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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관계의 과학』/ 20.4 크로스로드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22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2017,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조류독감이라는 용어가 매체에 자주 등장하며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가던 무렵이었다. 뉴스에는 고위 공직자가 닭 요리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충분히 익힌 닭고기는 괜찮다며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닭 판매를 진작하려는 취지였다. 의아했다. 감기 걸린 닭이 독극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이 아픈 닭을 먹는 게 문제가 된단 말인가?
“인수공통 전염병”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궁금증이었다. 조류독감은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사람도 감염시킬 수 있으며, 발열과 폐렴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감염된 가금류 또는 감염된 가금류의 배설물에 접촉했을 때 감염될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전염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용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새롭지만,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인간도 진화의 나무의 한 가지에 불과하며 병원체에게는 인간이라는 가지와 그 옆의 다른 가지(다른 생물종)의 차이가 건너뛸 수 있을 만큼 사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가지가 분지하기 전부터 인류의 조상들과 함께 해 온 병원체들도 많다.
2008년 연구에 따르면 1940년에서 2004년 사이에 널리 유행한 신종 전염병의 과반수(60.3%)가 인수공통 전염병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 코로나, 메르스, 사스, 에볼라, 돼지독감은 모두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천연두와 소아마비처럼 인간만 감염시키는 전염병은 박멸이 비교적 쉽다. 병원체가 번식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사람 밖에 없고 1회의 백신으로 영구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수공통 전염병은 병원체가 살고 증식할 수 있는 생물종을 지구상에서 없애지 않는 한, 박멸이 어렵다.
신종 인수공통 전염병은 가축보다는 야생동물에서 유래한 것들이 훨씬 더 많다(71.8%)고 한다. 특히 야생동물로 인한 인수공통 전염병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인간 활동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야생동물의 병원체와 인간이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러 야생동물 중에서도 박쥐가 옮기는 질병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 것은, 박쥐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쥐 종은 1116가지나 되며, 이는 전체 포유동물 종의 약 25%에 달한다.)
건강하고 다양한 생태계보다 분열되고 파괴된 생태계가 많아진 것도 인수공통 감염병을 늘렸다. 생물종이 다양하면, 특정한 생물종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경우가 드물고, 그러면 어느 생물종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위험할 만큼 고밀도가 되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고, 쥐와 같은 특정한 종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는 환경 (도시 인근의 규모가 작은 조림지 등)이 되면 특정 생물종이 보유한 병원체에 사람이 감염될 위험도 커진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인수공통 전염병이 유행할 때 마다 그때 그때 대응할 게 아니라, 생태적인 관점을 고려해서 큰 그림을 보아야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여러 인수공통 감염병이 인류사에 등장한 역사와, 감염병의 병원체를 추적해가는 과정도 담겨있다. 이를 통해서 유행병이 발생했을 때 병원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 나아가서 병원체의 보유숙주(병원체와 오래 공생할 수 있는 생물종), 증식숙주(병원체를 널리 전파시킬 수 있는 생물종)를 찾는 일, 이들을 종말숙주(병원체를 보유할 수는 있으나 다른 종에게 옮기지 않는 생물종)와 구별하는 일이 연쇄살인법을 잡는 것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었다. 또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증상들이 같은 전염병인지를 확인하고, 병원체와 보유숙주를 알아내려면 감염자의 행적에 정보와 정확한 통계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전염병 대응에서 국제 공조와 정보 공유가 왜 강조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인수공통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한다.
(1) "어떤 바이러스를 주시해야 하는지 알아두어야” 한다. 조류독감처럼 동물 집단에서 큰 유행을 일으킬 수 있고, RNA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가 비교적 쉽게 일어나는 바이러스가 특히 위험한 부류에 속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 중 하나다. (2) “외딴 곳에서 일어난 종간 전파가 지역 전체로 퍼지기 전에 즉시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3) “지역적인 유행이 일어났을 때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직화된 역량을” 기른다. (4) “새로운 바이러스의 특징을 신속히 파악하여 짧은 시간 내에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기술과 도구를” 갖춘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각 국가와 국제 사회가 (1)~(4)에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지 시험받을 계기가 될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COVID 19는 우리가 겪을 마지막 인수공통 전염병이 아니다. 새로운 인수공통 전염병이 언젠가 또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무서운 일을 겪더라도 닥친 상황을 이해하고 나면 덜 불안하고 보다 합리적인 대응도 할 수 있다. 당장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해결책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답답하고 화가 나지만, 원래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알고 나면 침착하게 기다리며 미리부터 조심하기에도 좋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한 심기를 누르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이 두꺼워 보이지만 병을 추적하는 과정은 빠르게 넘길 수 있고, 내용도 별로 어렵지 않다.
『관계의 과학』
(2019, 김범준 지음, 동아시아)

저자의 첫 번째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정말 그래? 진짜 그런지 확인해 봐야지”라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믿어지거나 짐작되던 것들에 대해 데이터를 구해다가 요리조리 분석하고 점검했기 때문이다. 믿으라는 대로 믿지 않고 굳이 데이터를 찾아 확인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과학자다우면서도, 발칙하고 재기발랄한 책이었다. 통계 물리학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이번 책 『관계의 과학』도 데이터를 구해다가 재미지게 분석한 내용이 상당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내가 1~2분 만에 뚝딱 읽어낸 이 몇 쪽을 위해서 데이터를 구하는 과정을 상상하다 보면 조금 겸허해지고 감사하기도 한 내용들.
전작과의 차이라면, 『관계의 과학』이 보다 따뜻하고 유머있는 문체로 최신 사회 현상을 더 많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의 과학』에서는 전염병의 유행과 영화의 흥행을 비교하면서 영화 산업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고, 개표 중간에 후보자의 득표율을 예측하는 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부의 치우침을 분석하고 재산세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13.4%의 구성원들이 사회 전반의 의견에 끼치는 영향을 소개하기도 한다. 왜 페이스북에서는 친구들은 나보다 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왜 친구들은 나보다 맛있는 음식을 더 자주 먹고, 여행도 더 자주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지도 재미있게 풀어냈다. 사회 현상을 다루는 많은 글들이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길고 무겁게 다루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실측된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한 결과를 쉽고 깔끔하게 전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위트와 따뜻함을 담았다.
저자는 궁금한 게 생기면 실험∙측정∙분석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몸에 밴 과학자다. 이를테면 근 1년 간 화장실에 앉아서 카드 게임을 한 1500여 번의 순간을 기록해두고 (게임 화면 캡처) 분석해 본다거나, 서적 판매량의 데이터를 구해다가 저자의 전작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책 판매량의 반감기를 분석하는 영락없는 과학자인 것이다. 그런 만큼 저자의 전공인 통계 물리학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 없다. 다수의 단순한 행동이 집단 전체의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창발’이라고 하는데, ‘창발’은 네트워크의 흥미롭고도 중요한 성질 중의 하나다. 저자는 홍수가 났을 때 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몸을 엮어서 이동하는 장면을 통해 창발을 설명했다. 어른이(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이 같은 과학적 호기심을 여전히 가진 어른)들을 실험실에 초청하여 여러 사람의 박수 소리가 동기화되는 현상 (때맞음)을 실험한 뒤 그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저자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면서 만난 오해에 대한 답변도 책 구석구석에서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적지 않은 오해들이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생긴다. 2019년의 산불과 2017년의 지진은 많은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는데, 저자는 시뮬레이션과 과학 지식을 통해 과학도 개별 지진과 산불을 예측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지진 과학자가 고소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대신에 확률을 추정할 수는 있고 이것이 대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300년에 한번 꼴로 규모 7 이상인 지진이 발생한다는 확률을 과학이 제시하면, 300년 이상 사용할 건물은 규모 7이상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지어 대비할 수 있다. 노벨상이나 가짜과학, 과학연구의 응용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다룬다.
책 말미의 “감사의 말”에 정리된 것처럼,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에는 노고가 들어간다. “비록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진실의 맨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를 통해서 사실을 확인해가는 과학적인 과정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계의 과학』 곳곳에서 진술된 것처럼 그 과정 속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있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깊이와 통찰이 나온다. 사회현상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말’들은 요란하거나 장황할 때가 많지만,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결과는 간결하지만 탄탄하고, 작은 발걸음이지만 건실하여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낸다 (과학이 그렇게 발전해왔다).
이 책을 통해 “정말 그래?” 하고 물어보고, 증거와 실측을 통해 확인해가는 과정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 한번에 홀랑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지만, 일단 펼치면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그런지’ 직접 읽으면서 확인해 보시길.
* 이 글의 추천도서는 갈다의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하여 몇 권을 고르고, 선별된 책을 읽은 뒤 다시 선별하는 방식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