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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mirimlee

[APCTP Plaza] APCTP 이명현 위원 퇴임 인터뷰 / 20.4 크로스로드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22일


왼쪽부터 APCTP 이은희 과학문화위원, 손승우 과학문화위원장, 이명현 前 과학문화위원, 방윤규 소장, 정우성 사무총장, 이성빈 前 위원

  지난해 12월 3일, 과학책방 ‘갈다’에서 APCTP 올해의 책 시상식과 갈다의 송년회가 열렸다. APCTP 사무국에서는 시상식 전에 이성빈 위원과 이명현 위원의 과학문화위원회 서프라이즈 퇴임식을 준비한다며 꽃과 케이크를 몰래 준비해달라고 연락을 했다. 직원들은 퇴임 행사에 걸맞게 글씨가 잘 보이는 아주 커다란 케이크를 주문했다. 시상식과 송년회가 끝난 그날 밤, 이명현은 뒷풀이로 간 식당 주인의 어머니가 생일이라는 말에 그 케이크를 건네고 나오면서 짐이 없어져서 좋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이명현은 과학문화계(?)에서 넓고 깊게 오랫동안 활동해오다가 과학책방 '갈다'를 오픈했다. 나는 '갈다' 준비를 하며 고용계약으로 이명현을 만났으니 아마도 내가 이 과학문화계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일 것이다. 그동안 그를 알고 지낸 수많은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이명현은 꽤나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그를 따라 다니다보면, 아주 예전부터 어떤 판을 만들어두고 그 다음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가도록 하거나, 그 판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면 판 자체를 없애버렸던 경험이 아주 어려서부터 여러번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내 첫인상대로 분명 무서운 사람이다. 

  사장님으로서는 별로(였)지만, 꽤 괜찮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력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는, 무엇보다 중년 남성 엘리트로서의 지위가 묻어나는 행동이나 말투,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사결정 회피, 개인적인 비호감 행동 등을 나처럼 끈질기게 대놓고 지적하는 아랫사람은 아무리 봐도 좋지는 않을텐데, 잠깐 충격을 먹는듯 하다가도 바로 인정하고 수용을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았던 경험에서 이런 어른은 없었다. 

  잠깐 본 사람들은 이명현을 마음 좋은 사람,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 게으른 사람, 물러터진 사람 이라고 하지만, 좀 더 곁에서 지켜본 의외의 단단함은 어디서 오는건지 궁금했다.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퇴임식이라는 단어에서야 이명현의 APCTP과학문화위원회 활동에 기한이 있는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래 퇴임을 하면 글을 하나 써야 한다는데, 이명현의 원고를 마감에 맞춰 받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 아마도 나에게 인터뷰를 맡겼으리라. 

이미영

과학책방 갈다 총괄디렉터 / 기획이사 

1. 과학문화위원회 활동 시작 계기는?

  나(이명현)보다 이전에 정재승, 이권우, 강양구가 먼저 과학문화위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위원은 아니었지만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겨울학교에서 강사도 하고, 채점도 하고. 모임때도 같이 가곤 했었다. 어떤 계기로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와 정재승이 물러나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위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 때의 과학문화위원 멤버는?  

  국형태 교수, 박상준 교수(포항공대 국문학), 그리고 1~2년 후에 김상욱 교수가 합류했다. (김상욱 교수는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합류했다고 한다)

그 때 과학문화위원회에서 하던 일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웹진 크로스로드 운영. 크게는 에세이와 SF소설로 구성되었다. 처음에는 과학자들이 직접 운영하고 직접 만든 콘텐츠를 일반인에게 제공한다는 컨셉이었는데, 나중에는 과학커뮤니케이터 및 함께 참여했던 분들까지로 범위가 넓어졌다. 소백산 천문대 등 행사에 참여했던 분들의 소감,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연구원으로 왔다가 가시는 분들의 인터뷰 등도 포함되었다. 위원들은 매월 웹진의 컨셉을 기획하고, 글 쓰실 분들에게 청탁을 하고, 받은 글을 편집해서 발행했다. 특히 당시에 SF 소설을 위한 유료 지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SF작가들이 크로스로드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에세이와 SF소설의 영문판도 발행했었다. 

  지역 작은도서관에 과학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소도시 도서관을 찾아 1년에 12번의 강연 파견을 공식적으로 했다. 도서관 협회에서 공로상도 받았다. 정재승이 나가면서 이후 ‘10월의 하늘’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올해의 과학책 시상식이 있다. 

아태이론물리센터에 과학문화위원회가 처음 만들어진건? 

  과학문화 활동을 가장 먼저 추진한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러플린이었다. 특이하게도 과학문화 활동을 중시했다. 정재승을 데려와서 크로스로드 웹진부터 시작하게 했다. 

거꾸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럼 아태이론물리센터는 어떻게 시작된건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중에 왜 한국에 있는건가?  

  각각 운영되는 이론물리센터, 물리학연구소 등은 많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적으로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름있는 아시아태평양 물리학자들이 모였고, 연구소 유치기관을 공모했는데 처음에 서울대가 선정되었다. 이후 서울대로부터 지원이 끊겨 포항공대가 이어받았다.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주로 하는 일은 학술대회이고, 여러 가지 연구 허브역할을 한다. 

당시 국내에 다른 과학문화활동이 있었나?

  조직적으로 한 기관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 그새 15년이 되었다. 처음엔 러플린 소장과 정재승의 지원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소장으로 바뀌고는 억압도 당하고,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 호의적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가 왜 과학문화활동을 하나?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에 SF소설 연재를 하나? 같은 시각이다. 과학문화활동에 대해 외부평가를 받았는데, 점수가 낮아서 위기가 온 적도 있었다. 

2. 이명현의 과학문화위원회 활동을 되돌아보자. 

임기동안 가장 의미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1) 소백산 워크숍 

  ‘2009년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의 문화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여러가지 프로젝트 중 SF작가와 과학자들은 소백산에서, 만화가와 과학자는 보현산 천문대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참여자들 반응이 워낙 좋아서 계속하자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2010년 이후 아태이론물리센터 과학문화위원이 되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성언창 박사님과 과학문화위원들의 동의로 재개되었다. 단발성으로 끝날 뻔 했던 게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2) 크로스로드 SF ‘리뷰’ 코너 개설

  무엇이든지 비평을 해야 깊어진다. 비평이 있어야 창작이 자극을 받으며 나갈 수 있다. SF계는 작은 곳이니까 기존 평론가들이 평가를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평과 평론 중간쯤의 ‘리뷰’ 코너를 만들었다. 1년에 12편의 리뷰가 나온다. 일부러 국외 유명 작품이 아닌, 국내 작가에 대한 리뷰만 하기로 했다. 지금 여기에서 써가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니까.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은? 

  한 달에 한 번씩 마음맞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 각자 분야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기투합하여 같이 하는 것이 좋았다. 

끝나면 그게 아쉽진 않나?

  아니 뭐 그만큼 놀았음 됐지. (같이 웃음)  핑계로 한 번씩 봤는데 이제는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봐야 하니까 아쉬움이 많지만. 적절한 시점이 되었을 때 교체가 되어야 잘 굴러간다.  

활동중에 가장 아쉬웠던 것은?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안 맞거나 가치관이 다른 것 때문에 없애지 못한 것이 있다. SF작가들에게 원고 의뢰하는 계약서에 저작권 부분이 있다. 기존에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퇴색되거나 오래되어 현대적으로 안 맞는 경우들이 있다. 그 구문을 없애려는 노력을 했지만, 의견 충돌이 있었다. 행정라인에서 집착하기도 하고. 결국은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고 문구 수정만 했다. 새로 꾸려진 위원들에게 숙제로 남겨드렸다. (이번 원고청탁을 받을 때에도 저작권 부분이 첨부되어 왔다가, 중간에 삭제된 수정본으로 다시 받았다. 드디어 이명현의 숙제가 끝난 것이다.) 

그만두기에 적절한 시점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오래되었나 하는 년수는 아니고, ‘이 쯤이면 여기서 더 할 수 있는건 없다’ 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타이밍이 있다. 이번에 퇴임한다고 상패받을 때 들으니 내가 공식 기간 최장기 위원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세팅할 때는 의견도 많고 맞춰가느라 시간이 걸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지고 루틴처럼 된다. 좋은 점은 잘 돌아가고 평가도 빨리나고 효율적이 되는것.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없어도 2~3년은 더 간다. 앞으로 10년을 더 가려면 2~3년은 또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는데, 그 때가 물러날 때라고 생각한다. 전부터 김상욱과 그만두자는 얘기를 하면서 손승우 교수 체제를 준비했다. 젊은 사람들끼리 운영할 수 있게 하려면, 기존의 사람들이 남아있으면 짐이 된다.

남아있는 레거시를 없애고, 남아 있으면 짐이 되고… 이런건 왜 항상 이명현에게  큰 화두인가? 

  선배들이 맘에 안들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조직에서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충족을 시키지 못하는 선배들과는 연을 끊고 새롭게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 나도 그런 선배처럼 되어있을까봐 경계하게 된다. 불합리한 제도나 조직구조 같은 것들은 다 바꿔버리면 좋은데 몇 사람의 뜻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가족 안에서는 제사,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거리 등을 누군가는 자기 선에서 끊어버려서 내 대에서 더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크고 거대한 적을 향해 전투적으로 투항해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작은 단위에서 실천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권한이 있을 때 없애고 끝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살고 있다. 

뭔가를 공들여서 만들었거나 없앴는데 그 후에 사람들이 자기가 만들어낸 것을 다시 없애버리거나 할수도 있지 않나? 

  그건 그 사람들의 몫이지. 

그런 게 없어지는 걸 두려워해서 자기 영향력을 두려고 하지 않나?

 그런 게 적폐지. 내가 과학문화위원을 그만둔 후에, 드디어 과학문화위원 카톡방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렇게 진보하는거다. 관습은 깨져야 하고, 그러기에 제일 좋은 건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깨달음이 컸던 것은?

1) 모든 것을 이 틀 속에서 이룰 순 없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잘 어울리고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고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어떤 가치관에서 평행선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2) 내부에서 잘 운영하더라도 외부에서 공격하면 취약할 수 있다. 

  과학문화위원을 하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혼자하는 활동이거나 느슨한 모임, 동료랑 같이 하는 모임만 했었다. 그동안은 사람들을 회유하거나 의지를 포기하거나 정치적 액션 같은 걸 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팀이고, 조직 분야고, 내 생각대로만 하지 못하고, 포장하고 다듬고 참고 하는 걸 배웠다. 사회화라고 하나, 어른이 되었다고 하나. 좋은 것만 재미있게 하는게 아니라 사회가 돌아가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슬기롭게 지나가는 방법을 배웠다. 여전히 개인이거나 젊을 때였으면 폭로하고 말았겠지만, 같이 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복원력을 얻었다. 버티는 힘 같은 것을 배웠다. 

몇 번씩 그런 역할을 맡게 되는것 같다. 

  위기가 왔을 때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항상 혼자는 아니더라. 

3. 이제 새로 꾸려져서 운영하고 있는 과학문화위원들께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많은 과학문화위원들이 거쳐가면서 역사가 생겼다. 탄탄한 지점도 있지만 거스르기 힘든 것도 있을 것이다. 뜻은 모르고 형식으로만 남은 것들을 마땅히 지켜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지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시라고 부탁드리고 싶음. 가능성을 보고 모신 손승우 교수님과 여러 가지 같이 공유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은 다 알고 있으실거고, 뭔지 모르겠는건 그냥 없애버리면 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과학문화위원을 하는 동안 몇 번의 분수령을 넘으면서 지금에 왔다. 지금 끝낼 수 있었던게 행복하다. 새로운 분들이 활동하는 걸 볼 수 있게 된 것이 행복하다. 밖에 나와서 응원하는 입장이 될 수 있게 되어 즐겁다. 사실 벌써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던 것도 이미 잊어 버렸다.(웃음) 새로운 과학문화위원들과 계속 만나긴 하겠지만, 호스트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가 있었고, 게스트로 만나야 할 태도가 마땅히 있다. 앞으로 게스트로 잘 만나고 싶다.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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