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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treet] 많은 것은 늘 새롭다/20.3 크로스로드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22일


(일러스트레이터 : 김민정)

 자연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φύσις 피시스에서 유래된 물리학은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학문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여러 연구 분야 중 응집물질물리학은 대중들에게는 매우 낯설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생활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연구 분야이다. 영어로는 condensed matter physics, 말 그대로 응집된 물질의 물리를 다루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로 양자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 등 모든 학문적 지식을 이용하여 물리학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연구 분야이다. 비록 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물리 분야이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인 발전과 함께 물리학 분야의 탑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물리학 연구자들이 응집물질물리 분야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물리학회 회원 중에도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며 약 25% 이상의 회원들이 응집물리를 연구하고 있다.

 응집물질물리학은 광대하다. “응집된” 물질이라면 원자 수천수만개가 이루는 시스템의 물리가 아니라 아보가드로 수 ~ 6.02 × 1023 단위의 말도 안되게 많은 미시 세계의 원자들이 매우 엄청나게 응축된 시스템에서 어떠한 물질의 특성이 나타나는지를 연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떻게 보면 미시 세계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양자 역학적 특이 현상이 거시 세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해하고 실험적으로 구현하는 학문이다. 양자 역학의 원리를 기초로 전하를 띄는 전자의 전자기학, 많은 입자의 집합체로서 통계역학 등이 응집물질물리학 연구의 중요한 기본 바탕이 된다.

 얼핏 생각하면 이렇게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시스템만 더 복잡해 지고 간단한 물리의 기본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매력을 잃어버리는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시스템은 항상 새롭기만 하다! 몇개의 입자만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물리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집물질물리학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분야의 철학적 사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필립 앤더슨은 많은 것은 다르다 “More is different” 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숲은 단지 나무들의 집합일 뿐이다’ 라는 철학적 흐름, 르네 데카르트를 시초로 하는 환원 주의에 반대하는 시각으로서 복잡성의 중요함을 강조한 복잡한 시스템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올 수 있음을 부각하였다.

 그렇다면 많은 물리학자들이 왜 이러한 응집물질물리분야에 흥미를 느끼는가? 어떠한 자연 현상의 발견에 환호하는가? 사람이 자연에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가지는 적어도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을 눈앞에서 보고 심지어 그런 현상을 이해하게 될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 예로 더이상 영화의 미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개발된 공중부양 스케이트 보드 일명 호버보드의 발견이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호버보드의 원리는 저온에서 두개의 전자가 쌍을 이루며 전기 저항이 완전히 없어지는 초전도 현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초전도체의 발견은 입자 한 두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수많은 입자들이 모인 복잡한 시스템에서만 나타나는 새로운 상태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복잡성이 왜 이러한 새로운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가?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특이 물리 현상은 대게 낮은 에너지에서 새롭게 창발하는 준입자에 기인한다. 준입자란 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이 만드는 집단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입자처럼 행동하는 운동 형태로서 낮은 에너지에서의 집단적 들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입자 개념이다. 이러한 대부분의 준입자는 광자 photon, 양전자 positron 전자 electron 처럼 단어 끝에 -on이라는 영어를 붙여서 이름이 명명된다.

 예를 들어 초전도 현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포논 phonon 은 고체 내에서 원자의 진동이 이루는 준입자를 뜻한다. 이러한 포논은 고체 내에서 전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전자-전자 간의 끌어당김 힘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두개의 전자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의 자기적 성질을 결정하는 전자 스핀이 정렬되어 있을 때에 집단 들뜸 상태의 스핀파를 기술 하는 마그논 magnon과 같은 준입자도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마그논을 조절함으로서 나타나는 열전도 현상 등은 기초 물리학뿐만 아니라 응용으로서도 많이 각광 받고 있는 응집물질물리학의 연구 분야이다.

 많은 것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한다. 응집물질물리학은 단순히 일차원, 이차원, 삼차원에서 원자간의 배열에 장거리 질서가 존재하는 결정질에서의 연구를 넘어선다. 원자간의 배열에 불규칙성이 있어 장거리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준결정, 비정질 등에서의 준입자들도 연구 분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응집물질에서 수많은 원자가 이루어 나타나는 새로운 준입자의 또다른 매력은 무엇일까? 집단적 들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준입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입자와는 전혀 상이한 성질을 가지는 준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가?

 정답은 ‘그렇다’ 이다.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에 따라 양자 얽힘과 중첩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준입자의 또다른 매력을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원자에서 전자가 서로 복잡하게 상호 작용할 때에 우리는 매우 이상한 양자 얽힘 상태를 가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시스템에서 집단 들뜸을 나타내는 새로운 준입자는 분수화된 양자 수를 가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예로 전자는 각각 양자화된 즉 띄엄띄엄하게 주어지는 물리량을 가지는 전하량과 스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집단 들뜸 현상으로 나타나는 준입자도 기본 입자가 가지는 양자화된 물리량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우리의 상식을 기분 좋게 뒤엎어버린다. 특정 시스템에서는 기본 입자가 가지는 양자화된 물리량이 아닌 분수화된, 즉 쪼개진 물리량을 가지는 준입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기본 입자 전자의 경우 전하량과 스핀을 동시에 가지지만 특정 응집물질에서는 스핀이 아닌 전하 양자수만을 운송하는 홀론 (holon) 준입자와, 전하가 아닌 스핀 양자수만을 운송하는 스피논 (spinon) 준입자가 따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물리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며 새로운 물질 상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발자취가 된 것이다.

 많은 것은 늘 새롭다! 단지 다르다는 것을 넘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상식을 뒤바꾸는 특이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출처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n9998&id=1536&s_para4=0022&fbclid=IwAR3vjJTb6hbqULnRCqqUNMsp2vRR23ZTMSzehNHByihsa6symhXIc6Uwo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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