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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Everywhere] 과학커뮤니케이션이란 경계 자체를 탐구하는 것 / 20.3 크로스로드
김진경/ 이화여자대학교
『제19기 APCTP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 참여 후기

물리학에는 자기 도메인 (자구, magnetic domain)이라는 개념이 있다. 원자 단위의 자석들이 자기 도메인 안에서는 자화된 방향이 같고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질 때 각각은 서로 다른 구역, 서로 다른 도메인으로 구별된다. 이 때 서로 다른 도메인들을 구별해주는 것이 경계, 즉 도메인 벽(domain wall)이다. 그런데 이 도메인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벽을 사이에 두고 도메인 간의 자화 방향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즉 도메인 벽은 단순한 면이 아니라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두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경계라고 하면 먼저 경계의 양쪽을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위의 자기 도메인 개념에서는 도메인 벽 양쪽에 원자자석들이 어떤 방향으로 배열해 있는지를 먼저 볼 것이다. 이러한 두 도메인의 자화 방향은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 자체를 탐구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어떻게 90도나 180도의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지, 그 중간 지점은 어떤 상태인지, 혹은 어떤 요소들이 벽의 두께를 결정하는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말이다.
나에겐 과학커뮤니케이션이 도메인 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이란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일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실제적 의미는 상호작용에 더 가깝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과학 도메인과 비과학 도메인 간의 전이가 일어나는 도메인 벽과 같다. 그 벽 안에는 과학적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 발표나 책 안의 스토리 라인, 과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창작활동 등 과학적 지식 이상의 요소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들을 하다 보면 오히려 이러한 경계에서부터 출발해 경계 안쪽을 더 잘 알게 될 때도 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과학을 많이 접하지 못한 사람들과 과학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핵심을 잘 짚어서 단순화시키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 준비하는 사람은 이 과정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과학적 내용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원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서 허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며 심지어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여 어떤 통찰력을 획득하기도 한다. 주고 받는 일종의 상호작용을 본인 스스로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19기 APCTP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 에서는 과학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경계를 탐구하는 것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간들을 많이 마련되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접점에 서있는 만큼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배워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먼저 과학 글쓰기 수업, 과학 프레젠테이션 수업 등을 통해 소통하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글쓰기 과제물에 대한 구체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이 글쓰기의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미 과학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에게 실제 경계에 서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들을 기회도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커뮤니케이터 분들과 함께 이번 스쿨의 주제였던 『종의 기원』에 대해 풍부한 토론을 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과학커뮤니케이션의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보고 참여자들끼리 서로의 결과물을 소개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짧은 기간에 수많은 토론을 해보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에서 파생된 전혀 다른 결과물들을 보면서 기존의 것을 새롭게 각색하는 방법을 깨닫기도 했다. 무엇보다 혼자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경험들을 2박 3일 동안 알차게 해보며, 활동이 끝나고 나서도 과학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찬찬히 고민해볼 수 있었다.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깊이만 다를 뿐, 사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과학이다. 조금의 흥미만 덧붙인다면 나 자신, 나를 구성하는 환경, 또는 자연 그 자체를 탐구하는 것은 멀게만 느껴지는 어떠한 학문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이러한 재미를 알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더 확장될 것이다. 과학과 다른 분야들 사이의 도메인 벽이 두꺼워지고 그 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더욱 새롭고 창의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533&s_para1=174&Board=n9998&admin=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