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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mirimlee

[Cross Street]사회적 거리두기의 인류사 / 20.4 크로스로드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22일



코비드-19(한국 명칭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의료와 보건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외교 등 다양한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제 이 상황이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작년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전 인구의 80%가 감염될 때까지 유행이 지속되며, 18개월 내에 6500만 명이 사망한다고 예측되었다. 또한 최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에서만 약 2억 명이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버드 공공보건대 연구팀도 14억~42억 명이 감염될 것으로 예상했다. 예측 시뮬레이션은 원래 틀리는 법이지만, 봄바람이 불면서 스르륵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이미 세계보건기구는 판데믹을 선언했는데, 역사상 세 번째다. 물론 선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WHO가 있기 전부터 판데믹은 항상 있었다. 아무튼 첫 번째는 68년에 일어난 홍콩 독감이다. 대략 100만 명이 사망했다. 두 번째는 신종 플루. 약 6억 명이 감염되었고, 최소 15만 명이 사망했다.

   이번이 더 심각하다. 치료약도 없고, 백신도 없으며, 확산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이다. 쓸 수 있는 무기가 별로 없다. 아무리 훌륭한 명의라도 약이 없으면 빈 손이나 마찬가지다. 진단 키트가 재빨리 개발, 보급되고 있지만, 치료법이 없는 와중에 진단 건수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다급한 사람들은 마스크에 매달린다. 휴지와 식료품 사재기도 일어나지만 대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약이 없었다.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법을 발표한 것이 179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표한 것이 1929년이다. 의사는 인류의 가장 오랜 직업 중에 하나지만,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코비드-19 상황을 맞아서 의사들은 아주 오랜 처방전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바로 '거리두기'다. 어감은 썩 좋지 않지만, 흔히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알려진 방법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전적 거리두기는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전략은 환자를 특별한 공간에 격리하는 것이다. 구약의 레위기는 무려 네 장에 걸쳐서 나병과 옴, 성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 속죄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데, 몇 몇 구절을 줄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 ‘만일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 환부가 변하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이레 동안을 가두어둘 것이며”. 병원에서의 격리 혹은 자가 격리 등의 원조다.

   둘째 전략은 반대다. 환자를 내쫓고 비감염자를 격리하는 것이다. 민수기 5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발병 국가로부터의 입국을 막거나 특정 지역을 봉쇄하는 조치다.

   나병, 즉 한센병은 독특하게도 구석기 시대부터 유행하던 질병이다. 13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19000명을 수용하는 규모의 나병 병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09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설립하며 나요양소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환자의 삶은 비참했다. 사실 일반적인 중세 시민의 삶도 그리 나을 것은 없었지만. 아무튼 원시적 거리두기 전략은 끔찍한 낙인과 차별을 낳았다. 하지만 항생제나 백신이 없는 인류로서는 유일한 궁여지책이었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좀비가 우글거리는 지옥에 강제로 밀어넣은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성직자가 위험을 자처하고 나환자와 같이 살았다. 아픈 이를 돕는 성직자의 상당수는 결국 스스로 나환자가 되었다.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가는 의료진의 뒷모습에 나환자촌에 제 발로 들어가던 수도자의 모습이 겹친다. 편견에 시달리는 나환자도 먼저 조심했다. 격리 지역을 떠나야 할 때, 나환자는 박수 혹은 나종(leper bell)을 쳐서 자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불안을 이기고 자가 격리에 힘쓰는 유증상자와 접촉자의 선배다. 감염 가능성이 없어지면 특별한 속죄 의례를 거쳐 ‘정결’해질 수 있었다. 신약에는 예수가 병의 회복을 ‘선언’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진짜 병을 치유한 것일까? 혹은 차별과 낙인을 치유하려는 것이었을까?

   과학 칼럼인지 종교 칼럼인지 좀 헷갈린다. 아무튼 사회적 거리두기의 이론적 배경은 바로 기초재생산지수(혹은 재생수), 즉 R0를 줄이는 것이다. 인구 집단 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사람의 분율을 f라고 하자. 그러면 새로운 R0는 다음과 같이 정해진다.

New R1 = [1-(1-a2)f]R0

   모든 학교의 개학을 연기하고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며 상당수의 직장이 재택 근무를 하는 것은 f값을 높이려는 것이다. 악수를 피하고, 사람들과 떨어져 앉는 것은 a값을 낮추려는 것이다.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서면 R0는 급감한다. 만약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면 감염병의 기세는 자연스럽게 수그러든다.

   코비드-19가 지속적으로 확산하니, 별별 대책이 다 나온다. 김치는 조금 식상한지 좀 뜸하지만, 소금물로 입과 코를 씻는 ‘소금 만능주의’가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다. 마늘도 빠지면 섭섭하다. 알코올로 위장을 소독하겠다며 수십 명이 공업용 알코올을 마시고 죽었다. 참기름을 코에 넣는 경우도 있다. 세종대왕도 역병이 돌자 참기름을 백성들의 코에 바르라고 했는데, 아무리 세종대왕이라도 이건 아니다.

  세종대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역병이 돌자 세종대왕은 역병의 유병율과 발생율, 연간 변화 양상을 조사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널리 전달하라고 했다. 실록에는 이렇게 전한다. “금년 각 고을 여염에 염병이 성한가 아닌가와, 백성이 서로 전염되어 죽는 형상 및 금년에 병든 사람의 수효가 지난해와 비교해서 어느 해가 많은가를 대략 계산하여 아뢰도록 하라. 염병을 구제하는 것은 《육전》 내에 구활(救活)하는 조건 및 병이 잇달아 옮겨지는 데에 따라, 구활하는 약방문에 의하여 증세에 따라 구제하여서 염병으로 죽는 근심이 없게 하라." 세종 19년의 일이다. 과학적인 역학 조사와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효과적인 약방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괴상한 주장이 쏟아진다. 심지어 전체 인구 집단이 모두 감염되어 집단 면역으로 이겨내자는 주장도 있다. 매번 감염병 유행 시마다 집단 면역으로 이겨내다보면 금세 지구가 한산해질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SARS-CoV-2에 대한 면역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일반적인 코로나바이러스의 면역은 고작 수개월 지속될 뿐이다. 작년에 감기 걸렸다고 올해 안 걸리는 것이 아니다.

   원시적인 거리두기 전략은 주로 감염원으로부터의 예방적 차단과 환자의 격리다. 심각한 편견을 낳는 과격한 전략이다. 감염자와 접촉자, 그리고 치료자를 한묶음으로 배제한다. 백번 양보해서 방역효과라도 있으면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다. 환자는 증상을 숨기고, 의료인은 치료를 망설이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물자와 인구의 이동이 활발하며, 좁은 도시에 밀집해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하다.

   더 나은 전략이 있다. 개학의 지속적인 연기와 대중 모임 제한, 다중이용시설 폐쇄, 손씻기 등 개인 위생이다. 핵심은 a를 낮추고 f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f를 1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다 1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방안에 고립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더 바쁘게 접촉을 늘려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의료인이나 경찰, 소방관, 방역 공무원 등이다. 군인도 총을 버리고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바로 이 글을 읽는 일반인이 해야할 일이다.

   “...이 무리들이 아마 집을 떠난채 전염병에 걸린다면 반드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중 내월의 역사에 나가기 위하여 올라오는 도중에 있는 선군은 통첩을 내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어떠할까." 이에 김종서는 착하신 은전을 받들어, 당번 선군들을 물러가 제 집에서 쉬게 하였다. 재택 근무의 원조랄까? 세종 14년의 기록이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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