사에도 이 섭동의 흔적이 남는데, 정밀관측을 통해서 이를 확인하려는 시도도 시작됐다.

 이런 연구에 의해 우주에 바리온(원자)만 있다면 압력이 높은 빛(복사)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구조가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구조형성이 가능하게 하려면 중력은 작용하되 빛과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암흑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밀도섭동이 우주배경복사에 남긴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1993년에 COBE 팀이 십만 분의 1 수준의 온도 비등방성을 발견함으로써 최초로 성공했다. 우주배경복사 온도를 그 이상의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진정한 정밀관측이었다. 이 발견으로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우주구조의 형성을 이해하는 틀이 확고해졌다. 이 정밀관측 성공의 보상은 컸다. COBE 이후 10년 간격으로 이어진 WMAP와 Planck 위성 관측을 통해 온도 비등방성 측정의 각해상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밀도섭동의 성장 결과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주의 물질구성 등에 대한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우주론은 드디어 정밀과학의 수준까지 오를 수 있게 됐다. 현재의 표준우주론이라 할 수 있는 ΛCDM (암흑에너지와 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은 이런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졌다.

 우주론 분야에 주어진 노벨상을 보면 우주배경복사의 발견 (1978년),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발견 (2006년), 가속팽창의 발견 (2011년) 등이었는데, 이제 물리우주론의 이론적 발견 (2019년)에 주어진 것은 우주의 모습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가 관측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되었음을 의미한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06&s_para1=171&Board=n9998&admin=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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